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법전에선 '복종' 지우겠다더니, 현실에선 '상명하복' 호통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5-12-17 11:24:44
  • 수정 2025-12-17 12:36:09

  • 공무원법 '복종 의무' 삭제한다더니 대통령은 "행정은 상명하복" 일갈
  • 전 정권 인사 몰아내기 위해 자신들이 만든 원칙도 뒤집는 모순
  • 업무 파악을 '댓글'로 하는 대통령, 국정 시스템의 희극적 붕괴

이재명 대통령, 부처 업무보고 발언이재명 대통령, 부처 업무보고 발언 (연합뉴스) 

여당은 최근 공무원이 소신 있게 일하는 환경을 만들겠다며 국가공무원법 개정을 입법 예고했다. 76년 만에 ‘복종의 의무’ 조항을 삭제하고 ‘지휘·감독에 따를 의무’로 바꾼다고 했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거부할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말은 그럴듯하다. 그런데 이 홍보물이 잉크도 마르기 전에 세종시에서는 정반대의 장면이 연출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17일 업무보고 자리에서 "행정은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지휘 체계"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권한만 누리고 책임 안 지는 건 도둑놈 심보"라며 누군가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타깃은 명확했다. 지난번 회의에서 면박을 주었던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이다.


상황이 기묘하다. 한쪽에서는 수평적 문화를 만든다며 ‘복종’이라는 단어조차 법전에서 파내고 있는데, 국정 최고 책임자는 군대 점호 시간처럼 ‘상명하복’을 외친다. 이 사장이 대통령의 지적에 공개적으로 해명하자, 이를 "거짓말이 실력인 정치판"에 빗대며 입을 막았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의견을 내라더니, 막상 의견을 내니 "도둑놈" 취급이다.


더 심각한 지점은 대통령이 이 사장을 공격하기 위해 가져온 근거다. 대통령은 "기사 댓글을 보니 공항공사가 하는 게 맞다더라"며 "대통령인 나도 댓글 보고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관세청이 공항공사에 위탁하는 MOU를 맺었다"는 댓글 내용을 읊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산하 기관의 업무 분장과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 댓글창을 뒤진다. 보고 라인이나 감사 시스템은 멈춘 것인가. 백번 양보해서 댓글을 볼 수도 있다고 치자. 문제는 대통령이 굳게 믿은 그 댓글 내용조차 '팩트'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외화 반출 단속이나 수사권은 관세청의 고유 권한이다. 이는 공권력이 가진 사법적 권한이라 MOU(양해각서) 종이 한 장으로 공기업에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보안 검색을 돕는 협조와, 법적 책임을 지는 주체는 엄연히 다르다. 상식적인 행정가라면 MOU가 상위법을 뒤집을 수 없다는 것쯤은 안다.


그런데 대통령은 "MOU 맺었으니 네 책임"이라는 비전문가의 부정확한 댓글을 진실로 믿었다. 그리고 그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공개석상에서 공기업 사장을 "책임 안 지는 도둑놈"으로 몰아세웠다. 결국 대통령은 '가짜 뉴스'에 가까운 댓글에 낚여서 헛발질을 한 셈이다.


이 사장을 몰아내고 싶은 마음은 알겠다. 하지만 방식이 너무 촌스럽다. 나가라고 말할 명분이 부족하니 업무 파악 미숙을 트집 잡는데, 그 근거가 고작 '댓글'이다. 그래 놓고 "국민은 1억 개의 눈과 귀로 지켜본다"고 했다. 그 1억 개의 눈이 보고 있는 건 이 사장의 무능이 아니라, 전 정권 인사를 쫓아내려 안달이 난 권력자의 조급함이다.


법전에서 ‘복종’을 지우겠다고 선전하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게다가 댓글로 국정을 파악한다는 고백을 보고있자니 시장 시절부터 공무원들 닥달해 댓글을 생산시키던 인물 답다.


음원서비스에서 낙원전파사를 만나보세요

관련기사

프로필이미지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에 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12-17 16:42:14

    개딸 수준에 맞는 대통령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12-17 16:40:53

    내추럴 본 천박하고 무식한 싸구려 독재자네요.기사 감사합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scks2ek2025-12-17 15:10:35

    ㅋㅋㅋㅋㅋ

  • 프로필이미지
    ddongong2025-12-17 14:29:39

    스스로 한 말도 뒤집는게 대통렁이랍시고 저러고 있는걸 보고 있자니.. 속이 부글부글합니다.

아페리레
웰컴퓨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총구 앞 '화장' 논란과 4성 장군의 궤변 민주당 안귀령 대변인이 김현태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단장을 고소했다. 혐의 내용에 명예훼손과 함께 ‘성희롱’이 포함됐다. 김 전 단장이 성적 농담이라도 던진 줄 알았다. 내용을 보니 그게 아니다.김 전 단장은 계엄 당일 안 대변인이 계엄군의 총구를 잡고 실랑이를 벌인 장면에 대해 “미리 화장을 하고 연출한 것 아니냐&rdqu...
  2. 대통령 업무보고 감상문 "고작 그게 궁금합니까?" 직장 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어떤 분야든 고수(高手)는 질문의 수준만 봐도 상대의 내공을 단번에 간파한다. 진짜 전문가는 정답을 묻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핵심을 찌른다. 반면, 하수는 곁가지나 지엽적인 절차에 집착한다. 질문의 질(質)이 곧 그 사람의 그릇이다.이재명 대통령과 인천공..
  3. 한은, 대출채권 담보 긴급여신 도입 한국은행이 내년 1월부터 은행이 보유한 대출채권을 담보로 긴급 자금을 빌려주기로 했다. 금융통화위원회가 관련 규정을 의결했다. 쉽게 말해, 은행이 돈이 급할 때 국공채 같은 우량 자산이 없으면 기업에 대출해 준 '장부'라도 들고 오라는 것이다. 그러면 한은이 돈을 찍어서 주겠다는 뜻이다.이것은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원칙을 ...
  4. '내란범' 몰렸던 조희대, 훈장이라도 줘야 할 판 한 편의 블랙코미디가 막을 내렸다. 조은석 특검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내란 가담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단순히 증거가 없어서가 아니다. 수사 결과를 뜯어보니, 그는 내란범이 아니라 오히려 ‘내란을 막아낸 사람’에 가까웠다.특검 불기소 결정서에 따르면, 12·3 비상계엄 당일 조 대법원장은 명확하게 ..
  5. 성남시, '대장동 일당' 5173억 가압류 성공 대장동 부당이득 5173억 동결 조치 및 검찰 항소 포기에 대한 법적 대응 가속화신상진 성남시장은 23일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장동 개발 비리 관련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가압류 및 가처분 신청 14건 중 12건이 법원에서 인용됐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으로 김만배, 남욱, 정영학, 유동규 등 핵심 관계자 4명의 재산 총 5173억 원이 동결됐다. ...
  6. [김만흠] 내란죄 규명 빠진 내란 특검 종합보고? 김만흠 전 국회입법조사처장조은석 내란특검이 6개월의 특검 활동을 마무리하며 15일 오늘 종합보고를 했다. 그런데 막상 내란특검이 내란죄 혐의에 대해 한마디도 규정하지 않았다. 2,900여자의 발표문에는 내란이라는 단어가 세 번 나오지만, 특검의 명칭에 쓰이고 나머지 두 번도 윤석열이 이른바 반국가세력을 내란행위로 규정했다는 의.
  7. 이재명의 역사 분탕질: 박대령의 훈장 박탈 사건 이재명 대통령이 故 박진경 대령의 훈장을 사실상 박탈하라고 지시했다. 제주도는 한술 더 떠 박 대령 추도비 옆에 그를 암살한 범인의 주장을 담은 ‘안내판’을 세웠다. 암살범은 “30만 도민을 대상으로 한 무자비한 작전 공격” 때문에 그를 죽였다고 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박 대령은 학살자가 맞다. 하지만 기록된 숫...
  8. 이재명 극찬한 ‘콩GPT’의 엉뚱한 동문서답 그런데 차관후보 됐다 이재명 극찬한 ‘콩GPT’의 엉뚱한 동문서답 그런데 차관후보 됐다이재명 대통령이 감탄하고 언론이 ‘콩GPT’라며 띄운 변상문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관의 답변은 정작 질문의 본질을 비껴간 ‘동문서답’이었다. 지난 11일 생중계된 업무보고 당시 상황을 복기해보면, 이 대통령은 GMO 콩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언급하..
  9. 법전에선 '복종' 지우겠다더니, 현실에선 '상명하복' 호통 여당은 최근 공무원이 소신 있게 일하는 환경을 만들겠다며 국가공무원법 개정을 입법 예고했다. 76년 만에 ‘복종의 의무’ 조항을 삭제하고 ‘지휘·감독에 따를 의무’로 바꾼다고 했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거부할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말은 그럴듯하다. 그런데 이 홍보물이 잉크도 마르기 전에 세종시에서는 ...
  10. 사실상 '북한이 도발해도 경고사격 자제하라'지시한 국방부 보통 무능한 조직은 게으르다. 아무것도 안 해서 망한다. 그런데 2025년의 대한민국 정부는 기이하다. 무능한데 부지런하다. 그것도 나라의 안전핀을 뽑아내는 일에만 유독 성실하다. 이번에는 휴전선 철책이다.최근 국방부 고위 관계자가 합참 지휘통제실을 찾아갔다고 한다. 전시도 아닌데 상급 부처 인사가 작전 통제실까지 내려간 것부터...
후원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