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 1번지 나가타초(永田町). 이곳을 질주하는 라이더가 있다. 헬멧과 가죽 재킷 대신 정장을 입었지만, 그 정신만큼은 자유로운 도로 위를 향한다.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얘기다. 그의 정체성은 보수적 정책 강령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젊은 시절, 가와사키 Z400GP과 스즈키 카타나의 엔진 소리와 함께 자유를 만끽했던 열혈 바이커였던 과거가 현재의 그를 만들었다. 이 경험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훗날 그를 일본 라이더 사회의 가장 강력한 대변인이자 정치적 후원자로 만들었다.
애마 가와사키 Z400과 함께 한 다카이치 사나에 (다가이치 사나에 블로그 갈무리)
다카이치 사나에의 젊은 시절은 전형적인 여성 정치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자유를 찾아 모터사이클 면허를 땄고, 대형 바이크를 몰았다. 그의 애마(愛馬)는 1980년대의 상징이었던 가와사키 Z400GP 그리고 스즈키 카타나였다. 직렬 4기통 엔진을 탑재한 일본산 모터사이클을 타고 도로를 질주하는 젊은 여성. 그 모습은 독립과 대담함,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 정신 그 자체였다.
이러한 배경은 훗날 정치 무대에서 보여줄 행보의 예고편이었다. 라이더로서의 경험은 단순한 개인적 취미에 그치지 않았다. 수십 년간 정치권에서 소외됐던 모터사이클 커뮤니티라는 특정 유권자 집단과 깊은 유대를 형성하는 교두보가 됐다.
장거리 투어링은 물론 코너링도 적극적으로 즐겼던 다카이치 사나에
다카이치 사나에가 라이더들의 진정한 옹호자로 떠오른 결정적 계기는 일본 모터사이클 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고속도로 2인 승차 금지' 문제였다. 혼다, 야마하, 가와사키, 스즈키 같은 세계적인 모터사이클 제조사를 둔 일본이지만, 고속도로는 1인 승차만 허용되는 불합리가 수십 년간 이어졌다. 안전을 명분으로 한 경찰청의 완고한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좌절됐다.
전일본오토바이협동조합연합회(AJ)를 중심으로 한 라이더 단체들이 고군분투하던 중, 당시 중의원 의원이었던 다카이치에게 해법을 물었다. 그가 내놓은 답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었다. 일본 정치의 생리를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이었다. "의원 연맹을 만들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이 한마디가 판을 바꿨다. 다카이치는 개별적인 청원이나 로비만으로는 거대한 관료 조직을 움직일 수 없다고 간파했다. 국회 안에 라이더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공식적이고 초당적인 압력 단체, 즉 '의원 연맹' 결성을 역설했다. 흩어진 지지를 한데 모으고, 정치 의제를 제도화해 정부 부처와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힘을 갖추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일본 유명 바이크 만화 '바리바리 전설' 전권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다카이치의 조언은 즉각 행동으로 옮겨졌다. 라이더 옹호자들은 그의 청사진에 따라 움직였고, 2001년 마침내 '자민당 오토바이 의원 연맹'이 닻을 올렸다. 이 연맹은 국회 내에 라이더 권익을 위한 강력한 구심점이 됐고, 체계적인 입법 활동과 정치적 압박으로 경찰청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역사적이었다. 2005년, 마침내 고속도로 2인 승차가 허용됐다. 수십 년간 이어진 불합리한 규제가 철폐되는 순간이자, 일본 모터사이클 커뮤니티의 위대한 승리였다. 그리고 그 승리의 중심에는 "의원 연맹을 만들라"는 결정적 조언으로 돌파구를 연 다카이치 사나에가 있었다. 그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후에도 '바이커즈 의원 연맹'의 일원으로 꾸준히 활동하며 라이더들의 권익 향상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모터사이클을 타는 일본 국회의원들의 모임 '바이커즈연맹' (유튜브 화면 갈무리)
다카이치 사나에에게 모터사이클은 단순한 과거의 취미가 아니다. 그의 정치적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 요소이자, 유권자와 소통하는 강력한 상징이다. 헤비메탈 밴드 드러머, 22년간 한 대의 스포츠카를 고집한 자동차 애호가라는 파격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라이더 정치인'이라는 정체성은 그를 기존의 틀에 박힌 정치인들과 구별 짓는다.
그는 라이더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들의 열망을 공유하며, 무엇보다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정치적 지혜와 실행력을 증명해 보였다. 다카이치 사나에의 이야기는 개인의 열정이 어떻게 강력한 정치적 동력이 되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지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다.
김남훈 기자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런 멋진 정치인을 우리나라 언론들은 극우니 아베 시즌2니 폄하 하느라 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