반미라면 2만명쯤은 학살해도 된다는거지?
2025년 말, 이란의 시위는 빵값 폭등에서 시작되었으나 곧바로 신정 체제의 심장을 겨눴다. 이에 대한 정권의 대답은 전례 없는 살육이었다.
그들은 시위 진압용 고무탄을 쓰지 않았다. 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지 민병대는 오토바이 부대에 올라타 시위대를 향해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난사했다. 그것도 모자라 픽업트럭 위에 장착된 중기관총 '두쉬카(Doshka)'가 도심 한복판에 등장했다. 두쉬카는 전차나 항공기를 잡는 무기다. 그 12.7mm 탄환이 인간의 몸에 박히면, 살점은 찢어지는 게 아니라 터져 나간다. 팔다리가 절단되고 머리가 으깨졌다. 이것은 진압이 아니라 청소였다.
더욱 악랄한 것은 조준의 방식이었다. 증언에 따르면, 보안군은 여성 시위대의 얼굴, 가슴, 그리고 성기를 정밀 조준 사격했다. "아름다움을 파괴하고, 여성으로서의 존엄을 말살하겠다"는 명백한 악의였다. 어린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10대 소녀들이 머리카락을 내보였다는 이유로 개머리판에 맞아 두개골이 함몰된 채 길바닥에 버려졌다. 살육의 광기에 눈 먼 정부군은 병원을 다니며 총상 입은 환자들을 확인사살했다.
1월 8일, 정권은 인터넷을 끊었다. '디지털 암전(Digital Blackout)'. 그것은 외부와의 차단인 동시에, 밀실 살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어둠 속에서 비명소리는 기록되지 못하고 증발했다. 6,000명. 확인된 사망자만 그렇다. 어쩌면 1만명 또는 2만명을 넘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의 우주가 사라졌다.하수구에, 야산에, 이름 모를 구덩이에 처박힌 시신들까지 합치면 그 숫자가 얼마나 될지 아무도 모른다. 테헤란은 피 웅덩이였다.
1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내한이란인 네트워크가 연 미국 정부의 이란 군사 개입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팔레비 왕조 시절 이란 국기를 흔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 800개의 크레인, 죽음의 컨베이어 벨트
거리의 총성이 잦아들자, 이번엔 법복을 입은 살인마들이 등장했다. 이란 사법부는 체포된 시위대 중 800명을 추려냈다. 죄명은 '신에 대한 적대(Moharebeh)'.
이란의 교수형은 잔혹하기로 유명하다. 그들은 종종 건설용 크레인을 사용한다. 사람을 높은 곳에 매달아 천천히 질식시켜 죽인다. 죽어가는 자의 고통을 군중에게 전시하여 공포를 심으려는 야만적 퍼포먼스다. 800개의 밧줄과 크레인이 준비되었다. 20대 청년, 대학생, 래퍼, 의사들이 줄줄이 죽음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섰다.
이 학살의 톱니바퀴를 멈춰 세운 건, 아이러니하게도 도널드 트럼프였다. "사형을 집행하는 순간, 너희 정권의 존립을 장담할 수 없다." 군사적 타격(Strike)을 시사한 그의 '레드라인' 통보는 거칠었지만, 학살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제야 크레인이 멈췄다. 800명의 목숨은 '대화'가 아니라 압도적인 '힘'이 구했다.
3. 진보 좌파들의 우아한 위선
자, 이제 시선을 테헤란의 피바다에서 서울 여의도와 광화문으로 돌려보자. 그 시각 한국의 진보라 자처하는 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이란에서 시민들이 총을 맞고 쓰러질 때, 한국의 진보 좌파들은 조용했다. 청년들이 크레인에 매달릴 위기에서 정의당과 진보 단체들은 성명을 냈다. "미국은 이란에 개입하지 말라."
이 구호가 얼마나 끔찍한지 그들은 알까? "미국은 개입하지 말라"는 말은 곧, 이란 정권에게 "방해받지 말고 마음껏 800명을 목 매달아 죽이라"는 면죄부를 주는 것과 같다. 그들에게는 이란 시민 800명의 생명보다 '반미'라는 자신들의 낡은 이념적 순결성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사람이 찢겨 죽는 현장보다 미국의 개입이 더 싫다는 그들의 신념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들은 따뜻한 방 안에서, 안전한 키보드로 '평화'를 타자 치며, 실제로는 학살자들의 편에 섰다. 나는 이것을 '지적 범죄'라고 부른다.
4. 마두로를 위한 68명의 호위무사
그들의 위선은 베네수엘라 사태에서 이미 정점을 찍었다. 자국민을 굶겨 죽이고 마약 카르텔의 수괴가 된 독재자 마두로가 미군에 체포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 68명은 벌떼처럼 일어났다. "주권 침해 규탄!"
최소 6,000명이 학살당한 이란을 위해서는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독재자를 위해서 민주당 의원 68명이 연판장을 돌렸다. 그들이 말하는 '주권'은 무엇인가. 독재자가 자국민을 학살하고 착취할 권리인가?그들은 약자의 편이 아니다. 그저 '미국이 싫어하는 자'의 편일 뿐이다. 설령 그가 학살자나 마약왕일지라도 말이다.
5. 1980년 광주, 그 이름으로 묻는다
1980년 5월, 고립된 도시에서 시민들은 미 항공모함이 오기만을 기도했다. 전두환의 탱크를 막아줄 힘을 갈구했다. 그때 그들이 피토하며 외쳤던 것은 "미국이여, 제발 개입해서 우리를 살려다오"였다. "미국 항공모함 코랄시(Coral Sea)호가 부산에 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것은 단순한 유언비어가 아니었다. 절망 속에 핀 희망이었다. 시민들은 미국이 전두환의 학살을 멈춰주기를, 그 압도적인 힘으로 우리를 구해주기를 기도했다. 1980년의 광주가 분노했던 것은 미국의 '개입' 때문이 아니었다. 학살을 방조한 '개입의 부재' 때문이었다.
그런데 2026년, 광주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자처하는 이들이 이란의 광주를 외면한다. 이란의 시위대가 트럼프의 위협 덕분에 목숨을 건졌을 때, 한국의 진보 정치인들은 그 위협을 비난했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왜 내정 간섭했냐"고 따진다.
만약 당신들 논리라면, 1980년 전두환의 학살을 묵인한 미국은 '내정 불간섭 원칙'을 지킨 훌륭한 나라가 된다. 당신들은 지금 '반미'를 외치기 위해 1980년 광주 시민들의 간절했던 염원을 모욕하고 있다. 이것은 배신이다. 역사에 대한, 그리고 피 흘리는 민중에 대한 가장 저열한 배신이다.
6. 인간의 고통을 외면한 진보
다시 이란의 그 끔찍했던 거리를 생각한다. 두쉬카 중기관총에 찢겨나간 살점들, 크레인 아래에서 공포에 떨었을 800명의 눈동자들.
한국의 진보 지식인들에게 권한다. 당신들이 쓴 그 고상한 성명서를 들고, 테헤란의 유가족들 앞에서 낭독해 보라. "미국의 개입은 나쁜 것이기에, 당신 자녀들의 죽음과 800명의 교수형 위기는 자주적으로 해결했어야 했다"고 말이다.
아마 그들은 당신들의 멱살을 잡을 것이다. 아니, 뺨을 올려붙일 것이다. 나 역시 그 자리에 있다면 기꺼이 그들의 주먹을 거들겠다. 당신들은 정치를 한다는 명분 아래, 지구 반대편의 비명소리를 외면하고 독재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다. 진보(進步)란 무엇인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고통받는 인간의 곁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자칭 진보 세력은 1980년대 운동권 서적의 각주에 멈춰 서 있다. 세상은 변했고 악의 축도 변했는데, 그들은 여전히 "미국 반대"라는 낡은 레코드판만 무한 반복하고 있다. 그 소음 속에 이란 청년들의 비명이 묻혔다. 링 밖에서 구경만 하며 훈수 두는 당신들이야말로, 이 잔혹한 학살극의 가장 비열한 공범들이다.
김남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