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어쩌면 마지막이 될 투표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5-05-07 14:25:56
  • 수정 2025-08-05 04:31:13

  • 민주주의의 장례식이 시작되고 있다
  • 법의 지배가 무너지는 나라에서 선거는 의미가 있을까?

▲< 그래픽 : 박주현 >


1215년 영국의 한 들판. 존 왕은 귀족들에게 둘러싸여 떨리는 손으로 양피지에 서명했다. '대헌장(Magna Carta)'이었다. 그 핵심은 단순했다. "왕이라도 법 위에 설 수 없다."


800년이 흐른 2025년 5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법사위 회의실에서는 정반대의 법안이 통과되고 있었다. "대통령이 되면 법 위에 설 수 있다."


투명 망토를 입은 피고인


서울고등법원은 이재명 대선 후보의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6월 18일로 연기했다. 재판정에 서야 할 피고인이 대통령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더 놀라운 일은 그 후 벌어졌다. 국회 법사위에서 '대통령 당선되면 재판 중단' 법안이 통과된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안건 상정에 반발해 표결에 불참하는 동안, 민주당 주도로 법안은 의결됐다.


해리 포터의 투명 망토처럼, 이 법안은 피고인을 법정에서 사라지게 한다. 단, 대통령에 당선되어야 하고, 효력은 5년간만 유지된다. 법무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대통령직이 범죄의 도피처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누군가를 위해 통금 구역에 특별 통행증을 만들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다.


민주주의의 면역 체계가 무너지는 소리


민주주의에서 삼권분립은 단순한 원칙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방지하는 면역 체계다. 면역 체계가 약해지면, 민주주의라는 몸체는 병에 취약해진다.


2023년 9월,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윤석열 정부는 민주정치의 근본인 삼권분립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 비판의 화살이 1년 반 만에 방향을 바꾸어 날아왔다. 민주주의의 원칙은 정권이 바뀐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재판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52%,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45%로 나타났다. 특히 20대와 30대는 압도적으로 재판 계속을 지지했다. '공정'에 목마른 세대의 선택이었다.


오웰의 경고가 현실이 될 때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풍자로 쓰인 이 구절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는 5월 5일 대법원에 이재명 후보의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로 변경해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서울고법은 이에 응했다. 이재명 후보에게는 투표일까지 6차례의 재판이 남아있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그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모든 재판은 임기 종료까지 정지된다.


마지막 대선이 될지도 모를 6월 3일


역사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법치가 무너질 때 민주주의는 그 뒤를 따른다. 민주당의 이번 행보는 단순한 법안 통과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을 향한 위험한 진군이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법도 바꿀 수 있다"는 선례가 만들어지는 순간, 다음은 무엇이 될까? 선거법? 헌법? 임기?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모든 것이 '필요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면, 6월 3일 대선은 대한민국의 마지막 대통령 선거가 될지도 모른다.


현대 민주주의 역사에서 법치를 무너뜨린 국가들의 말로는 하나같이 비참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는 헌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개정한 후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다. 터키의 에르도안은 민주적으로 당선된 후 법과 제도를 하나씩 바꾸며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그들도 처음에는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우리는 어떤 역사를 쓰고 있는가


1776년 미국 독립선언문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선언했다. 2025년 대한민국은 무엇을 선언할 것인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법 앞에 선다. 단, 대통령은 예외"라고?


이번 대선에서 우리가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아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계속해서 민주공화국으로 남을 것인지 선택하고 있다. 6월 3일이 마지막 대선이 될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를 지키는 전환점이 될 것인가?


역사는 항상 특권에 맞서 평등을 외쳤던 이들의 편에 섰다. 800년 전 영국 귀족들이 그랬듯이, 우리도 지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고 있다. 그 페이지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TAG

프로필이미지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에 2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ari4862025-05-12 19:33:18

    이렇게 무서운 걸 우리만 알고 우리만 무서워한다는 게 장말 무서워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8 09:38:00

    무섭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8 08:57:21

    정말 공감가는 칼럼이네요
    먹고 살만하니 이제는 다들 왕되겠다고 독재하려고 이 난리를 치네요
    역사는 승자를 기억하지만
    역사를 이끌어 가는 건 결국 그 시대의 사람들이겠죠
    부지런한 악을 위해 더 부지런히 일해야죠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8 06:20:34

    걱정에ㅜ잠이안오네요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7 19:00:49

    정말 어떻게 그러는지 이젠 정말 국민뿐인 것 같습니다 올바른 투표합시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7 18:23:03

    진짜 무섭다 벌써 법으로 이렇게 장난질치는데 대통령된다면 바로 독재로 법 바꾸겠네 진짜 마지막 투표가 될 수 있겠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바라는것도 독재인가? 본인들도 걱정없이 선거안하고 그냥 계속 해먹으려고???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7 18:12:56

    꼭 투표해야합니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이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플라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7 17:33:14

    오늘은 진심으로 무서워졌습니다.
    행정부에 이어 사법부까지 손에 들고 흔들어버리는 지금이 독재 아닐까요?
    모든 국민이 힘을모아 이재명을 없애야 우리 자식들에게 부끄럽지않은 시대를 물러줄거 같습니다.
    개헌연대가 빨리 완성되야 합니다.
    이낙연총리만이 뒤흔들린 나라를 바로세울겁니다.
    흔들림없이 지지합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7 16:56:19

    요새 걱정돼서 잠을 못이룹니다.  사력을 다해서 막아야 합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7 16:54:49

    너무 무서워요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7 16:54:19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7 16:51:57

    너무 무서워요 ㅠㅠ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7 16:45:46

    그렇게 안되게 꼭 투표합시다 범죄자가 대통령되는게 말이되나요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7 16:07:23

    체념금지! 절대투표!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7 15:48:59

    이게 나라인가요?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됐나요 처참하네요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7 15:27:10

    무서워요. 두려워요. 끔찍해요, 민주주의가 법치주의가 목졸리고 있어요.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7 15:26:43

    제발 투표합시다. 준비된 대통령 이낙연이 있어요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kibbum112025-05-07 15:05:54

    네.. 뛰어 봐야죠!!!!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7 15:04:39

    이나라를 버리지마옵소서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7 14:44:48

    답답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해봐야죠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alsquf242025-05-07 14:44:06

    슬프네요
    어떻게 만들어온 나라인데.
    어제 한총리와 오찬 후 브리핑에서 NY께서 하신
    그 넘이 집권하면 선관위도 장악할지 모르겠다는 말씀이 현실이 될 것 같아요.

    그 전에 전 인민대회에서 수령 뽑는 것으로 국민 참정권을 뺏을 지도 모르겠지만요.
    넘 울고 싶은 날입니다.

  • 프로필이미지
    kibbum112025-05-07 14:40:15

    넘 답답해서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입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7 14:40:03

    너무나도 비참 우울한 하루네요 ㅜㅠ
    진정 대한민국은 망조로 들어선  것인가!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7 14:31:49

    법원은 저럴줄 몰라서 재판 연기해주고 도피처 운운한단 말인가.
    아직도 이재명의 세치 혀에 놀아난단 말인가?

    더보기
    • 삭제
아페리레
웰컴퓨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분석] 론스타 4천억 승소 역겨운 광팔이 민주당... 3년 전에는? 2025년 11월 19일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태도가 13년을 끌어온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승소 국면에서도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다. 3년 전, 법무부가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할 당시 "이길 확률이 전무하다"며 결사반대했던 정치 세력이, 막상 '전부 승소'라는 극적인 결과가 나오자 정.
  2. 썩어가는 것과 익어가는 것의 차이 가을 숲을 걷다 보면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 사이로 오묘한 냄새가 난다. 개중에는 잘 마르고 발효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그윽한 향기가 있는가 하면, 물기를 머금은 채 질척하게 썩어가는 쿰쿰한 악취도 있다. 인간의 나이 듦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 시간이 인간이라는 그릇에 담길 때는 전혀 다른 화학 작용을 일.
  3. 민주당 '유동규 녹취록 속 대통령은 '윤석열'? 백광현 되치기 기자회견 17일 오전 백광현 씨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유동규와 남욱의 녹취록을 추가로 공개했다. 해당 녹취록에는 '이재명' 이름이 언급되어 있어 후폭풍이 예고된다. 이번 기자회견은 지난 12일 진행한 기자회견의 후속편으로,  (2023년 봄 녹음)된 것으로, 대장동 사건을 두고 두 피고인이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담겼다. 이 녹취록에서 ...
  4. 민주당을 향한 외통수 "대장동 환수법" 국가가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의 범죄 수익 환수를 공식적으로 포기한 상황에서 논란의 항소포기를 중심에서 처리한 박철우 검사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했다. 박철우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힌 인사는 이 사태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것은 실패에 대한 문책이 아니라, 성공적인 임무 완수에 대한 포상에 가깝다. 검찰 조직을...
  5. 대통령의 '무지(無知)'가 국가 안보의 최대 위협이다 국가 지도자의 말은 그 자체로 전략이자 메시지다. 적대국과 총구를 맞대고 있는 분단국가의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내뱉는 안보 관련 발언은 천금의 무게를 지녀야 한다. 그러나 지난 24일 해외 기자 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보여준 인식은 가벼움을 넘어 참담한 수준이었다. 그는 50년간 대북 심리전의 핵심이었던 대북 방송을 "바보짓...
  6. 탱크만 없는 계엄령, 그 거대한 수용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교민들에게 "또 계엄하는 거 아닌가 걱정되실 텐데, 그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좌중에서는 웃음이 터졌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이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그 한가한 농담은,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
  7. 이낙연 "대장동 항소 포기는 국가 주도 범죄... 전체주의 망령 어른거려" 이낙연 "대장동 항소 포기는 국가 주도 범죄... 전체주의 망령 어른거려"대장동 항소 포기와 사법 시스템 붕괴 비판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전 국무총리)이 19일 유튜브 채널 '류병수의 강펀치'에 출연해 검찰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항소 포기를 "국가가 나서서 범죄자를 도와준 국가 주도 범죄"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
  8. YTN의 ‘자발적 복종’ 더불어민주당이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중대한 국기문란 행위’라는 좌표를 찍자, YTN은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의 풍자 영상을 다룬 보도를 삭제하고 한 발더 나아가 ‘정치인 SNS 영상 사용 금지’라는 사실상의 백기를 들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그리고 질서 정연하게 일어났다.'국기문란(國基紊亂)'. 유신 시대의 낡은 ...
  9. 프랑켄코리아 (Franken-Korea) 정치라는 무대 위에는 때때로 기이한 혼종(混種)이 등장한다.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아니라, 이미 사라졌다고 믿었던 과거의 망령들을 덕지덕지 기워 붙여 만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같은 것.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정권의 모습이 그러하다. 이들은 놀라울 만큼 창의성 없는 방식으로, 역대 정권들이 저질렀던 최악의 실수와 가장 추악했던 .
  10. 국민연금 손대려는 정권, 그래놓고 청년더러 "속았다" 하는가 아침 출근길 지하철 풍경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가. 붐비는 객차 안,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 화면에 몰입해 고개를 끄덕이는 4050 중년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들의 작은 화면 속에서는 어김없이 '그'가 등장한다. 더부룩한 수염에 특유의 건들거리는 말투, 김어준 씨다.그 화면 속에서 김어준 씨와 패널들은 혀를 차며 말...
후원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