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단순한 무역 장벽을 넘어선 '글로벌 수금 활동'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막강한 경제력을 지렛대로 삼아 다른 나라들에 막대한 대미 투자를 강요하고 있으며, 이를 거부할 경우 천문학적인 관세 폭탄을 맞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NYT는 트럼프의 이러한 행태를 두고 "글로벌 강탈(shakedown)"이라고 꼬집으며, 협상 파트너가 아닌 "교역 인질"을 다루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특히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 교역국들과의 협상 사례는 이러한 비판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월 말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한국과의 면담을 예고하며 "한국은 지금 당장 관세가 25%이지만 관세를 돈 주고 낮추겠다는 제안을 가지고 있다. 난 그 제안이 무엇인지 듣는 데 관심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후 한국 정부는 대미 투자 3,500억 달러와 1,000억 달러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구매를 약속했고, 트럼프는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15%로 낮췄다.
한국 협상단과 무역합의 후 '엄지 척' 사진 찍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백악관 엑스 계정]일본과 EU 역시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일본은 5,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 조성을 약속했고, EU 또한 최소 6,000억 달러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익 성향 카토연구소의 스콧 린시컴 부소장은 이 상황에 대해 "이건 의심할 여지 없이 일종의 글로벌 강탈(shakedown)"이라며 "트럼프가 그럴 의향이 없는 국가들에 이런 조건을 사실상 강제하기 위해 관세 정책을 활용한다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사업가 시절 '허영심' 공략 전략, 무역 협상에도 투영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방식은 그의 과거 부동산 사업가 시절 전략과 매우 유사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대니얼 에임스는 트럼프가 부동산 개발업자 시절부터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들어 협상 상대를 흔드는 데 능했다고 평가했다. 낮은 가격으로 입찰하고, 매혹적인 제안으로 상대를 현혹시키는 것이 그의 주된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임스 교수는 트럼프의 허영심을 역이용하는 국가들의 '맞불 전략'에도 주목했다. 그는 "나르시시스트와 협상할 때는 그들이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하게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며, 한국, 일본, EU 등이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대규모 투자 약속을 내세워 트럼프의 자존심을 만족시키려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실제로 이들 국가가 내세운 투자 약속의 상당수는 이행 여부를 감시하기 어려운 모호한 형태다. EU는 기업들의 투자를 강제할 권한이 없으며, 일본의 약속은 대부분 대출 형태다. 한국 정부 역시 대미 투자 3,500억 달러가 대출과 대출 보증의 형태라고 설명했지만, 미국 정부는 이 투자의 수익 90%가 미국인에게 돌아간다고 밝히는 등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NYT는 이처럼 모호한 '창의적 방식'으로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피하려는 시도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한, 각국이 약속한 대미 투자 규모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 상무부 경제분석국(BEA)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외국의 대미 투자 총액은 1,510억 달러에 불과했는데, 이번 협상에서 발표된 수치는 이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관세 쇼핑몰'이 과연 그가 주장하는 성과를 낼 수 있을지, 혹은 각국이 그의 허영심을 이용해 관세 폭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전락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