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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가 흐르자, 국도가 캘리포니아가 되었다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5-08-02 11:35:17
  • 수정 2025-08-05 03:58:45

  • 아이가 "이 노래 뭐야?"라고 묻게 될 플레이리스트
  • 조금은 특별한 바캉스를 위한 음악들.

그래픽 : 박주현 바캉스는 설렘이기도 하지만 도로에서 시간은 고행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여름의 한복판을 가르는 자동차는, 때로 세상과 격리된 작은 섬이 된다. 엔진의 낮은 고동 위로 에어컨의 백색소음이 부서지고, 차창 밖 익숙한 녹음은 되레 비현실적인 잔상으로 흐른다. 아스팔트의 아지랑이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녹여내고, 나는 그 부유하는 감각의 한가운데서 오래된 의식처럼 음악을 켠다.


첫 곡은 하나의 선언이다. 이 지루한 이동의 시간을 다른 색채로 물들이겠다는 조용한 의지. 이를테면 스틸리 댄(Steely Dan)의 ‘Peg’. 완벽하게 조율된 악기들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제 빛을 발하는 순간, 끈적한 한국의 여름 공기는 홀연히 캘리포니아의 나른한 오후로 국적을 바꾼다. 일종의 음향적 연금술이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에 박았던 시선을 들어, 이 낯선 멋의 출처를 찾듯 허공을 헤맨다.



길이 열리고 속도가 붙자 풍경은 선이 되고 빛은 점으로 흩어진다. 그때 나는 21세기의 프랑스로 핸들을 꺾는다. 피닉스(Phoenix)의 ‘1901’. 신시사이저의 몽롱한 아르페지오가 심장을 두드리고, 이내 터져 나오는 경쾌한 기타 리프는 멈춰 있던 시간을 다시 달리게 만든다. 그것은 80년대의 낙관도, 70년대의 나른함도 아닌, 세기말의 청춘들이 상상했던 미래의 파편 같은 소리다. 아이가 묻는다. "이건 좀 신나네요." 그 한마디면 족하다. '신난다'는 감각이 얼마나 다채로울 수 있는지, 우리는 지금 함께 배우고 있으니까.



그러다 문득, 너무 밝은 빛이 부담스러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땐 카디건스(The Cardigans)의 ‘Carnival’이 제격이다. 스웨덴의 차가운 공기를 머금은 이 달콤한 멜로디는, 명랑한 표정 뒤에 숨겨진 작은 우울의 그림자를 닮았다. 여행의 들뜬 마음 한편에 자리한 사소한 불안처럼, 그 부조화가 오히려 기묘한 위안을 준다.



하지만 이 모든 사색과 감상도,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는 그저 관념일 뿐. 가끔은 모든 생각을 지워버릴 순수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한여름에 9월을 노래하는 유쾌한 모순,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의 ‘September’ 를 트는 것은 그래서 거의 본능에 가깝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남반구의 겨울을 찾아 날아가는 것이나, 반년이나 떨어진 겨울을 기다리는 것보다야 9월을 기다리는 게 훨씬 현실적이지 않는가? ‘Ba-de-ya’ 후렴구가 터져 나오는 순간, 자동차라는 작은 섬은 국적도 세대도 불분명한 모두의 파티장이 된다. 논리 같은 건 잠시 접어둬도 좋다.



그렇게 한바탕의 열기가 휩쓸고 지나간 뒤, 나는 남부 프랑스의 집시들을 떠올린다. 집시 킹스(Gipsy Kings)의 ‘Bamboléo’. 그것은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생명력이다. 모닥불의 타닥이는 소리와 흙먼지가 뒤섞인 듯한 그들의 목소리는, 잘 닦인 도로 위를 달리는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야성의 감각을 흔들어 깨운다. 문명의 궤도에서 잠시 이탈하는 짜릿함이다.



어느덧 해가 기울고, 차 안이 온통 주황빛으로 물들 때쯤, 나는 이 긴 여정의 마지막을 위해 준비해 둔 곡을 튼다. 빛과 소금의 ‘오래된 친구’. 수많은 이국의 소리들을 거쳐 마침내 당도한 우리 땅의 소리. 그러나 그 어떤 세련미에도 뒤지지 않는 고유한 멋. 장기호의 베이스는 마치 오랜 친구의 위로처럼 나직하고 단단하게 공간을 채우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 속에서 각자의 상념에 잠긴다.



음악은 잦아들어도, 그 소리가 남긴 무형의 색채는 우리의 침묵 속에, 아이들의 기억 속에, 올여름의 한 페이지에, 그렇게 영원히 스며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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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0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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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ngkeun22025-08-03 18:16:27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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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on6er2025-08-03 01:14:51

    휴식같은 곡들이네요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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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neyousmirae2025-08-02 16:52:48

    아이 뿐만 아니라 늙어가는 저도 이게 무슨 노래야 싶네요, september 외에는. 그래도 분위기 상 오랜 추억을 자극하는 맛이 있어 좋습니다. 기자님의 가슴은 멋진 음악들로 풍성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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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2 14:47:03

    빛과 소금 추억의 이름이네요 ㅋㅋ 집에 음반이 어디 있을건데..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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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nes2025-08-02 14:42:21

    하나같이 좋아하는 곡들입니다. 여기서 스틸리 댄을 듣게 될 줄이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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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2 14:40:15

    덕분에  좋은 음악 들으며  집안일중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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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ril04112025-08-02 14:03:37

    토요일 일하고 있는데, 음악 잘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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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2 13:20:18

    덕분에 여행 잘 했네요
    September만 알겠네요
    연식이 오래되서리 ㅎ
    기티를 많이 좋아하시는듯~
    여행가고 시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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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dongong2025-08-02 12:23:04

    기사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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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2 11:44:52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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