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사임' 내걸고 행진하는 시민들 (파리=연합뉴스)
프랑스가 ‘국가 마비’ 상태에 빠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의 긴축 예산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와 총파업이 나라 전체를 휩쓸고 있다. 학교는 멈췄고, 파리 도심은 쓰레기 악취와 시위대의 분노로 뒤덮였다. 총리는 취임 불과 3개월 만에 불신임으로 물러났고,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연이어 프랑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하며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한때 예술과 낭만의 상징이던 나라가 국가 시스템 붕괴 직전의 혼돈에 빠진 것이다.
원인은 단 하나, 수십 년간 누적된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치명적인 독(毒) 때문이다. 한번 늘린 복지는 절대 되돌릴 수 없다는 ‘복지의 비가역성’이 국가 재정의 목을 조르고, 정치권은 표를 잃을까 두려워 폭탄 돌리기에만 급급했다. 그 종착역이 바로 오늘의 ‘국가 마비’ 사태다. ‘국가 부채가 너무 많아 이제는 빚 갚는 이자가 국방 예산보다 많아졌다’는 경고가 현실이 된 것이다.
'마크롱 꺼져' (파리=연합뉴스) 시중에서는 “저 지경까지 가는 나라가 과연 선진국이 맞나” 하는 의문이 나온다. 그러나 그 본질을 들여다보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재정 건전성 문제를 논할 때면 으레 ‘다른 선진국들도 부채 비율이 높다’는 식으로 본질을 호도하는 궤변을 펼치곤 한다. 하지만 프랑스가 보여주는 위기는 단순한 부채 숫자 문제가 아니다. 기축통화를 쓰는 나라조차도 포퓰리즘의 늪에 빠지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위기는 부채 비율 자체가 아니라, 국가가 빚을 감당할 능력과 의지를 상실하는 데 있다. 프랑스는 바로 그 능력 상실의 문턱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다.
비극의 씨앗은 ‘영광의 30년’이라 불리던 전후 고도성장기에 뿌려졌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연대’라는 숭고한 이름으로 시작된 보편적 복지 모델은 경제가 급성장할 땐 문제가 없었다. GDP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던 사회보장 지출이 어느새 20%를 훌쩍 넘겼지만, 성장의 과실이 모든 것을 덮었다. 그러나 1973년 오일쇼크로 성장이 멈추자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경제는 멈췄는데 복지 지출은 멈출 수 없었다. 오히려 실업자가 늘자 국가는 더 많은 돈을 풀어야 했다. 1974년부터 프랑스는 단 한 번도 재정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다. 끝없는 적자의 늪에 빠진 것이다.
결정타는 1981년 집권한 사회당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었다. 그는 ‘복지로 위기를 극복하겠다’며 주 39시간 노동, 60세 정년, 최저임금 대폭 인상, 대규모 국유화 등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한 거대한 사회 실험에 나섰다. 그 결과는 재정적자 폭증과 외환위기 직전의 위기였다. 뒤늦게 긴축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한번 풀린 고삐는 다시 조일 수 없었다. 이미 국민은 ‘국가가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환상에 깊이 중독된 상태였다. 길거리 파업은 정당한 권리이자 정부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프랑스 정치는 좌우를 막론하고 비겁한 정치인들의 연속이었다. 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몰랐던 지도자는 없었다. 하지만 누구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못했다. 개혁안을 내놓는 순간, 성난 민심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정권을 심판했기 때문이다. 1995년 자크 시라크 정부는 연금 개혁을 시도하다가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업에 부딪혀 백기를 들었다. 정치인들은 미래 세대에 빚더미를 넘길지언정, 현재의 인기를 잃는 고통은 감수하지 않으려 했다. ‘폭탄 돌리기’가 프랑스 정치의 본색이 된 것이다.
'부자에 세금을' (파리=연합뉴스) 그런 점에서 마크롱은 이전 지도자들과는 다르다. 그는 최소한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한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비난과 지지율 폭락을 감수하면서도 노동 개혁과 연금 개혁의 칼을 빼 들었다. 물론 그 방식이 거칠고 독선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인기 없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리더십 자체는 지금 프랑스에 가장 절실한 것이다. 지금 프랑스의 혼란은 어쩌면 죽기 직전의 환자가 고통스러운 수술을 받는 과정일지 모른다. 이 수술을 견뎌내야만 살 수 있다는 절박함이 마크롱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대기중인 경찰들 (파리=연합뉴스)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프랑스 폴란드 네팔 한국 우파 집회를 보도하는 기자들이 없음 현금 살포도 문제지만 유권자의 눈과 귀를 막는 언론때문에 이 나라는 망할 듯
이낙연이었다면 표 계산하지 않고 옳은 일은 국민 설득하며 갈 것이란 확신이 있지만 지금의 범죄자 정권은 절대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이재명 정권대로라면 대한민국의 암울한 미래가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디. 5년도 길다. 시간이 없습니다 에휴.
정치인들은 미래 세대에 빚더미를 넘길지언정, 현재의 인기를 잃는 고통은 감수하지 않으려 했다.. 지금 대한민국에도 실시간으로 생기는 일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