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비망록, 그 기이한 '영적 전쟁'의 기록
2026년 새해 벽두부터 대한민국 정가가 기괴한 스릴러물로 물들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지명된 보수 여전사 이혜훈 후보자가 주인공이다. 여당인 민주당은 침묵하고, 야당인 국민의힘은 "배신자"라며 제명하는 촌극 속에 터져 나온 것은, 이른바 '이혜훈 비망록'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다.
도대체 '비망록'이 뭐길래?
이 비망록은 이 후보자가 2016년 총선과 2017년 바른정당 대표 시절, 자신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디지털 메모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가 입수해 공개한 이 기록에는 한 유력 정치인의 내면이라기엔 너무나 적나라한 욕망과 저주가 담겨 있다. 2017년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당시, 전직 검찰총장(채동욱)을 고용해 현직 서울중앙지검장(윤석열)에게 청탁 전화를 넣은 정황, 돈을 다 갚았다던 대국민 해명과 달리 "형편이 안 돼 못 갚는다"고 읍소한 기록, 그리고 세간을 경악게 한 '낙선 기도 명단'이 그것이다.
"소설이다"라는 해명마저 막혔네?
이 후보자는 "완벽한 허구이자 소설"이라며 비망록 자체를 부인했다. 그러나 이 기록이 '팩트'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그 디테일의 살벌함 때문이다. 비망록에는 사건 수임료 '7천만 원', 성공보수 '5천/5천'이라는 구체적인 액수는 물론, 경찰의 입건 지휘가 내려지기 직전의 긴박한 시간대별 상황이 당시 수사 기록과 소름 끼치게 일치한다. 자신이 겪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일기장에나 적을 법한 범죄의 자백들이 빼곡하다. 소설가라도 이렇게 구체적인 영수증을 첨부하며 글을 쓰지는 않는다.
신의 이름을 빌린 '살생부'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낙선 기도 명단'이다. 2016년 총선을 나흘 앞두고 "목사님의 전언"이라며 작성된 이 리스트는 단순한 경쟁자의 명단이 아니다. 여기엔 진선미, 남인순, 표창원 같은 민주당(당시 야당) 인사들도 있었지만, 핵심 타겟은 '내부의 적'들이었다. 최경환, 서청원, 윤상현, 김태흠 등 당시 새누리당 내 친박계 실세 9명의 이름이 저주의 제물처럼 올라와 있었다. 공천 학살을 주도했던 친박계를 향한 증오를 '기도'라는 종교적 외피를 둘러 배설한 것이다. 같은 당 동료를 향해 신의 저주를 빌었다는 사실은 그녀의 정치가 공적 영역이 아닌, 사적 원한과 주술적 광신 사이에 놓여 있었음을 보여준다.
AI생성 이미지 = 가피우스
이재명 대통령의 '큰 그림'은 경제가 아닌 '양밥'이었나
여기서 묘한 기시감이 든다. 현 대통령인 이재명 역시 '주술'과 악연이 깊다. 그는 과거 부모 묘소가 훼손되었을 때, 이를 두고 "양밥(저주를 위한 흑주술)"이라 칭하며 "후손의 절멸과 패가망신을 저주하는 흉매"라고 격분한 바 있다. 무속과 저주, '살(煞)'을 날리는 행위가 정치권 주변을 맴도는 것에 누구보다 민감하고, 그 파괴력을 잘 아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이재명 대통령이 보수의 아이콘인 이혜훈을 굳이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발탁한 진짜 이유는 경제 전문성 따위가 아닐지 모른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수많은 정치적 공격과 사법 리스크 앞에서, 이 대통령은 이혜훈 후보자의 '저주'에 대한 이해와 실력에 반한 것은 아닐까. 정적을 향해 거침없이 '낙선 저주'를 퍼붓고, 종교와 주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상대를 타격할 줄 아는 그 비상한(?) 재능 말이다.
경제를 살릴 장관이 필요한 시점에, 대통령은 어쩌면 정적들에게 '양밥'을 날려줄 강력한 무당, 아니 '주술 장관'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관료 사회가 이제는 '굿판'으로 변질될까 두렵다.

윤갑희 기자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5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그럴 듯해요. 의도 없이 저런 인사를 발탁할 리가 없죠. 감사합니다
헐 뉴스를 넘 안 보니 몰랐네요
근데 모르고 보니까 어렵네요 윤갑희 기자님 글 좋아하는데 가끔 모르는 소식이면 그럴때가 있어요
기자님 머릿속엔 정리가 너무 잘 되어 있어서 그런기봐요
기사 찾아보고 이해했어요
보수의 여전사 ->보수의 전사
상상 그 이상의 인간들
끼리끼리 초록은 동색,
같은 부류이기 때문에
끌렸는 모양이네요.
기대할 게 1도 없는 이정권
전혀 상상도 못한 수준의 정치인은 이재명 뿐인줄 알았는데 이혜훈도 만만챦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