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혁신처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가의 근간인 인사 시스템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재명 정부가 기어이 '장·차관 국민 추천제'를 현실화했다. 지난 25일 인사혁신처는 '공직후보자 정보 수집 및 관리 규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는 대한민국 행정 시스템을 지탱해온 실적주의와 검증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전문성이 생명인 고위 공직마저 인기 투표장으로 전락시키는 위험천만한 도박이 법적으로 승인되었음을 의미한다.
정부는 이를 '직접 민주주의의 확대'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다. 지금 거론되는 후보들의 면면을 보라. 하마평에 오른 3인의 면면은 이 제도가 얼마나 위험한 불량품 반입 통로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경제 라인에 거론되는 구윤철 전 국무조정실장은 어떤가. 그는 문재인 정부 시절 "집을 사지 말라"며 서민들의 대출을 옥죄던 부동산 규제의 컨트롤타워에 있었으면서, 정작 본인은 세종시 아파트 분양권 등으로 소위 '관사 재테크'와 '갭투자'를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교육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이진숙 씨의 사례는 더욱 기가 차다. 제자 논문 표절 의혹과 자녀 조기 유학이라는 이중적 행태로 이미 청문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낙마했던 인물이다.
여기에 '방역 영웅'이라는 허울을 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의 사례는 도덕적 해이의 정점을 찍는다. 그는 재임 시절 분당서울대병원에 449억 원의 국비를 지원하고, 퇴임 5개월 만에 바로 그 병원의 연봉 8천만 원짜리 위원직으로 취업했다. 명백한 이해충돌이자 전형적인 '회전문 인사'다.
왕년에 이름 좀 날리셨던 분들이 '국민 추천'이라는 꽃가마를 타고 화려하게 귀환 중이다. 법령까지 뜯어고쳐가며 깔아놓은 이 거창한 판이, 고작 유통기한 3년 지난 우유를 '숙성 치즈'라고 우기기 위한 것이었다니. 허탈함을 넘어 배신감마저 든다.
이 제도의 가장 큰 비극이자 코미디는 '평가 기준'의 실종이다. 냉정하게 따져보자. 애초에 일반 국민이 후보자의 전문성이나 업무 능력을 정밀하게 가늠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인사 검증 자료나 정책 수행 실적을 들여다볼 수도 없는 국민에게 추천을 하라는 건, 눈을 가리고 수술대에 누워 의사를 고르라는 것과 같다.
확인할 길이 없으니 결국 남는 건 이미지뿐이다. 국무회의를 통과한 이 규정대로라면, 이제는 '팬덤'과 '좋아요' 숫자가 스펙을 대신하게 생겼다. 기재부 장관이 되려면 복잡한 환율 방어 전략을 짜는 것보다, 틱톡 챌린지를 잘하거나 유튜브에서 "좋아요, 구독, 알림 설정!"을 외치는 게 더 유리한 세상이 온 것이다. 유명세가 곧 능력인 양 착각하게 만들어, 이제 나랏일도 실력이 아닌 '이미지 빨'로 퉁치려는 심산이다.
결론적으로 이재명식 '국민 추천제'는 19세기 미국의 '엽관제(Spoils System)'보다 더 나쁘고 비겁하다. 앤드류 잭슨은 최소한 "전리품은 승자의 것"이라며 자신들의 정치적 보상 행위를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대통령이 졌다.
하지만 작금의 정부는 어떠한가. 겉으로는 '국민 참여'라는 성스러운 명분을 내세우지만, 뒤로는 하자 있는 '내 사람'들을 챙기는 위선을 저지르고 있다. 나중에 인사가 망치고 국정이 파탄 나면 대통령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국민이 추천해서 뽑았을 뿐"이라고. 권력은 사유화하고 책임은 국민에게 떠넘기는, 역사상 가장 저열한 통치 기술이다.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그런 거였군요
내가 원하는 사람을 요직에 앉히되 책임은 지지 않기 위한...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그럼에도 다수를 속이는 기만술이지요.
눈가리고 아옹짓
저들이 말하는 국민은 뇌빼고 지지하는 그들 한정인듯요.
그니까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