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하우스 리듬으로 힙합 명곡을 재해석한, 전소미의 '클로저' 뮤직비디오 중 한 컷. (사진: 전소미 공식 유튜브)
전소미의 새 EP 앨범 'Chaotic & Confused'는 아티스트로서 10년 차를 맞은 전소미의 고민과 성장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그중 타이틀곡 'Closer'는 화려한 패션과 파격적인 비주얼, 음악적 도전을 보여주며 팬덤과 대중의 뜨거운 반응을 동시에 이끌어내고 있다. 그동안 전소미는 그 실력에 비해 소속사의 '푸시' 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었으나 싱글 'EXTRA'에 이어 새롭게 공개된 이번 앨범은 극성 팬덤의 우려조차 씻어낼 만큼의 결과물로 전소미의 역량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Closer'는 자메이카계 미국인 래퍼 션 킹스턴(Sean Kingston)의 그 유명한 'Beautiful Girl'을 샘플링한 하우스(House) 장르의 댄스곡으로, 흔히 K-팝에서 사용되는 대중적인 EDM 사운드보다는 전통적인 하우스 음악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 전소미는 직접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가사 없는 기계 음악을 많이 들었다"고 밝히며, 이 곡이 자신의 혼란스러운 내면의 결과였음을 시사했다. 또한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고도 밝혔다. 공개된 'Closer' 뮤직비디오는 전소미와 더블랙레이블이 고민 끝에 '예술성'을, 그것도 아주 과감한 방식으로 선택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받아들이는 대중의 반응 또한 뜨겁다.
'Closer' 뮤직비디오는 공개 직후 유튜브 비디오 트렌딩 월드와이드 차트에서 4위까지 올랐고 앨범 'Chaotic & Confused'는 발매되자마자 아이튠즈 톱 K-팝 차트에서 3위에 오르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또한 중국 최대 음원 플랫폼인 QQ뮤직에서도 뮤직비디오가 대한민국 차트 13위를 기록했고, 음원도 트렌딩 차트 10위에 올라 글로벌 팬들의 높은 관심을 입증했다.
뮤직비디오는 이번 앨범의 주제인 '카오틱(Chaotic)'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냈다. 영상 속에서 전소미는 격렬한 안무로 혼란 속에서 자신의 모습에 도취된 나르시시스트를 연기하고, 어둡고 대비가 강한 배경 속에서 젠더 경계를 허무는 의상과 복잡한 내면을 표현하는 퍼포먼스, 충격적인 시각효과(자아 분열, 얼굴에서 피어나는 입체적인 꽃의 형상) 를 통해 파격적인 이미지를 완성했다. 2분 45초의 음악은 듣자마자 션 킹스턴을 샘플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원곡의 한가로운 레게 리듬을 흔적도 없이 지우고 몽환적인 분위기와 속도감 있는 전개를 입혀 완전히 새로운 곡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Closer'는 늦여름의 중독성 있는 플레이리스트로, 드라이브 음악으로서도 훌륭하게 완성되었다. 이러한 시도는 기존에 전소미가 보여줬던 'Dumb Dumb'과 '개별로' 에서의 하이틴 콘셉트, 'Fast Forward'의 테크토닉 서머퀸 이미지와는 확연히 다른 시도이며 훌쩍 성장한 '솔로 아티스트 전소미'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K-팝의 해외 시장 공략은 미국 빌보드 차트 진입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왔다. 그러나 BTS와 블랙핑크 같은 글로벌 슈퍼스타들의 성공 이후, K-팝은 특정 지역을 넘어 전 세계로 팬덤을 확장했고 이제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소미의 'Closer'는 미국 외의 음악 시장, 특히 유럽 시장을 새로운 K-팝의 거점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유럽에서 익숙한 하우스 음악과 케이팝의 만남
하우스 음악과 테크노(Techno)는 본래 1980년대 미국 시카고와 디트로이트에서 시작되었지만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넘어가 전성기를 꽃피우며 다시 세계 음악씬에 영향을 끼쳤다. 특히 독일,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은 하우스 음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대규모 클럽과 페스티벌 문화를 만들어냈다. EDM은 유럽 젊은이들의 문화와 패션에 깊숙이 결합되었고, 지금도 음악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익숙하면서도 트렌디한 하우스 사운드가 K-팝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포장되고 전소미의 글로벌 정체성이 더해진다면 'Closer'와 이번 앨범은 유럽에서 더 크게 어필할 것이다. 뮤직비디오와 새 앨범 콘텐츠의 댓글에서 "영국, 독일, 프랑스로 와 달라"는 해외팬들의 코멘트 또한 가능성을 더욱 선명히 보여준다.
한 때 일부 국가의 소수 팬덤으로 치부됐던 케이팝은 이제 전세계적인 유행이 되었다. 미국의 페스티벌, 유럽의 클럽, 각종 행사의 메인이벤터로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선정되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콘텐츠로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사진: 케이팝콘서트유럽닷컴)
미국? 유럽? 거점을 확장하는 케이팝
그동안 K-팝이 힙합이나 퓨처 베이스 장르를 주로 활용하며 미국 시장의 트렌드를 따라갔다면, 이제는 전소미처럼 특정 하위 장르를 깊이 있게 파고들어 차별성을 확보하는 전략이 통할 수 있다. 그런 전략이 성공한다면 이미 공고해진 K-팝의 글로벌 파워가 미국 차트 순위를 넘어,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으로 더 많은 팬들을 공략하며 진화할지도 모른다.
전소미는 그룹 아이오아이(I.O.I)로 데뷔한 뒤 솔로 아티스트로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음악에 담고 있다. 팬들은 어린 소녀였던 10대 시절 부터 아이돌이 되기 위해 훈련하며 성장해온 그의 서사를 함께 했고 소위 '돌판'에서 롱런하기 어렵다는 여성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모험에도 공감하고 있다. 전소미처럼 자신만의 색깔과 개성을 꾸준히 성장시키는 아티스트들이 특정 시장의 문화적 코드에 맞는 음악과 스타일로 팬덤을 확장해 나간다면, 정점에 이른 K-팝의 미래는 더욱 풍성하고 다채로워질 것이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