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러시아 파병이 '북풍'이라던 음모론자들
중국 전승절을 맞이해 한자리에 모인 푸틴, 시진핑, 김정은 (사진=연핮뉴스)
음모론이 진실을 압도할 때
작년 10월, 북한의 우크라이나 파병설이 처음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일부 진보 진영 논객과 매체들은 이를 한목소리로 '정보 공작'이자 '허위 사실'로 규정했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하고 명쾌했다. 윤석열 정부가 국내 정치의 위기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안보 불안을 조장하는 '북풍(北風)'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파병설을 보도하는 정부와 언론을 불순한 정치 공작의 하수인으로, 이를 믿는 대중을 비이성적 선동의 희생자로 몰아세우는 거대한 서사로 발전했다.
그러나 시간은 진실의 편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북한군 포로가 생포되고, 수천 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났으며 , 급기야 올해 평양과 모스크바가 공식적으로 파병 사실을 인정하며 이를 '동맹의 의무'로 포장하기에 이르렀다. 한때 보수 세력의 망상으로 치부되던 파병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 극적인 반전 앞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여론의 한 축을 담당하는 지식인 집단이 이토록 명백한 국제 안보 사안을 오판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주장이 파산 선고를 받은 지금, 왜 그토록 단호하게 '허위 사실'이라 외쳤던 이들 중 누구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거나 대중에게 사과하지 않는가? 진실이 드러난 후 찾아온 그들의 침묵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러시아 파병 병사들의 유해를 맞이하고 있는 김정은 (사진=연합뉴스)
어떻게 '가짜 뉴스' 서사가 구축되었나
파병설에 대한 이들의 대응은 단순한 회의론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실을 대체할 정교한 대안 서사를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첫째, 모든 의혹은 '북풍'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환원되었다. 당시 정부가 영부인 문제 등으로 수세에 몰렸다는 점을 근거로, 국가정보원의 이례적인 정보 공개 자체가 정권 위기 타개를 위한 정치적 의도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로써 파병설은 사실 검증 이전에 '보수 정권의 음모'라는 낙인이 찍혔다.
둘째, '팩트체크'의 이름으로 증거 해체가 시도되었다. 뉴스타파, 자주시보 등은 '생존 북한군 병사' 영상의 음성과 입 모양 불일치, 인위적인 편집 흔적 등을 지적하며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히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공개된 북한 노동당원증이 김정일 사진이 누락되고 존재하지 않는 기관명이 찍힌 조악한 위조품이라고 지적하며 회의론에 전문가의 권위를 더했다.
셋째, 이중잣대가 적용되었다.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증거에는 현미경을 들이대면서도, 러시아와 북한의 주장은 비판 없이 수용되거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되었다.이는 그들의 분석이 국제정세의 현실보다 국내 정치의 진영 논리에 종속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불편한 진실의 도래, 그리고 위대한 침묵
그러나 견고해 보였던 음모론의 벽은 무너져 내렸다. 미국과 나토가 파병을 공식 확인하고, 뉴욕타임스가 북한군의 막대한 사상자 규모를 보도하면서 의혹은 사실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결정타는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포로들의 생생한 증언이었다. 전쟁에 참전하는 줄도 모르고 끌려왔다는 기만적인 파병 과정과 "한국으로 꼭 가고 싶다"는 한 포로의 절규는 그 어떤 정교한 반론보다 강력한 인간적 증거였다.
마침내 올해 4월, 러시아와 북한은 파병을 공식 인정하며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에 따른 합법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북한 친구들의 행동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모든 것이 명백해진 지금, 과거의 '음모론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은 침묵과 주제 전환이라는 손쉬운 길을 택했다. 대표적으로 '자주시보'는 과거 "거짓으로 가득한 '북한군 러시아 파병설'의 근거들"이라는 기사를 통해 파병설을 맹비난했지만, 파병이 공식화되자 아무런 해명 없이 "북한군 파병은 러시아 요청이 아닌 북한의 결정"이라는 기사를 태연히 보도했다. 이는 자신의 발언에 대한 공적 책임을 회피하는 지적 부정직의 전형이다.
신뢰 회복의 길은 정직함뿐이다
이 사태는 정보가 객관적 사실이 아닌, '어느 진영에서 나왔는가'에 따라 신뢰도가 결정되는 '진영논리'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확증편향'은 소셜미디어라는 '메아리 방' 속에서 괴물처럼 증폭되었다.
지식인의 가장 큰 죄는 틀리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죄는 자신의 오류가 명백히 드러났을 때조차 이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지적 비겁함이다. 북한 파병설을 둘러싼 논란이 끝난 지금, 우리 사회를 뒤덮은 논객들의 침묵은 대중의 신뢰에 대한 심각한 배신이다.
이제라도 그들은 자신의 오판이 어떤 근거에서 비롯되었는지, 그리고 왜 대중을 오도했는지에 대해 설명할 책임이 있다. 진영의 논리보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지적 정직함,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수정할 용기만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침묵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책임을 회피하는 자들의 마지막 도피처일 뿐이다.
김남훈 기자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5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잘못했다고 사과도 반성이라도 하면 죽는줄 아는 것들이죠.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이거 지금 여조해도 민주당 지층은 90퍼가 여전히 음모론 이라고 답할 겁니다 ㅎ
사실도 진영논리에 따라 왜곡돠고 부정되는 현실이 무섭네요
진실이 밝혀지면, 진보들 항상 아님 말고 식 태도를 보이는 거 정말 역겨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