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한화 필리조선소(Hanwha Philly Shipyard)를 방문했다. 조선소에서 이 대통령은 미 해양청이 한화에 발주한 다목적선 ‘스테이트 오브 메인(State of Maine)’호의 명명식에 참석했다.
필리조선소는 1801년 미국 해군 조선소로 설립된 시설로 미국 조선업의 역사와 쇠락을 상징한다. 2024년 6월, 한화그룹이 약 1억 달러(한화 약 1,380억 원)에 100% 인수했는데 이는 국내 기업의 미국 조선소 인수 첫 사례. 현재 한화는 이 곳에서 미국 연안에서 운항하는 상선과 미 해양청이 발주하는 다목적선을 주로 건조하고 있으며 최근 관세협상의 열쇠가 된 '마스가(MASGA)' 프로젝트(한국의 기술과 자본으로 쇠퇴한 미국 조선업을 재건하겠다는 협력 프로젝트)의 거점으로 삼을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화 필리조선소에서 시찰 후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 두번째부터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이 대통령, 시 샤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사진: 연합뉴스)
그런데 이 자리에 미국 측의 고위급 인사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당초 명명식에 참석키로 한 숀 더피 교통부 장관, 로리 차베스디레머 노동부 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관련 부처 인사들이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 백악관 관료회의 때문이라지만 정부 고위급이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인 결례다. 밴스 부통령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전날 워싱턴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밴스 부통령이) 회담 장소에서는 긍정적으로 답변했는데 그 뒤로 제가 백악관으로부터 못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명명식 현장에는 시 샤피로 팬실베이니아 주지사만 참석했다.
기존 정상외교 사례와 비교하면 명백한 '결례'
방문국가가 자국의 산업시설에 대규모로 신규 투자하는 이런 수준의 행사에 고위관료들이 불참하는 것은 외교결례로 보이는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차치하더라도 JD 밴스 부통령이나 교통, 통상, 노동부 장관들은 참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의전이었을 것이다.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한국의 대통령이 해외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상징적인 시설을 방문하면 상대국 고위급 인사들이 함께하며 예우를 갖추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2018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의 인도 국빈 방문 당시, 두 정상은 삼성전자의 인도 노이다 신공장 준공식에 함께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도 참석하여 영접했다. 모디 총리는 문 대통령에게 지하철을 타고 함께 이동하자고 깜짝 제안하고 이동 내내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이며 양국의 경제 협력을 강조했다. 이후 중국 현대차 공장 방문, 싱가포르의 GS 건설 현장 방문 때는 정상급이 동반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고위급 정부인사들이 동행했다.
모디총리와 문재인 전 대통령. 삼성의 노이다 신 공장 준공식에 함께 참석했다. 이재용 회장, 강경화 당시 외교부장관의 모습도 보인다. (사진: 문재인정부 청와대)
이런 의전은 총리급 외교 행사에서도 적용된다. 2019년 이낙연 총리가 쿠웨이트에 현대건설이 시공한 '셰이크 자베르 코즈웨이' 해상연륙교 개통식에 참석했을 때, 쿠웨이트 측이 파격적인 환대를 보낸 것이 대표적인 예다. 원래 예정됐던 개통식 날짜를 이 총리의 방문일에 맞춰 재조정했으며 90세의 사바 알-사바 국왕을 비롯해 왕실과 정부 인사들이 모두 참석했다. 개통식 축사도 국왕이 아닌 이 총리가 첫 번째로 하도록 배려했다.
이 밖에 여러 과거 사례를 종합해 보면, 한 나라의 최고위급 인사가 상대국의 산업 시설을 방문할 때, 특히 그 시설이 기업이 신규 투자한 시설로 양국에 공통의 이익을 가져다 주는 상징성이 있다면 상대국에서도 그에 걸맞은 최고위급 인사가 동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외교 관례다.
알-사바 국왕과 악수하는 이낙연 전 총리. 국왕은 90세의 고령에도 이총리와 40분간 단독면담을 하고 직접 행사장에서 영접했다. (사진: 연합뉴스)
하지만 이번 필리조선소 방문에서는 이러한 관례가 지켜지지 않았다. 한화가 미국 조선업 재건의 상징인 필리조선소에 막대한 자본과 기술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측이 이에 대한 예우를 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의 미국정부가 미국 우선주의와 패권적 시각으로 국제무대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트럼프정부' 라는 차원에서, 이번 '무례' 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짐작해 볼 수 있다.
1.정치적 압박의 수단: 정상회담 직전 트럼프는 '한국에서 숙청 또는 혁명'이 일어나는 것 같다는 메시지를 트루스소셜에 올리며 한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그 메시지는 윤석열 대통령의 특검수사에 대한 추궁, 또는 혹은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미국 측의 불신을 암시하며 큰 충격을 주었다. 한국측은 트럼프의 돌발 메시지에 긴장했지만 실제 회담에서 그 주제에 대한 진지한 대화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트럼프는 해당 문제에 대한 기자의 질문을 가볍게 넘기고 '오해였을 것' 이라고 일축했다. 왜 그렇게 했을까? 트럼프의 행동은 회담 직전에 상대를 위축시켜 우위를 점해 가능한 많은 이익을 얻어내려는 회담의 전략, 또는 꼼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번 필리조선소 행사에 미국측이 불참한 것 또한 이러한 압박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이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위해 자본을 투자하기는 하지만 협상의 디테일은 아직 남았고 남은 협상의 우위를 미국이 점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2.'미국 우선주의'의 노골적 표현: 부동산 사업가 출신으로 도박에 가까운 투자를 감행하고 실패 또한 많이 경험했던 트럼프는 국가 운영은 물론 외교 관계마저도 '거래'로 접근하며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이번 불참은 "한국의 투자는 당연하고,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어내야 한다"는 미국측의 인식과 협상 전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동맹국가간의 파트너십이 아닌, 일방적인 압박의 관계다. 결론적으로, 이번 필리조선소 방문 건은 단순한 의전 실수가 아니라, 한미 관계의 주도권과 협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외교적 관례를 무시한 미국측의 '계산된 무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굴욕은 면했다, 앞으로는 어찌할 것인가?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례와 불리함을 감수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그러면서 젤렌스키나 라마포사 대통령처럼 공개적인 모욕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이번 정상회담을 '120% 성과' 라고 포장하고 있다.
정상회담을 되짚어 보자. 40여 분 내내 황당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관세협상과 마스가를 말하고 주한미군 부지를 아예 '미국땅' 으로 달라고 하며 선을 넘었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별다른 응수를 하지 못하고 트럼프의 비위를 맞추는데 전력했다. 트럼프의 리더십, 집무실을 황금으로 꾸민 것을 칭찬하고, 북한에 트럼프타워를 지어달라고 말하며 막대한 대미투자를 추가로 약속했다. 미국 기자들은 한미정상회담과 무관한 미국 국내 문제와 현안(주방위군 주둔, 우크라이나 문제) 을 주로 질문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회자찬을 섞어가며 길게 답변했다. 그 자리가 한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라는 것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대한민국은 내줄 것을 다 내주고도 계속해서 약자의 위치로 스스로를 낮출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이재명 대통령과 현정부 입장에서 생중계로 보여지는 굴욕은 모면했겠지만 앞으로는 어찌할 것인가. 앞으로의 부담은 국민과 기업이 고스란히 짊어지게 됐다.
카타리나타 기자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5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퍼주고 홀대 받는 대텅령은 이재명이 처음이네요. 계속 쭉 걱정할 일만 남았네요, 무능한 놈 하나 때문에.
공감합니다
첨부터 참여한다고 한적 없었을지도요.
이러니저러니 가는데마다 창피합니다.
저만큼 해도 무시.
이재명 때문에 괜히 한화만 무시 당했네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