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본청 현판 국세청 본청 현판
국세청이 칼을 뺐다. 물가와 환율 불안을 야기했다며 31개 업체를 전격 세무조사 한다고 한다. 명단에는 가구 업체, 치킨 프랜차이즈 등이 포함됐다. 정부의 논리는 단순하다. 이들이 가격을 담합하고 꼼수로 빵과 치킨 양을 줄여서(슈링크플레이션) 물가가 올랐고, 해외로 재산을 빼돌려서 환율이 불안해졌다는 것이다.
참으로 편리한 해석이다. 가구 회사 몇 곳이 입찰 담합을 하면 대한민국 소비자물가 지수가 요동치고, 치킨집이 닭고기 양을 줄이면 원화 가치가 폭락한다는 말인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거시 지표가 고작 가구와 치킨에 휘둘린다면, 그건 국가가 아니라 구멍가게다.
물가가 오르고 환율이 1500원을 위협하는 진짜 이유는 경제학 교과서 1장에 나온다.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렸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내내 ‘확장 재정’을 외치며 나랏돈을 풀었고 내년엔 더 큰 규모의 예산이 풀린다. 빚을 내서 지원금을 뿌리고, 27조 원 규모의 현금 살포를 강행했다. 돈이 흔해지면 돈의 가치는 떨어진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니 환율이 오르고, 같은 물건을 사는 데 더 많은 돈을 줘야 하니 물가가 오르는 것이다. 이것은 ‘인과율’이다.
범인은 명확하다. 화폐 가치를 떨어뜨린 건 ‘돈 찍어낸 정부’다. 그런데 정부는 거울을 보는 대신 만만한 기업을 잡아 족치고 있다. 자신들의 방만한 재정 운용이 낳은 인플레이션이라는 괴물을, 기업의 탐욕 탓으로 돌리며 대중의 분노를 전가하는 ‘공개 화형식’이다.
더 기이한 건 전문가 집단의 침묵이다. 강단에 선 경제학자들, 정론을 자처하는 언론들이 이 기초적인 인과관계를 모를 리 없다. 정부가 돈을 풀어서 물가가 올랐는데, 국세청이 치킨집을 때려잡아 환율을 잡겠다는 이 촌극을 보고도 입을 닫는다.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정권의 서슬에 눌려 비겁해졌거나, 아니면 ‘부자 때리기’가 주는 대중적 카타르시스에 영합해 박수나 받으려는 것이다. 학자는 곡학아세(曲學阿世)하고, 언론은 본질을 외면한다. 그 사이 국민은 “나쁜 기업 때문에 내 삶이 팍팍해졌다”는 가짜 뉴스에 세뇌된다.
국세청 조사로 탈루 세금 1조 원은 거둘 수 있을지 모른다. 기업의 불법이 있다면 처벌받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물가는 잡히지 않는다. 둑이 터져서 강물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바가지로 물 퍼내는 시늉을 하며 “물장구친 놈 잡아라”고 소리치는 격이다.
돈은 정부가 펑펑 쓰고, 그 대가는 기업이 두들겨 맞고, 고통은 국민이 짊어진다. 이 기막힌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서,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우리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기업을 혼내줬다”며 생색을 내고 있다. 경제학자가 입을 다문 사회에서, 정치는 경제를 마음껏 조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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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3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사과도 반성도 성찰도 모르는 정부와 집권당
모든 권한을 움켜쥐고 있으면서도 남탓만 줄창 해대고 있으니
나라가 어디로 갈 지는 명약관화합니다.
더 이상 슬프거나 힘들고 싶지 않은데
정신나간 개딸들이 재앙에 한몫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넘나 고약해서 야속하기만 합니다
이대로 괜찮냐고 묻는 사람들이 이렇게 귀할 수가 없습니다.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서 환율이나 물가보다 더 눈에 띄는 주가지수 방어에 더 집중할 거라는 게 더 공포스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