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의 축문(祝文) "건강하고 행복하시고 복 받으십시오."
오늘 아침, 광주행 KTX 열차 안에서 처음 뵌 분에게 받은 축복의 말이다. 그 소리의 울림이 쉬이 가시지 않아, 나는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노트북을 펴고 이렇게 글을 남긴다. 타인의 선의가 남긴 온기가 날아가기 전에, 그 결을 붙잡아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KTX 기차안에서 축복을 받았다 (사진=김남훈)
본래 나의 계획은 수소 전기차 넥쏘의 운전대를 잡고 광주로 향하는 것이었다. 수소차로 장거리를 나서는 일은, 한 세기 전 프로펠러 비행기로 대륙을 횡단하듯 세심한 항로 설정과 중간 기착지, 즉 충전소 확인을 요하는 번거로움을 동반한다. 그 과정이 주는 아날로그적 재미도 분명 있지만, 하필이면 일기예보는 밤새 폭우를 예고하고 있었다. 빗길을 뚫고 강연 시간에 쫓기는 아찔한 상황을 상상하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링 위에서 상대의 주먹을 피하는 것과 빗길의 돌발상황을 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긴장감을 요구한다. 결국 이틀 전, 나는 문명의 이기(利器)인 KTX로 마음을 돌렸다.
오전 7시 17분 용산역 출발. 열차가 쇳소리를 내며 한강 철교를 미끄러지듯 건너고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내 주변이 소란해졌다. 가장 많은 인영(人影)이 섞이고 흩어지는 역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때 통로 쪽에 노란 우비를 입은 한 분이 멈춰 섰다. 정확히는 두 사람이었다. 서울역 소속 사회복무요원과 중년의 여성이었다. 여성은 챙이 넓은 선바이저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투명한 비닐 같은 것으로 눈두덩이부터 머리 위까지를 온통 감싸고 있었다. 흡사 코로나시절 방역 현장의 의료진이나 양봉업자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요원의 안내를 받으며 안쪽으로 들어서려는 그녀를 위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손으로 의자를 더듬으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 나아갔다. 그 움직임은 마치 암흑 속에서 출구를 찾는 탐색자의 그것처럼 신중했다. 내가 다시 자리에 앉자, 그녀가 나지막이 말했다. “제가 좀 불편합니다.” 그제야 나는 그녀의 옆에 세워진 흰 지팡이를 발견했다. 시각장애인이시구나. 궂은 비를 뚫고 이른 새벽부터 길을 나선다는 것은, 온전한 시력을 가진 이에게도 수고로운 일이다. 그녀에게 이 여정은 얼마만큼의 용기와 각오를 필요로 했을까. 서울역을 출발해 서서히 속도를 얻기 시작한 KTX처럼, 여러 상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잠시 나의 일로 돌아왔다. 광주의 한 중학교 특강. 본래 90분짜리 한 클래스 강연이었지만, 학교 측의 사정으로 45분짜리 두 개로 나뉘었다. 육체와 정신의 에너지 소모는 같으니 2회 강연료를 받는 것이 마땅하나, 그들의 고충을 헤아려 그러마 했다. 링 위에서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대가를 받지만, 삶이라는 더 큰 무대에서는 때로 셈을 거두는 것이 미덕일 때가 있다. 나는 짧아진 시간에 맞춰 강연의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작업에 몰두했다. 맥북 화면의 키노트 파일을 수정하며 문장의 호흡을 조절하고, 불필요한 이미지를 덜어냈다.
어느 정도 작업이 마무리될 무렵, 옆자리의 그녀가 다시 시야로 들어왔다. 그녀는 좌석에 앉은 후에도 여전히 비닐로 얼굴 윗부분을 가린 채였다. 수술 직후라 물이 닿으면 안 되는 것일까, 혹은 다른 어떤 절박한 사정이 있는 것일까. 그녀는 가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테이블 위에 펼치고, 비닐 안쪽으로 손을 넣어 조심스럽게 땀을 닦아냈다. 그 모든 동작이 느리고 조심스러웠다.
무언가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먼저 말을 걸어도 괜찮을까? 혹 불필요한 동정이나 실례가 되지는 않을까? 현대 도시인의 예의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타인의 세계에 함부로 발을 들이지 않도록 훈련받는다.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각자의 섬이 된다. 나는 키노트의 저장 버튼을 누르고 업무를 마쳤지만, 선뜻 말을 걸 용기를 내지 못한 채 망설였다. 일단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타케우치 마리야의 ‘플라스틱 러브’. 세상에 나온 지 30년이 훌쩍 넘었지만, 조금도 빛바래지 않은 명징한 멜로디가 귓가를 채웠다. 이 곡을 대여섯 번쯤 반복해서 들었을 때, 기차는 공주역을 지나고 있었다.
그즈음부터 그녀의 움직임이 부산해졌다. 폴더형 휴대폰을 열어 버튼을 누르자, 익숙한 기계음이 현재 시각을 알려주었다. 시간을 확인한 그녀는 두 손으로 창가를 더듬고, 유리창에 얼굴을 바싹 댄 채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 애를 썼다. 차창 밖 풍경의 변화를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느끼려는 듯한 필사적인 몸짓이었다. 지금이다. 망설임이라는 링에서 내려올 때였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광주송정역까지 갑니다. 혹시 어디까지 가시나요?”
침묵. 내 목소리는 그녀에게 닿지 못한 채 객실의 소음 속으로 흩어지는 듯했다. 내가 실수한 걸까. 아니면 듣지 못하신 걸까.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저, 광주송정역까지 가는데요. 혹시 어디까지 가시는지요?”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낭패감이 빗물에 젖은 운동화 밑창처럼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바로 그때였다.
“저한테 말씀하신 건가요?”
그녀의 목소리였다. “네, 맞습니다. 혹시 어디까지 가시는지 여쭤봤습니다.” “네. 저도 광주송정역까지 갑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럼 내리실 때도 승무원께서 도와주시나요?” “네?” “하차하실 때 승무원께서 도와주시냐고요.” “네, 그렇습니다.” 코레일은 ‘교통약자 이동편의 서비스’를 통해 열차 이용의 전 과정을 돕고 있다. 아마 그녀는 그 제도를 통해 이 여정을 시작했을 것이다. “혹시나 해서 여쭤봤습니다.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지금 시각은 8시 50분이고, 광주송정역 도착 예정 시각은 9시 37분입니다.” “혹시 지금 밖에 비가 오나요?” “잠시만요. 지금 터널을 지나고 있어서… 아, 날은 흐린데 비는 그친 것 같습니다.”
짧은 대화가 끝나고 잠시 후, 승무원이 다가왔다. “손님, 광주송정역 도착하면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안내 방송 두 번 하고 이 자리로 오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를 둘러싼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하자, 안도감이 들었다.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문득 그녀가 선바이저 모자를 벗고 얼굴을 감쌌던 비닐을 풀었다. 그러더니 내 쪽을 바라보며 정중하게 말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굳이 얼굴을 보이지 않아도, 모자를 벗지 않아도 될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예를 갖추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시각장애인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 눈은 무언가를 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듯 맑고 깊었다. 그 눈동자 앞에서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우리는 눈을 통해 상대를 보지만, 어쩌면 진정한 이해는 눈 너머의 것을 보려 할 때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기차가 정읍을 통과하자 그녀는 다시 분주해졌다. 시간을 확인하고, 손바닥으로 의자와 테이블을 쓸며 불안을 다스리려는 듯한 몸짓이 역력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직 시간 여유가 좀 있습니다. 저도 같이 내리니까, 제가 미리 말씀드릴게요.”
열차가 광주송정역에 가까워지자 안내 방송이 시작되었다. 아마 이 순간, 그녀가 느끼는 불안은 최고조에 달했을 것이다. 혹시 못 내리면 어쩌나. 과거에 그런 낭패를 겪은 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원래 내 직업 중 하나가 ‘해설위원’ 아니었던가.
“곧 도착합니다. 지금 저희 바로 앞 칸 통로에서 승무원이 안내 방송을 하고 계세요. 아마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어디 있다고요?” “바로 앞 칸이요. 아, 이쪽으로 오시네요. 제가 먼저 비켜드리겠습니다.”
승무원이 도착했다. “손님, 이제 내리시죠. 제 팔을 잡으세요.” “승무원님, 역에도 이분을 도와주실 분이 계신 거죠?” “네, 저희 직원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승무원의 팔을 잡고 좌석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오른손 검지를 내가 서 있는 방향으로 쭉 내밀어 나를 가볍게 툭, 치더니 말했다.
“건강하시고 복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세상에서 가장 정중하고 따뜻한 형태의 축문(祝文)이었다. "아… 네, 고맙습니다." 나는 어눌하게 답했다.
작별 인사는 끝났지만, 나는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광주송정역에 내리는 사람은 많았고, 출입구는 이미 붐비고 있었다. 나는 한 걸음 떨어져 그들의 뒤를 따랐다. 열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그녀는 마치 무중력 상태를 유영하듯, 아주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계단을 내디뎠다. 그 모습에 오래전 기억이 겹쳐졌다. 시합 중 사고로 하반신 마비를 겪고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낸 뒤, 다시 걷게 되었을 때. 명동의 좁고 난간도 없는 계단 앞에서 느꼈던 그 아득한 공포. 나는 혹시라도 누군가 늦게 내린다고 타박할까 싶어, 일행인 척하며 출입구를 막아섰다. 다행히 그런 무심한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플랫폼에 무사히 발을 내디딘 후, 다른 역무원에게 인계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나는 개찰구로 향했다. 역사를 빠져나와 편의점에서 바나나우유 하나를 샀다. 한 모금 들이켜는 순간, ‘아차!’ 싶었다. 기차 여행의 백미는 창밖 풍경을 보며 마시는 바나나우유인데. 때를 놓친 후회가 보를 해체한 4대강 물처럼 밀려왔다.
꽤 오래 전에 세상에 나왔음에도 나는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오늘, 나는 그 해답의 아주 작은 실마리 하나를 얻은 듯하다. 낯선 이의 불안에 작은 다리를 놓아주는 것. 내가 한 일이라곤 그녀의 고독한 여정에서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아주 약간의 불안을 덜어준 것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내게 더할 나위 없이 큰 감사의 말을 남겼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순간들의 총합이 아닐까. 예기치 않은 곳에서 받은 축복이 내 삶의 풍경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온기를 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소박한 다짐을 하게 하는 것. 낯선 이의 축문은, 오늘 하루 나의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주었다.
김남훈
포기할까했는데 아직 3라운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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