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박주현
부고가 잦은 시절이라는 핑계로 여러 부고 사이에 그의 이름을 함께 끼워 넣어 보내긴, 내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서 아쉬움이라도 없게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눌까 한다. 이 글은 그를 향한, 나만의 뒤늦은 작별 인사다. 대부분의 부고는 스쳐가지만, 유독 척 멘지오니의 이름 앞에서는 뭐랄까 슬픔이라기 보단 그저 마음이 오래 머문다.
세상에는 온도를 가진 소리가 있다. 척 멘지오니의 플루겔호른이 바로 그런 소리였다. 트럼펫보다 넓고 벨벳처럼 부드러운 그 소리는, 단순히 음표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따스한 포옹에 가까웠다. 그의 부고를 접한 순간, 세상의 온도가 조금은 내려간 듯한 서늘함이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곡 제목처럼, 그가 평생에 걸쳐 들려준 음악과 삶은 참 ‘기분 좋은’ 것이었기에.
모든 것은 그의 아버지, 프랭크의 식탁에서 시작됐다. 로체스터의 평범한 식료품점 주인이었던 아버지는 지금와서 보면 '재즈의 신'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아들들이 음악을 사랑한다는, 그 소박하고도 위대한 이유 하나만으로. 어린 척과 가봇은 아트 블레이키와 함께 스파게티를 먹고, 사라 본의 목소리를 지척에서 들으며 자랐다. 음악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밥을 먹고 삶을 나누며 자연스레 스며드는 것임을 그는 온몸으로 체득했다. 그의 음악에 유독 가족적인 서사와 따뜻함이 넘실대는 이유일 것이다. 웅장하면서도 애처로운 그의 대표작 ‘산체스의 아이들(Children of Sanchez)’을 들을 때면, 북적이는 거실의 소음과 환대가 뒤섞인 그 시절의 풍경이 그려지는 듯하다.
그 따뜻함은 국경을 넘어 예상치 못한 울림을 만들었다. 1999년 폴란드, 그는 여느 때처럼 ‘산체스의 아이들’을 연주했다. 연주가 끝나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객석의 모든 사람이 기립했고,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 채 가슴에 손을 얹고 있었다. 척 멘지오니 자신도 몰랐지만, 이 곡은 냉전 시절 폴란드 국민들에게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을 담은 비공식 국가와도 같은 노래였다. 자신의 선율이 이토록 처절한 기도가 되었다는 사실을 마주한 순간, 이 겸손한 연주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는 그저 어머니를 위해 바친 감미로운 발라드 그래미 어워드에 빛나는 ‘벨라비아(Bellavia)’를 연주하듯, 세상을 향한 위로를 연주했을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그 다음은 나의 최애곡. 그의 온기는 전세계의 심장을 뛰게 했다.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동계 올림픽의 공식 주제곡 ‘Give It All You Got’이 바로 그것이다. 이 곡은 단순히 배경음악이 아니었다. 한계에 도전하는 선수들을 향한 음악적 격려사이자, ‘있는 힘껏 부딪쳐보라’는 그의 따뜻한 외침이었다. 대부분의 공식 주제가가 장엄한 오케스트라로 채워지던 시절, 그는 재즈 퓨전이라는 가장 그다운 방식으로 시대의 영광을 노래했다. 그의 선율 속에서 선수들은 모든 것을 쏟아냈고, 세계는 환호했다.
돌아보면 그는 결코 자신을 거장이라 부르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다. 그가 오랫동안 열었던 ‘캣 인 더 햇(Cat in the Hat)’ 이라 이름 붙힌 어린이 음악회의 유일한 입장 규칙은 ‘보호자를 동반한 아이’였다. 그는 연주를 마친 뒤 아이들을 무대로 불러, 자신의 반짝이는 플루겔호른을 쥐여주었다. 처음 만져보는 악기의 차가운 감촉과, 숨을 불어넣었을 때 터져 나오는 신기한 소리.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동자 속에서 그는 아마도 자신의 어린 시절, 아버지의 식탁에 앉아 있던 재즈 거장들의 모습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그의 또 다른 명곡 ‘환상의 나라(Land of Make Believe)’는 바로 그런 순간을 위한 찬가처럼 들린다. 음악이란 아이들이 마음껏 뛰노는 환상의 나라와 같다고, 그는 온몸으로 속삭이고 있었던 것이다.
한 사람의 진심은 이처럼 가장 연약한 곳에서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척 멘지오니가 떠났다. 그의 음악을 틀자, ‘구름을 걷어내고(Chase the Clouds Away)’의 위로가 흐른다. 그는 생전, 결코 즐겁지 않은 음악을 히트시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평생 연주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그는 평생 이 ‘좋은 느낌’을 연주하는 것을 행복해했다.
그가 떠난 지금, 우리는 그의 삶과 음악이 남긴 온기를 그러모은다. 화려한 성공이나 날 선 외침이 아니라, 아버지의 식탁에서 시작된 작은 환대, 아이들의 손에 악기를 쥐여주던 겸손함, 그리고 세상의 아픔을 자신도 모르게 어루만졌던 그 따뜻한 선율. 그것이 척 멘지오니가 우리에게 남긴 진짜 ‘좋은 것’들의 목록이다. 그의 플루겔호른 소리가 오늘, 유난히 그립다.
이 기사에 5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며칠동안 척 멘지오니의 곡을 계속 듣고 있어요.
와우.
암울한 시국에 좋은 기사와 음악으로 힐링하고 갑니다.
알던 이름들을 부고와 함께 다시 보게 되는 시절입니다. 나이 먹었다는 증거겠지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너무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척 멘지니오.. 몰랐는데 음악을 들어보니 나무 악숙하네요. 베리 귯 !!!
돈포터의 보컬이 들어간 필소굳도 정말 좋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