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성남시의원(고병용. 무소속_이 “시의원들에게 매일 일기(활동 보고서)를 쓰게 하는 갑질”을 폭로하며 32년간 몸담았던 정당을 떠났다. 그는 국회의원이 지방의원을 “수평적 동료가 아닌 종을 다루듯 한다”고 비판했다. 이 사건은 강선우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보좌진 갑질 논란으로 드러난 정치권의 권위주의적 문화가 비단 보좌진에게만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더 깊고 구조적인 문제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인 지방의회를 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
고병용 의원의 이수진 의원 갑질 고발 및 민주당 탈당 기자회견 (사진-고병용의원 페이스북)
공천권이라는 ‘목줄’, 지방정치 사유화의 구조
국회의원이 지방의원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배경에는 ‘공천권’이 있다. 특정 정당의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서는 정당 공천이 곧 당선으로 직결되기에, 정치 신인에게 공천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현행 제도하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은 당연직처럼 맡는 당원협의회 위원장 자리를 통해 사실상 지방선거 후보자를 결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이 때문에 공천 과정은 지역 일꾼을 뽑는 민주적 절차가 아니라, 국회의원 개인에 대한 충성심을 평가하는 과정으로 변질되기 쉽다. 정치권은 공천이 기준 없이 지역구 국회의원의 ‘자의적 타천’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결국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지망생은 동료가 아닌 후견인과 피후견인의 관계로 전락하고, 지방의회는 국회의원의 ‘사병’으로 채워지는 구조가 고착된다.
국회의원의 입김으로 당선된 지방의원들은 주민의 대표라는 본연의 임무보다 국회의원의 정치 활동 보좌에 치중하게 된다. 지역 현안을 논의해야 할 시간에 국회의원 선거운동에 동원되고, 지방의회는 중앙정치의 대리전 장으로 전락한다. 유권자들은 후보의 자질과 정책 대신 정당만 보고 투표하는 ‘묻지마 투표’에 내몰리며, 이는 지역주의를 더욱 공고히 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결과적으로 지방의회는 집행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기능을 상실한다. 특정 국회의원의 충성파로 채워진 의회는 거수기로 전락해 ‘일당독재’ 체제를 형성하고, 권력 분립의 원리는 무너진다. 울산시의회 원구성 파행 사태에서 한 시의원이 “국회의원이 지위를 이용해 개입하는 구태”라고 공개 비판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정 기능이 마비된 의회에서는 음주운전, 폭행, 뇌물수수 등 지방의원의 비위가 발생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일이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