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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의 달인, 링에서 쓰러지다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5-05-19 11:07:13
  • 수정 2025-08-05 04:28:44

  • 스파링 없는 챔피언의 비극
  • 자동사냥 김문수와 다윗 이준석의 골리앗 사냥

▲< 그래픽 : 박주현 >


사람들은 왜 정치 토론을 보는 걸까. 나는 가끔 그게 마치 야생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마리의 수사자가 영역 다툼을 하는 것을 안전한 거리에서 관찰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첫 번째 TV 토론회는 그런 원시적 긴장감조차 주지 못했다. 오히려 마치 연극 학교 기말 발표회처럼 어색했다. 대본은 있는데 배우들이 자기 역할에 확신이 없는 그런 공연 말이다.


'아름다운 경선'의 역설: 정치적 자폐의 해부


이재명 후보는 링 위에서 허둥거렸다. 그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이 스튜디오 조명 아래 번쩍였다. 아마추어 복싱 대회에 실수로 들어간 평범한 직장인처럼 그는 극단적이라는 단어를 방패 삼아 계속 뒤로 물러났다. "극단적인 표현"이란 말을 열 번쯤 반복할 때, 그의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통제되지 않는 불안이 스며 나오는 순간이었다. 극단적이란 느낌을 가장많이 주는 후보가 극단적이란 말로 뒷걸음치는 아이러니.


민주당의 예의 바른 경선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다. 그들은 후보 토론회에서 서로 차를 마시듯 정중한 대화를 나눴다. 김동연은 연신 미소를 지으며 "좋은 정책입니다"라고 말했고, 김경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보완하면 더 좋아질 것 같습니다"라고 덧붙였었다. 날카로운 검과 방패가 부딪히는 소리 대신 도자기 찻잔이 접시에 얹히는 소리만 들렸던 경선 덕분에 이재명은 승리감에 도취해 자신을 단련시키지 못했다.


민주당의 소위 '아름다운 경선'이라는 것은 사실 정치적 자폐의 다른 이름이었다. 날카로운 비판 속에서 단련되는 대신, 그들은 서로를 포장하며 약점을 감추는데 능숙해졌다. 이는 마치 무균실에서 자란 아이가 갑자기 세균 가득한 운동장에 던져진 것과 같았다. 면역이 생길 틈도 없이 토론장에서 허우적댄 이재명의 모습은 그래서 더 준비가 안된 미숙함만 드러났다.


'거리의 변호사'가 더 어울린다는 느낌을 준 권영국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토론장에서 유일하게 '내란'이라는 단어를 내뱉은 인물이었다. 김문수를 향한 "윤석열의 대리인"이라는 직격탄은 노동운동 현장에서 15년간 구조적 부정의와 싸워온 그의 이력이 고스란히 묻어난 순간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전략이었다. 노동자 해고 사건에서 기업의 법적 책임을 추궁하던 그가, 토론에서는 오히려 경제 주제보다 정치적 정적 공격에 집중하는 모순을 보인 것이다. 그의 30초 결론 발언은 더욱 아이러니컬했다. "개혁신당은 왜 장애인과 싸우나"라는 질문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정작 자신의 정당이 2024년 총선에서 2.14%의 득표율로 참패한 사실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권영국의 진보적 이상주의는 현실 정치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공중부양하는 풍선처럼 보였다. 특히 토론이 끝난 후 김문수후보의 악수를 거절하는 장면은 정치의 본질과 예의를 둘 다 놓쳐버린 눈살이 찌푸려진 순간이였다.


'본전'은 챙긴 김문수


김문수 후보의 전략은 칭찬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실패했다 몰아부치기에도 애매한 지점에 머물렀다. 체스의 '폰'을 앞세워 킹을 공격하는 묘수를 연상시키는, 이재명에게 질문을 던진 뒤 이준석에게 답변을 넘기는 방식은 교묘해 보였으나, 결과적으로 스스로 자신을 보조 플레이어로 전락시켰다. 1980년대 노동운동가 시절의 투쟁적 이미지와는 달리, 그는 토론장에서 핵개발, 원전등의 시대착오적 수사를 반복했다. "젠틀함"이라는 평가 뒤에 가려진 것은 정치적 기민함의 부재였다.


그의 가장 큰 실수는 윤석열 정부 노동부 장관 경력을 이재명보다 이준석에게 먼저 공격당한 점이었다. 권영국의 "내란 옹호자" 발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그가 여전히 20세기식 정치 플레이북에 갇혀 있음을 증명했다. 


이준석이 '다윗'이 된 순간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어제 토론회의 승리자로 뽑는 사람은 이준석이다. 그와 이재명의 대결 구도는 성경 속 다윗과 골리앗을 연상시켰다. 수많은 질문들 속에 이재명의 논란과 사건, 사고들 전부 녹여서 융단 폭격을 이어갔고, 주도권 토론도 가장 영리하게 이끌어갔다. 그의 공격 포인트는 정확했고, 이상하게도 그것은 이재명 개인이 아닌 민주당 전체의 빈약한 공약과 논리를 드러냈다. 마치 한 사람의 옷자락을 당겼는데 옷을 입은 모든 사람이 함께 넘어진 것 같은 광경이었다. 


다만 문제는 '토론'자체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평가와는 별개로 국민의 힘 김문수후보와는 격렬한 토론보단 발을 맞춰 걷는 듯한 인상을 줬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의중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뒤따랐다는 점. 자신을 보수의 대표주자로 여기는 건지, 아니면 후에 김문수후보와의 단일화를 염두에 둔 것인지 말들이 뒤따랐지만 단일화 전망 때문인지 소위말해 이준석 테마주들은 증시개장과 함께 일제히 하락세로 출발했다.


이렇게 대선 토론 1차전이 막을 내렸다. 


누가 토론을 잘했는지 누가 잘못했는지는 사실 주관적인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누구도 토론 실력이 정치인에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건 부정하기 힘들지만, 대중의 마음이란 게 토론에서 잘했다고 꼭 지지하지도, 토론에서 못했다고 꼭 실망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조기대선의 영향으로 이제 두 번밖에 안 남은 토론이 아쉽긴 하지만, 이 번에 부진하다 느낀 후보는 칼을 갈고 나올 것이며, 잘했던 후보는 우위를 유지하려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토론회라는 게 생방송이다 보니 준비한 대로만 흘러가지도 않을 것이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또 누군가 작두를 탄 듯 실력을 뽐낼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즐거운 마음으로 다음 토론을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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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19 23:08:01

    이준석이 새로운 시대의 대통령으로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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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on6er2025-05-19 16:02:17

    그냥 토론 실력만 보자면 놀라웠던 이준석 제외하곤 모두가 사실 노력 부족이었지만 이재명은 준비한 기간이 몇 년인데 매번 저런 모습인 게 국민 우습게 보는 것 같고 참 짜증나요
    어제에서야 저게 말이 되는 소리냐 경제를 모르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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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19 15:02:05

    민주당 경선에서는 토론흉내만낸거군요...지팔지꼰이라더니...ㅋㅋ 김경수,김동현은 자괴감안드나...정치은퇴하고말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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