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서버가 잿더미가 되어 국가 행정망이 암흑에 빠져들던 그 시각, JTBC 스튜디오의 조명은 대낮처럼 밝았다. 한쪽에선 국가의 ‘디지털 뇌’가 타들어가며 국민이 고통받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선 대통령 부부가 웃음꽃을 피우며 K-푸드를 논하고 있었다. 이 극명한 대비는 2025년 가을, 대한민국 리더십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한 편의 블랙코미디였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방영된 이재명 대통령의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은 단순한 판단 착오가 아니다. 이는 국정의 우선순위를 망각하고, 국민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며, 위기 앞에서조차 이미지 정치에 매몰된 리더십의 총체적 파산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다.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한 10월 6일 방송분 '냉장고를 부탁해' (JTBC 유튜브 갈무리)
국가 심장이 멎을 때, 대통령은 어디 있었나
지난 9월 26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배터리실 화재는 명백한 ‘인재(人災)’였다. 2022년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의 악몽이 재현됐지만, 교훈은 없었다. 안전 지침은 무시됐고, 소방 안전 조사마저 거부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정부24’를 포함한 647개 정부 시스템이 멈춰 섰고, 국민의 일상은 마비됐다. 여권 발급, 부동산 거래, 세금 납부 등 기본적인 행정 서비스가 중단되는 국가적 혼란이 초래됐다.
800명이 넘는 인력이 추석 연휴도 반납한 채 복구에 사투를 벌이는 동안, 비극은 결국 터져 나왔다. 복구를 총괄하던 행정안전부 서기관이 과로와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국가 시스템의 붕괴가 한 공직자의 생명까지 앗아간 참사로 번진 순간이었다.
바로 그 시점, 대통령의 선택은 현장이 아닌 스튜디오였다. 녹화는 화재 발생 이틀 뒤인 9월 28일에 진행됐다. 국가 기능 마비의 심각성이 드러나고 공무원들이 복구 전쟁에 막 돌입한 때였다. 방송이 나간 10월 6일은 그 공무원의 장례가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대통령실이 비난 여론을 의식해 방송을 하루 연기한 것은 차라리 코미디에 가깝다. 진정성이 있었다면 연기가 아니라 취소하고 애도했어야 마땅하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APEC 정상회의를 앞둔 K-푸드 홍보” , “문화 외교”라는 옹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심지어 “오히려 칭찬받을 일”이라는 오만한 태도까지 보였다.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국가 시스템이 마비된 비상 상황에서 K-푸드 홍보가 대통령의 최우선 국정 과제였는가. 대통령이 있어야 할 곳은 예능 카메라 앞이 아니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상황실이었다.
메인메뉴로 주목을 끈 '이재명 피자' (JTBC 유튜브 갈무리)
이미지 정치의 파산
이번 사태는 이 대통령의 ‘퍼포먼스 정치’가 지닌 위험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경기도지사 시절 물류센터 화재 현장 대신 ‘떡볶이 먹방’을 찍어 논란을 빚었던 과거가 오버랩된다. 위기 상황에서 실질적인 국정 운영보다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정치 쇼’를 우선시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불과 2년 전, 야당 대표 시절엔 전산망 장애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하고 장관은 경질하라”고 외쳤던 장본인이기에 ‘내로남불’과 ‘위선’이라는 비판은 더욱 뼈아프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친근한 연예인’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국가를 책임지는 ‘유능한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소통을 명분으로 카메라 앞에 섰지만, 국민은 그 모습에서 소통이 아닌 불통을, 공감이 아닌 몰이해를 목격했다. 따뜻한 명절 특집 방송은, 역설적으로 현 정부의 가장 냉정하고 무책임한 순간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국민의 마음속에 남은 질문은 단 하나다. 그 결정적 순간, 대통령에게 국가는 ‘이재명 피자’ 한 조각보다 중요했는가.
[팩트파인더=김남훈 기자]
김남훈 기자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3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헛웃음만 나옵니다 ㅡㅡ
네 다음 정동영에게 기웃대다가 문재인한테 기웃대다가 윤석열 김문수 밑으로 기어들어간 개미래충 ㅋㅋ
입만 열면 대통령의 '무한책임' 어쩌고 떠들어대고 막상 사고 나면 누구보다 멀리 도망가고 딴짓하는 모습이 역시나 '무책임'의 아이콘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