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 : 박주현
정치판에도 ‘덕질’의 법칙은 존재한다. 앨범을 수백 장씩 사주던 아이돌 팬덤이 어느 날 탈덕을 선언하고 옆 그룹으로 갈아타는 것처럼, 정치 팬덤 역시 ‘최애’를 향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더 짜릿하고, 더 화끈하며, 더 ‘날 것’의 매력을 가진 새로운 스타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와 같다. 이 간단한 시장 원리를 민주당의 '아티스트' 이재명 대통령과 그의 기획사 성남라인은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애초에 ‘개딸’이라는 팬덤의 탄생은, 하나의 거대한 광신도 서사였다. 숱한 고난과 역경, 사법 리스크라는 의혹만이 무성한 신화를 등에 업고, 온갖 안티들의 공격 속에서도 우리 오빠를 지켜내겠다는 순정. 그들은 ‘이재명’이라는 아이돌을 대통령이라는 ‘빌보드 1위’ 무대에 세우기 위해 문자 폭탄으로 음반 판매량을 조작하고, 좌표 찍기로 스트리밍 순위를 올리는 헌신을 마다하지 않았다. 성공 가도를 달리던 이재명은 팬들의 열렬한 사랑에 취해 잠시 잊었을 것이다. 팬덤은 사랑만 먹고사는 순수한 존재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콘셉트’를 끊임없이 공급받아야만 유지되는 까다로운 고객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데뷔 초, 이재명의 콘셉트는 확실했다. 기득권이라는 거대한 적과 맞서 싸우는 ‘반항아 아이돌’이었다. 욕설과 막말은 그의 거친 매력을 더했고, 많은 의혹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며 무시했고, 그 언제 구멍이 뚫릴지 모르는 살얼음판 같던 아슬아슬한 법정 다툼은 팬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그런데 빌보드 1위, 즉 대통령이 된 순간 그는 돌변했다. 우리가 열광한 건 무대를 찢어놓는 록스타였는데, 갑자기 고뇌에 찬 발라드 가수가 되어 '통합'과 '협치'라는 생전 안 부르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팬들은 당황했다. 우리가 좋아한 건 헤비메탈 밴드의 보컬이었는데, 웬 프랭크 시나트라가 무대에 서 있나.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그의 탓도 아니다. 지존의 위치에서 언제까지 과거의 망령들과 쌈박질만 할 수도 없는 거 아닌가?
바로 그때, '개딸' 팬덤의 텅 빈 마음에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바로 '정청래'라는 언더그라운드 래퍼다. 그는 이재명이 버린 '반항아' 콘셉트를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팬들과 시장이 원하면 기꺼이 더 강한 비트와 더 자극적인 라임을 뱉을 준비가 되어있는 인물. 모두가 '이제 그만'을 외칠 때 혼자 ‘한 번 더’를 외치며 무대에 뛰어드는 그의 모습에, '개딸' 팬덤은 새로운 최애의 탄생을 예감했다. 강선우 장관 후보자 사태는 사실상 팬클럽 이전 기념 ‘입덕 조공’ 행사나 다름없었다. 박찬대라는 ‘공식 팬클럽 회장’이 눈치 없이 소속사 방침을 읊어댈 때, 정청래는 “우리 언니는 우리가 지킨다!”며 팬들의 마음을 대신 외쳐주지 않았던가.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팬덤은 열광했고, 그의 앨범 판매량은 수직 상승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제 단순한 딜레마를 넘어,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처지가 되었다. 권력이라는 안락한 침대에서 뒤척일 때마다, 자신이 직접 빚어낸 피조물, ‘개딸’이라는 괴물이 어둠 속에서 다가와 서늘하게 묻는 것이다. "절 왜 만드셨나요? 우리의 양식이 분노와 혐오인 것을 뻔히 알면서, 어째서 당신 혼자 고고한 성인의 가면을 쓰려 하십니까?"
그 괴물은 더 이상 낡은 실험실의 어둠에 머무르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은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더 맛있는 먹이 -더 짜릿한 증오- 를 주는 새로운 주인에게로 기꺼이 충성을 갈아타려는 순간일지 모른다. K-정치판의 흔한 아이러니라기엔 너무 음산한 호러다. 평범한 팬들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버림받은 괴물은 반드시 창조주를 파멸시키러 돌아온다. 실험실의 비극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