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손도 굳고 시간도 많이 흘러 우연히 방문한 장소에서 기타를 만나도 그냥 지긋이 바라보기만 하지만, 한때 나에겐 기타는 같이 잠들고, 돌아다니고, 희노애락을 함께하던, 과하게 말해 마치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지던 시절도 있었다.
열일곱의 여름, 용돈을 모아 방문한 청계천 지하상가에는 아직 군사정권의 여파로 국내에 정식수입이 금지된 앨범들을 불법으로 복제해 파는 소위 “빽판”의 성지들이 있었다. 조악하게 복사된 LP판을 무슨 보물단지마냥 집으로 가져와 듣고 또 듣는 게 세상 가장 즐거운 일탈중 하나였던 시절이 있었다. 턴테이블에 조심스레 음반을 올리고 바늘을 내리면, 정품보다 몇배는 심한 ‘치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흘러나오던 소리들. 그 소리에는 분명 냄새가 있다 느껴졌다. 잘 마른 나무의 냄새, 눅눅한 종이 냄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던 시간의 냄새. 내게 기타 리프라는 말의 느낌은, 그 먼지 쌓인 다락방의 냄새로 기억된다.
사진 : 박주현 당시 헤비메탈과 일부 락그룹은 뺵판으로 접하는게 오히려 더 쉬었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써왔던 단어이고, 불편함도 없어서 제대로 된 뜻을 찾아볼 생각도, 시도도 안하고 몇십년을 그냥 느낌적(?) 느낌으로 쓰는 단어가 있게 마련인데 나에겐 기타 '리프'란 단어가 딱 그랬다. 이 글을 쓰기위해 생전 처음 찾아본 사전적의미는 다음과 같았다.
리프, riff 명사 음악 2소절 내지 4소절의 짧은 악구(樂句)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재즈 연주법. 또는, 그 멜로디.
음 재즈라니… 당황스러웠다. 내게 리프는 오로지 락과 헤비메탈에서만 쓰이는 용어였고, 재즈에서는 익히 쓰이는 프레이즈(phrase) 라는 용어가 지배적으로 떠오른다. 아마 음악으로 껌 좀 씹었다(?)는 분들도 대게는 아마 나와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미소가 지어진다. 저렇게 제대로 된 용어의 뜻을 모르고 살아왔음에도 의사소통에 큰 지장이 없었다는 게 바로 우리나라 음악인 대부분이 나와 같은 의미를 공유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리프가 정확히 뭐냐고 묻는 사람도 흔치는 않치만, 하여튼 나도 나름의 멋진 용어로 친구들이나 동생들에게 설명하고는 했었다.
“그것은 음악의 ‘얼굴’이자, 단 한 번만 스쳐도 뇌리에 박히는 ‘각인(Signature)’이다. 위대한 소설이 독자의 멱살을 단번에 움켜쥐는 강렬한 첫 문장으로 시작하듯, 위대한 록 음악은 청자의 심장을 파고드는 기타 리프로 시작한다.”라고 설명해왔다. 아마 락매니아들은 대게 동의하실테다.
각설하고, 요즘 아이들은 클릭 몇 번으로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듣는다. 노이즈 하나 없이 완벽하게 정제된, 차갑고 매끄러운 소리의 파편들. 심지어 인공지능은 그들의 취향을 완벽히 분석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주기까지 한다. 편리하고 효율적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 궁금해진다. 그 소리들에도 과연 냄새가 있을까.
그래픽 : 박주현 불타버린 공연장을 보며 만들었다는 Deep Purple 의 "Smoke on the Water"
너무도 잘 알려져 굳이 소개를 해야할까 고민하게 만든 딥 퍼플의 ‘Smoke on the Water’. 그 리프를 들을 때면 나는 레만 호숫가의 싸늘한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는 기분이 된다. 모든 것이 불타버린 공연장, 그 잿더미 위로 피어오르던 검은 연기. 리치 블랙모어가 호텔방 창문으로 그 풍경을 보며 네 개의 음표를 툭 던졌을 때, 그것은 작곡이라기보다 차라리 풍경의 일부를 손으로 떠내는 행위에 가까웠을 것이다.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을 거꾸로 뒤집어 만들었다는 그의 무심한 인터뷰는, 어쩌면 그 순간의 막막함을 감추기 위한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그 리프에는 분명, 모든 것이 사라진 후의 그을음 냄새가 배어있다.
건즈 앤 로지스의 ‘Sweet Child o' Mine’은 또 어떤가. 슬래시는 그저 손가락을 풀기 위해 의미 없는 음들을 뚱땅거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서커스 음악 같은 장난이었다. 하지만 그 소란스러운 소음 속에서 액슬 로즈는 한 편의 시를 발견했다. 다락방처럼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운 잼 세션, 그 우연한 소음이 훗날 한 세대의 연가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 리프에서는 햇살 좋은 오후, 친구들과 낄낄거리며 장난치던 시절의 냄새가 난다.
사랑의 열병을 앓아본 사람이라면 에릭 클랩튼의 ‘Layla’를 맨정신으로 듣기 힘들다.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게 된 남자의 비통함. 그는 페르시아의 옛 비극 서사시에서 이름을 빌려와 자신의 지옥을 노래했다. 일곱 개의 날카로운 음표는 단순한 연주가 아니라, 차라리 가슴을 쥐어뜯는 사내의 흐느낌이다. 인공지능에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고통’을 입력하면 수만 가지의 슬픈 멜로디를 만들어낼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소리도, 한 인간이 실제로 겪어낸 사랑의 열병이 남긴 화상 자국만큼 뜨거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에서는 퀴퀴한 지하실 냄새가 난다. 여자친구가 쓰던 데오드란트 이름에서 따온 제목이라는 시시껄렁한 탄생 비화와는 별개로, 그 리프는 불안과 자기혐오로 가득 찬 90년대 청춘들의 송가였다. 커트 코베인은 이 리프가 너무 단순하고 유치해서 부끄럽다고 했지만, 그 어설픔과 서투름이야말로 우리가 사랑했던 너바나의 모든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악기에 비유하자면 튜닝이 약간 어긋나 있었고, 그런 불안감이 금방이라도 그를 부셔버릴 듯 위태로웠다.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는 스튜디오라는 공간 자체를 하나의 악기처럼 사용한 마법사였다. 앰프를 복도에 내놓고, 마이크와의 거리를 조절하며 소리의 공간감을 만들어냈다. ‘Whole Lotta Love’의 육중한 리프는 단순히 기타를 연주한 결과물이 아니라, 스튜디오의 벽과 바닥, 공기의 울림까지 모두 녹음된 아날로그의 기적이다. 그 소리에서는 낡은 스튜디오의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 진공관 앰프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온다.
먼지 쌓인 다락방은 이제 없다. 클릭 한 번이면 세상의 모든 소리를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음질로 소환할 수 있는 시대.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잡음 섞인 옛 음악들에 귀를 기울인다. 완벽하지 않아서, 그을음과 먼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더 진짜처럼 느껴지는 소리들. 어쩌면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것은 멜로디 자체가 아니라, 그 소리에 묻어있던 아날로그의 냄새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