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진영에 잠입해 교란 작전을 펼치는 스파이를 우리는 ‘엑스맨(X-man)’이라 부른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이재명과 민주당에게 이보다 더 헌신적인 엑스맨은 없어 보인다. 바로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다. 그들은 야당의 탈을 썼을 뿐, 그 행적은 사실상 이재명 정권의 가장 유능한 조력자에 가깝다. '자책골'이라는 표현은 너무 온정적이다.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명백한 이적행위다.
당대표 토론을 보고있자니, 희망따윈 집어 던지는 게 나을 지경이다. 백 번 양보해서, 계엄을 옹호하고 ‘윤어게인’까지 외치는 그들의 논리가 처절한 신념의 발로라고 치자. 그렇다면 당신들이 해야할 일은 당대표 선출이 아니다.
그래픽 : 박주현 강한 적보다 무서운 건 멍청한 아군이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동의하지 않는 그 논리로 세상을 설득하려면, 최소한의 진정성은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정녕 그것이 자신들의 명운을 건 신념이라면, 당장 국회의원직이라도 전부 내던지고 국회를 해산시킨 뒤에라도 처절하게 그 이유를 설명하는 기개라도 보여야 설득의 실마리가 생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그런 결기는커녕, 원내대표란 인물은 광복절 특사를 앞두고 ‘우리 편 몇 명 포함해달라’는 구차한 문자나 보내는 게 고작이다. 심지어 집권당 대표는 정당 해산까지 운운하며 칼을 빼 드는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다. 자신들의 철밥통과 특혜는 털끝 하나 양보하지 못하면서, 대체 누구를 설득하고 무엇을 지키겠다는 말인가. 이는 무능을 넘어선,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정치적 배임' 행위다. 위기에 빠진 상대에게 구명조끼를 던져주는 것도 모자라, 자기 배에 구멍을 뚫어 함께 침몰하기를 자처하는 꼴이다.
결국은 그저 편하게 당대표를 차지하기 위해 자기 편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행태로는 희망이 생길리 없다.
이런 병리적 현상은 결코 우연이나 일회성이 아니다. 이회창 시대 이후, '강경함'이 '선명함'으로 오인되고, 논리 대신 목소리 큰 자가 주류가 되는 풍토가 당을 지배해왔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이재명 정부가 경제, 외교, 안보 모든 전선에서 연일 헛발질을 하며 스스로 무너지는 어찌보면 반전을 꿈꿀 절호의 기회에, 국민의힘은 언제나 그랬듯 최악의 카드를 꺼내 들어 판을 뒤엎어 버린다. 이는 무능을 넘어선,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정치적 마조히즘'에 가깝다. 위기에 빠진 상대에게 구명조끼를 던져주는 것도 모자라, 자기 배에 구멍을 뚫어 함께 침몰하기를 자처하는 꼴이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이재명 정권을 심판할 것인가?"가 아니다. "과연 국민의힘에게 정권을 심판할 자격과 능력이 있는가?"이다. 이재명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그의 정책이나 비전이 아니다. 바로 국민의힘의 어리석음과, 그보다 더 혐오스러운 위선이다. 지금의 행태를 반복한다면, 국민의힘은 보수의 재건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보수의 완전한 소멸을 앞당기는 장의사(葬儀師)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제 선택지는 둘 뿐이다. 뼈를 깎는 것을 넘어, 존재의 이유부터 다시 증명해 보일 완전한 해체적 재창당을 하거나. 아니면 이재명 정권의 영구집권을 돕는 ‘공인 조력자’로 역사에 박제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