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위 공직자들의 부동산 논란이 다시금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본인의 서초동 다주택 보유 비판이 거세지자, “빠른 시일 내에 한 채를 처분하겠다”고 공언한 뒤 그 해법으로 ‘자녀에게 양도’를 제시했다. 한편, 구윤철 전 경제부총리는 과거 다주택자 처분 지시 당시, 법적으로 매도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며 강남의 아파트를 지키려 했으나, 이것이 사실과 다른 해명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가 지켜낸 아파트는 현재 시세 50억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국감에서 답변 (서울=연합뉴스)인간은 성벽을 쌓는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때로는 성벽 자체가 위협이 되기도 한다.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 되거나, 성 안과 밖을 다른 세상으로 단절시키는 거대한 차별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진보를 자처하는 권력자들이 쌓아 올리는 성벽이 바로 그렇다. 그들은 국민에게는 성벽 밖 거친 들판에서 살라며 온갖 규제의 돌멩이를 던지면서, 정작 자신들은 가장 높고 견고한 성벽 안에서 그들만의 잔치를 벌인다.
이찬진 금감원장이 내놓은 ‘자녀 증여’라는 해법은 단순한 꼼수나 편법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그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 즉 ‘아비투스(Habitus)’의 적나라한 표출이다. 수백억대 자산가에게 수십억짜리 아파트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행위는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상속의 절차일 뿐, 그것이 성벽 밖 사람들에게 어떤 박탈감과 모멸감을 안겨주는지 이해조차 하지 못한다. ‘문제를 해결했으니 이제 그만 떠들라’는 식의 태도에서는, 국민을 동등한 시민이 아닌 그저 시끄럽게 구는 성가신 존재로 여기는 오만함이 묻어난다.
구윤철 전 부총리의 사례는 더 노골적이다. 그는 ‘재건축 때문에 팔 수 없다’는, 법의 미로 속에 숨어 대중을 기만했다. 자신들이 설계한 복잡한 규제와 법률이, 평범한 국민에게는 덫이 되고 감옥이 될 때, 그들에게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는 가장 안전한 방패가 된 것이다. 이는 법과 원칙을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위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상징적 폭력’에 다름 아니다. 그가 지켜낸 50억 원짜리 강남 아파트는, 그의 거짓말 위에 세워진 견고하고 화려한 망루처럼 보인다.
이것이 어찌 한두 사람의 일탈이겠는가. 입만 열면 다주택자를 투기꾼으로 몰아세우던 민주당 의원들 중 예순한 명이나 규제 지역에 아파트를 보유하고, 그중 63%는 실거주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들은 정치 활동을 명분으로 지역구에서 월세살이를 하면서도, 서울 노른자위의 부동산만은 굳건히 지켜낸다. 마치 전쟁터의 장수가 안전한 성벽 꼭대기에서 병사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리는 것과 같다.
그들이 쌓는 성벽의 재료는 벽돌이나 시멘트가 아니다. ‘공익’, ‘정의’, ‘평등’과 같은 아름다운 단어들이다. 그 단어들로 치장된 성벽 안에서 그들은 안전하게 자산을 불리고, 다음 세대에게 부와 지위를 대물림한다. 성벽 밖의 사람들은 그들이 만든 정책 때문에 내 집 마련의 사다리가 끊기고,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월세에 고통받는다.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5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기들은 되고 나머지는 안되는.
이정부의 관료들 소식,
인선부터 해서 지치고 피곤하고 짜증난다.
즈그들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있었나 싶고,
앞으로도 그들만의 세습이 불문율로 굳어지겠구나 싶은.
4050 털신도 들은 아파트를 샀을까요 전세살까요 월세살까요? 계약갱신청구권 땜에 안심하고 있을까요?
범죄도 투기도 나는 해도 되지만 너희 개돼지들은 안돼
여당 내로남불은 한계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