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조업 중 해경에 나포된 중국 어선 (인천=연합뉴스 자료사진)해양수산부가 중국과 불법조업 단속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12일 밝혔다. 중대 위반 어선을 양국에서 이중 처벌하고, 불법 어구의 강제 철거 대상을 확대한다는 것이 골자다. 해수부는 이를 조업 질서 유지를 위한 '실질적 협력'이라고 자평했지만, 정작 우리 해양 주권을 영구적으로 침해하는 핵심 위협은 또다시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이번 합의 내용은 표면적으로는 진일보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자국 허가증이 있으면 인계 대상에서 제외되던 중대 위반 어선도 앞으로는 예외 없이 인계·인수되어 양국에서 처벌받는다. 우리 EEZ 내에서 발견된 중국 어선의 불법 어구 철거 대상도 기존 범장망에서 통발 등으로 확대됐다. 해수부가 홍보하고 싶은 지점은 바로 이 '강화된 조치'일 것이다.
문제는 이번 합의가 '움직이는 위협'인 어선에만 매몰되어, '박혀있는 위협'인 불법 인공 구조물 문제를 완전히 외면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서해상에는 중국이 일방적으로 설치한 다수의 불법 구조물이 존재한다. 이는 단순한 어업 시설이 아니라, 사실상 중국의 해양 영향력을 고착화하고 우리 주권을 실질적으로 잠식하는 '전초기지'나 다름없다. 이런 영구적 위협을 방치한 채, 일시적인 불법 어선 몇 척을 더 단속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해수부의 이번 합의는 사안의 본질을 '어업 질서' 문제로 축소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다. 조일환 어업자원정책관은 "어업인의 생계와 안전에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라며 "중국 정부와 불법 어업 근절이라는 공동 목표하에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사안의 본질을 오독한 것이다. 중국의 불법 조업과 구조물 설치는 단순한 '민생' 문제가 아니라, 치밀한 계획하에 진행되는 '안보' 문제이자 '주권' 문제다. 해수부가 이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중국과의 협상에서 우리는 영원히 변죽만 울릴 수밖에 없다.
지난 수년간 한·중 양국은 수차례 '협력 강화'를 약속했지만, 서해의 불법 조업은 근절되지 않았다. 약속이 휴지 조각이 된 경험이 반복됐음에도, 우리 정부는 또다시 실효성이 의심되는 '합의'라는 성과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중국에게 "우리는 당신들의 진짜 의도를 외면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나약한 신호를 보내는 것과 다름없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공허한 합의 발표가 아니라, 우리의 바다를 지키겠다는 정부의 명확한 주권 수호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