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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의 정치학: 민주주의 몰락의 서막
  • 박주현 칼럼리스트
  • 등록 2025-06-10 08:20:40
  • 수정 2025-06-10 11:4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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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은 자신을'지켜달라'한 적이 없다.
  • 죄책감이 만든 괴물의 정체
  • 우리 정치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망가져왔을까?

격쟁에서 격정으로


조선시대를 상상해보자. 왕이 행차할 때 억울한 백성이 꽹가리를 치며 격쟁을 하면, 그 사연을 들은 왕이 민원을 해결해줬다. 물론 완벽한 시스템은 아니었다. 격쟁하다 곤장을 맞기도 했고, 왕의 기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방향은 명확했다. 권력자가 백성을 구제하는 것.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정치인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SNS에 올리면 팬들이 문자 테러를 하고 댓글로 감싼다. 공당의 중진들이 나서서 말한다. "저희를 지켜주십시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인간이 약육강식의 동물의 왕국에 머물지 않게 하려고 정치가 생겨났다. 국민을 폭정에서 보호하려고 제도를 만들었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지키고 누가 누구를 보호한다는 건가. 격쟁에서 격정으로, 냉정한 민원 제기에서 열정적인 팬심으로. 500년 사이에 보호의 방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대체 어디서 부터 잘못된걸까?


덕질의 정치학: 우리는 언제부터 정치인을 아이돌로 만들었나


노무현은 "여러분이 저를 지켜주셔야 합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2002년 덕평수련원에서 그가 마이크를 잡고 실제로 한 말은 "(저를) 감시도 하고, (저를) 흔드는 사람들도 감시 좀 해주세요"였다. 그런데 그가 죽고 난 뒤, 사람들은 다른 말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아니, 기억하고 싶어 했다. 슬픔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진실보다 위로가 필요했고, 죄책감을 덜어줄 이야기가 절실했다.


이렇게 한국 정치에서 '감시'는 숨을 거두고 '지키기'가 첫 숨을 쉬었다.


죄책감이 만들어낸 괴물


2009년 5월 23일 새벽. 그날은 한국 정치사에서 분수령이 되었다. 봉하마을에서 들려온 소식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집단적 죄책감의 출발점이었다. "우리가 그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이 곧 다짐으로 바뀌었다. "다시는 우리가 지지하는 정치인을 잃지 않겠다."


이 순간부터 비판적 지지는 마지막 숨을 내쉬고, 무조건적 지지가 첫 호흡을 시작했다. 감시를 요구했던 사람의 죽음이 맹목적 지지의 근거가 되었다는 것, 이보다 더 아이러니한 역사가 또 있을까. 죄책감은 정치적 합리성을 집어삼킨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더 이상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보호하려 든다. 깨진 유리컵을 소중히 품듯이, 비판의 날카로움조차 위험하다고 여긴다.


정치인이 아이돌이 되는 순간


이재명 주변의 '개딸' 현상을 지켜보자. 그들은 감사패를 직접 제작하고, 꽃다발을 정성스럽게 준비하며, 꽃말까지 세심하게 골라낸다. 이것은 정치적 지지가 아니라 팬덤 활동이다. 정치인을 대하는 태도가 아이돌을 대하는 방식과 구별되지 않는다.


'개딸'은 원래 '개혁의 딸'이라는 뜻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어는 사용자의 의도를 자주 배신한다. 이제 '개딸'은 강성 팬덤의 다른 이름이 되었다. 개혁을 외치던 사람들이 가장 반개혁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역설이다.


칼 로저스는 무조건적 긍정적 관심이 치료 관계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상담실 안에서만 통하는 이야기다. 정치는 치료가 아니다. 정치인은 상처받은 내담자가 아니고, 유권자는 치료사가 아니다. 정치인에게 무조건적 긍정적 관심을 보내는 순간, 민주주의의 핵심인 견제와 균형은 심장마비를 일으킨다.


팬덤의 착각


개딸들은 혐오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뱉고, 물리적 위협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이 폭력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차라리 어린 친구들이라면 어리니까 그런가 보다 할 텐데 그도 아니다. 물론 온라인상의 폭언에 비하자면 오프라인에서의 폭력성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숨어 있다. 폭력의 부재가 건전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폭력성이 아니라 무조건성이다.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지지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에 대한 폭력이다. 연성 독재 또한 여전히 독재다.


정치 팬덤은 개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동훈을 지지하는 '위드후니'도 비슷한 궤도를 그린다. 한 지지자는 한동훈을 바라보며 "아직 타락하지 않은 정치인"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정치인은 타락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견제받기 위해 존재한다.


역사의 아이러니: 흔들던 자들이 흔드는 자가 되다


정치 팬덤의 가장 아이러니한 측면은 노무현을 흔들었던 장본인들이 이제는 맹목적 지지의 수혜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김민석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의 대북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국가 경영자로서는 불안하다"라고 평가하고 노무현과 끝까지 단일화를 거부했던 정몽준의 품에 안겼다. 추미애는 2004년 탄핵 정국에서 "노 대통령의 탄핵 사유는 책자로 만들 정도"라고 주장하며 표결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재명의 정치 인생 시작점에서 멘토 역할을 했던 정동영은 2007년 대선에서 노무현과의 갈등을 공개화하며 열린 우리당 해체를 주도했다.


그런데 이들이 이재명을 둘러싼 '개딸' 문화의 중심에 서 있다. 추미애는 2020년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이재명 지지세력과 결합했다. 김민석은 2025년 대선에서 이재명을 "김구·노무현을 잃지 않듯이 지킬 것"이라며 역사적 인물에 빗대는 망언과 자기가 등 떠밀었던 노무현의 기억을 왜곡했다. 정동영의 지지회장 출신으로 누구보다 노무현에 대한 '무조건 적'인 비판에 앞장섰던 이재명은 자신을 '전투형 노무현'이라며 그 내막을 잘 모르는 대중을 기만했다.


정치에서 입장이 바뀌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감시'를 거부하고 '지키기'를 요구하는 이들의 변신은 단순한 입장 변화를 넘어선다. 이는 정치 문화 자체의 퇴행이다.


소신파의 몰락


지난 대선 경선에서 사사오입 논란까지 만들며 겨우 대선후보에 오를 만큼 이재명을 위협했던 이낙연 현 새민주당 고문이 민주당 내에서 얼마나 모욕을 당하고 쫓기듯 탈당을 했는지는 너무 잘 알려져 있다.


조금은 덜 알려져 있지만 '조금박해'라는 이름으로 불린 조응천,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 이들의 운명은 정치 팬덤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파괴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들이 당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를 냈을 때, SNS에는 비난 글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휴대폰으로 전달되는 문자폭탄은 일상이 되었고, 결국 금태섭은 21대 총선에서 공천조차 받지 못했다.


이것이 민주주의인가? 소신을 가진 의원이 팬덤의 압력으로 정치 무대에서 퇴장당하는 것이 과연 민주적인가?


최장집 교수는 문재인 정부 시절을 돌아보며 "대선 캠프 인사들과 이른바 '빠(팬덤)'들의 정치운동으로 기존 정당이 소외되는 현상"을 민주주의 위기의 핵심으로 지적했다. 진중권 전 교수는 더욱 직설적이었다. "홍위병을 이용해 공포정치를 하는 문화혁명이 일상화했다"는 것이다.


정치 팬덤의 영향력은 너무 많은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 2024년 국회의장 선거에서 개딸들이 벌인 추미애 지지 서명운동이 그 증거다. 


국회의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자리다. 당적까지 포기해야 하는 위치에 강성 지지층이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이는 여야가 어렵게 지켜온 그나마 위태롭게 이어오던 합의의 정신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K-pop에서 배우는 교훈


아이러니하게도 건전한 팬덤의 모범 사례는 정치가 아닌 연예계에서 찾을 수 있다. K-pop 팬들을 보라. 그들은 좋아하는 아이돌을 위해 앨범을 구매하고, 굿즈를 수집하며, 콘서트장을 가득 메운다. 하지만 그 아이돌이 음주운전을 하거나 폭행 사건에 연루되면? 냉정하게 등을 돌린다.


이것이 진짜 팬덤이다. 사랑하되 맹목적이지 않고, 지지하되 무조건적이지 않다. 좋아하는 대상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잘못을 감싸는 것이 아니라 질타할 줄 안다.


정치 팬덤은 정반대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무엇을 해도 옹호한다.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도 말이다. 이것은 덕질이 아니라 맹신이다.


도구를 우상으로 만드는 어리석음


정치 팬덤에 빠진 사람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이 지키려는 것이 정말 정치인 개인인가? 아니면 그들이 입에 올리는 가치인가?


만약 후자라면, 그 가치는 특정 개인보다 훨씬 크고 중요한 것이다. 가치는 개인에게 종속되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이 가치에 종속되어야 한다. 정치인은 가치를 실현하는 도구일 뿐이다. 도구가 망가지면 바꾸면 된다. 하지만 그 도구를 우상으로 만드는 순간, 우리가 추구했던 가치는 오염된다.


노무현이 진정 바랐던 것은 자신을 지켜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건전한 견제와 균형을 요구했다. 그런데 그의 죽음이 오히려 견제와 균형을 거부하는 문화를 낳았다. 이보다 더 비극적인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시민이 되기를 거부한 사람들


정치인은 우상이 아니다. 완벽하지도 않고, 완벽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우리가 선출한 공복이다. 실수할 수 있고, 잘못할 수 있으며, 때로는 배신할 수도 있는 평범한 인간들이다. 그래서 견제가 필요하고, 비판이 필요하며, 때로는 교체도 필요하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하지만 정치 팬덤에 빠진 사람들은 시민이 되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판단하기를 포기하고, 비판하기를 두려워하며, 맹목적으로 따르기를 선택한다. 이는 민주시민의 책임 포기다.


우리가 지켜야 할 진짜 대상


정치인들도 이 문제를 모르지는 않는다. 2025년 2월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지적한 대로, 이는 "팬덤 정치가 만들어낸 사이클에 갇힌 언론의 자기모순"이다. 결과적으로 정치인과 언론은 서로를 악순환의 도구로 이용하면서, 시민사회를 '팬덤'과 '안티 팬덤'으로 양극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문제는 이 구조가 단순히 정치인들의 도덕적 해이에만 기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어준의 사례가 보여주듯, 한국 언론과 정치는 "혐오의 대상이자 동시에 동경의 아이콘"으로 존재하며 이 병든 시스템을 공고히 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3년 신동아 보도에 따르면 김어준의 방송은 "의도적 음모론 유포와 팩트 체크 회피 전략으로 시청자들을 세뇌해왔으며, 이는 여당 지지층의 인지적 편향을 강화시키는 효과를 낳았다"며 김어준을 '민주주의의 적'으로 규정하는 기사를 쓴 직후, 자사의 프로그램을 그와 유사한 포맷으로 프로그램을 개편한 아이러니 동시에 보여줬다.


이중성의 근원은 "비판과 모방의 동시작용"에 있다. 정치권이 팬덤의 지지에 취해 정치인의 소신을 유린할 때, 언론은 표면적으로 이를 비판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김어준 모델'의 성공 공식을 해체하지 못한다. 


해법은 견제와 균형의 원칙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노무현이 2002년 덕평수련원에서 요구한 "감시의 감시" 메커니즘을 재구축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팬덤의 열정을 민주주의 장치로 전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정치인은 지지층의 무조건성에 기대기보다 정책 경쟁을 통해 신뢰를 얻어야 하며, 언론은 김어준식 선동 언어를 버리고 사실 검증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직 이 길만이 '덕질 정치'의 망령에서 벗어나, 진정한 시민주권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잊지말자. 당신들이 진정 지켜야 할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당신들의 가족이고, 후손들이며, 그들이 살아갈 사회다. 정치인은 그 사회를 만들어가는 수단일 뿐이다. 수단이 목적을 잠식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덕질은 연예인에게 하라. 정치는 시민의 몫이다. 팬이 되지 말고 시민이 되어라. 지키지 말고 견제하라. 맹신하지 말고 판단하라. 그래야 노무현이 꿈꿨던, 진정한 의미에서 시민이 주인인 사회에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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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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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6-10 11:38:55

    정덕질의 시작은 노무현을 지키지 못했다는 부채감에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던 정치인을 지키기 위해 모였던 바로 우리 문파들이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네요. 그당시는 정의를 위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상대 입장에선 지금의 개딸의 모습이었을지도...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 라는 말이 얼마나 끔찍한 행동이었는지 많이 늦었지만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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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6-10 11:10:51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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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6-10 10:07:27

    좋은 칼럼입니다
    이걸 읽어야할 인간들은 소위 '덕질'하느라 안 읽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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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inp72025-06-10 09:35:09

    정치인 지지가 어느 순간 팬덤을 넘어 사이비종교가 되었는지 씁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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