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질통보 받은 울산 HD 김판곤 감독 [연합뉴스 자료사진]
울산 HD 김판곤 감독이 결국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공식전 10경기 연속 무승이라는 성적 부진의 늪에 빠진 팀의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이번 감독 교체 과정에서 드러난 구단의 아마추어적인 행정 처리는 K리그 명문 구단으로서의 품격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김 감독 본인이 언론 보도를 통해 자신의 경질 사실을 먼저 알게 되었다는 점은 축구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김 감독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어제 언론을 통해 나에 대한 경질 관련 기사가 나간 뒤에야 구단으로부터 경질과 관련된 통보를 받았다"며 "예의는 물론이고 행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감독에게 최소한의 예우조차 갖추지 못한 울산 구단의 태도는 많은 축구팬들을 실망시켰다. 감독 경질은 구단에 중대한 결정이다. 그만큼 신중하고 예의를 갖춰 진행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울산은 이 기본적인 절차마저 무시한 채 언론을 통해 먼저 소식을 흘려버렸다. 이는 구단 내부의 소통 부재는 물론, 김 감독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판곤 감독은 지난해 7월 울산의 지휘봉을 잡은 후 팀을 K리그1 3연패로 이끌었다. 당시 울산은 홍명보 감독의 국가대표팀 이탈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정규리그 4위까지 추락하며 위기에 놓여 있었다. 김 감독은 "1분을 배고파하는 선수를 좋아한다"는 말로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며 팀을 재정비했고, 결국 34라운드 조기 우승이라는 기적을 일궈냈다. 불과 1년 만에 '무관'의 위기에서 팀을 구해내고 K리그1 3연패와 통산 5번째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그의 지도력은 울산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2025시즌 들어 울산은 심각한 부진의 늪에 빠졌다. 시즌 초반 3연승으로 순조롭게 출발하는 듯했으나, 이후 연승 사냥에 번번이 실패하며 순위가 하락했다. 설상가상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조별리그 3전 전패, 코리아컵 8강 탈락이라는 뼈아픈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K리그1에서도 6경기 연속 무승(3무 3패)을 기록하며 공식전 10경기 무승(3무 7패)의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했다. 이로 인해 울산은 정규리그 7위로 밀려나 4연패는커녕 '파이널A' 진입마저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울산의 추락이 계속되자 서포터스들은 김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며 응원 보이콧을 선언했다. 지난달 30일 팀 K리그와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쿠팡플레이 시리즈 경기에서는 관중석에서 "김판곤 나가"라는 구호까지 터져 나왔다. 축구계 소식통은 이 구호가 김 감독 경질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이번 사태에서 울산 구단이 보인 일련의 행태는 팬심에 과도하게 흔들렸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팬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중요하지만, 성적 부진의 모든 책임을 감독 한 사람에게만 돌리고 팬심에 휩쓸려 감독을 불명예스럽게 내쫓는 것은 구단의 장기적인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구단은 후임 감독으로 신태용 전 인도네시아 국가대표팀 감독을 염두에 두고 접촉했다는 소식까지 흘러나왔다. 이 모든 과정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김 감독은 구단으로부터 공식적인 통보를 받기도 전에 자신의 경질 소식을 접해야 하는 불쾌한 상황에 놓였다. 결과적으로 울산은 1일 "최근 성적 부진의 책임을 통감하며 구단과 논의 끝에 상호 합의로 계약을 해지했다"라고 발표했지만, 이는 이미 짜여진 수순이었음이 명백하다. 김 감독은 2일 수원FC와의 경기에서 마지막 지휘봉을 잡게 됐다. 서포터스들이 김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치러질 고별전은 어색한 기류 속에 진행될 수밖에 없다. 팬들의 마음을 달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단은 책임 있는 행정 처리를 통해 최소한의 예의와 품격을 지켰어야 했다.
서포터스를 향해 박수를 보내는 울산 HD 선수들 [연합뉴스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