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위공직자들이 자녀 결혼을 대놓고 알리는 풍토 유감
- 자녀 혼자 조용히 치렀던 예전의 공직자들, 공직윤리는 어디에?
- 한 자리 할 때 동네방네 알려서 큰일 치르는게 이 시대의 공직윤리인가
화환도 축의금도, 카드결제도 마다 않는 고위공직자 모씨 자녀의 결혼식(AI 상상도) (이미지: 가피우스)지역에서 유명한 금쪽이가 전학가는 학교에 금쪽이 부모가 전화해서 '애 할아버지가 시의원' 이라며 위세를 부렸다는 어떤 글을 보고 쓴웃음이 나왔다. 부모가 공직자면 자녀를 더 조심시켜야 되는게 정상 아닌가 싶겠지만 요즘은 그런 '경우 있음'은 쓸데없는 겸양, 심하면 위선으로까지 취급받는다. 대체 무슨 조화인지. 어디서든 '우리 부모가 누군지(또는 내가 누군지) 알아?' 같은 소리 못 하면,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갑질할 수 있음을 어필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됐다.
예전에는, 좀 개념있는 공직자들은 자식이 결혼해도 알리지 않고 주말에 조용히 식 올리게 하고 주중에 아무렇지 않게 출근하고 그랬다. 부모가 공직자면 자식들은 학교나 직장에서도 튀지 않게, 조심하며 지냈다. 학업 뿐만 아니라 예의나 옷차림 등 요구되는 기준도 훨씬 엄격했다. 대충 입고 막말하며 남의 입에 오르내리면 애비 얼굴에 먹칠하는 일이라며 사방에서 신신당부를 들었다. 공인의 자식이란 이유로 때로 손해나 오해도 감수하며 지냈다. 물론 옛날의 공인들이라고 다 그랬던 건 아니다. 그 때도 갑질하고 잘난 척 하고 직위를 이용해 해먹는 자들과 개념없는 자식들이 있었지만 제대로 된 사람들은 자식들 단속하고 염치를 지키면서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염치를 챙기는 공직자라는 것은 어디에 가야 볼 수 있을까. 문화재청은 국립중앙박물관 현대사관에 작게라도 한 자리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한때 한국에도 매사에 조심하며 삼가하는 '공직윤리'라는 것이 있었다고. 이제는 어떤 지경인가 하면 관직 한 자리 할 때 자식결혼 안 시키면 부모로서 직무유기며 사회인으로서 센스가 빵점인 사람이 된다. 방금, 모 고위공직자가 (또?) 곧 국회에서(또?) 자식을 결혼시킨다는 청첩장을, 그리고 거기 있는 축의금 링크를 보고서야 확실히 깨달았다. '고위 공직을 하면 자식 결혼을 공개적으로 치르는 것.' 이것이 바로 2025년 이 시기에 우리가 인정해야 할 한국의 뉴노멀이고 계엄과 탄핵의 혼란을 이겨내고 탄생한 국민주권시대의 공직윤리라는 것을.
'내가 해 봐서 아는데' 공직자의 일정기획은 '선례'가 중요하다. 아무리 명분이 있고 실행 후의 기대효과가 명확한 기획안이라도 이전에 해봤던 선례가 없으면 반려되기 일쑤다.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이 그런 이유로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아이디어는 좋지만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데 이런 건은 선례도 이미 있다. 일찍이 통께서 당선되자마자 장남의 혼사를 치러 선례를 보여주셨고 최근에 양자역학 과방위원장이 세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눈물 지으며 묵묵히 그 길을 따르지 않았던가. 선구자가 되는 건 그렇게 힘들다.
'전통'이란게 다른게 아니다. 며칠 만에 인공지능 신기술이 뚝딱 나오는 요즘은 수백, 수십 년의 축적도 필요없다. 힘과 의지만 있다면, 불과 몇 달 만에도 새로운 사회적 약속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흙더미를 옮겨 산을 만들 듯이. 누군가의 내면에서 어쩌면 작동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최소한의 염치 따위를 과감히 극복하고, 대중의 비판이라는 빙산들을 깨어 부수며 항해하는 쇄빙선처럼. 강자의 의지가 그저 작동할 때, 한 사회가 '진보' 하고 새로운 '전통' 또한 만들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