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박주현결국 이재명 정권의 ‘유능함’이라는 신화는, 트럼프의 최후통첩 한 장 앞에서 산산조각 났다. 워싱턴으로 향한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한때 그와 그의 지지자들이 ‘적폐’라 손가락질하며 해체를 부르짖던 기업인들, 이재용, 정의선, 김동관이다. 그들은 지금 ‘구국의 경제사절단’이라는 낯부끄러운 이름표가 꽤나 어울린다.
4000억 달러. 이 천문학적인 숫자는 ‘구국의 결단’ 따위로 포장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무능한 정권이 초래한 외교 참사의 대가를 국민과 기업에 떠넘기는 ‘책임 전가’의 명세서일 뿐이다.
그 4000억 달러짜리 명세서의 속을 한 번 들여다보자. 국내 대기업의 목을 비틀어 짜낸 신규 투자 1000억 달러, 이미 약속된 현대차·한화솔루션 등의 기존 투자 233억 달러마저 제 것인 양 생색내는 뻔뻔함, 정책금융이라는 이름으로 결국 기업의 등에 꽂힐 또 다른 빚까지. 정작 정부가 내놓은 것이라곤 고작 ‘디지털 시장 개방’이라는, 보이지도 않는 떡고물 하나뿐이다. 이것은 분담이 아니라, 조공을 강요하는 일방적인 ‘강탈’이다.
이 희극이 더 참담한 것은, 기업들이 워싱턴에서 관세문제로 전전긍긍하는 이 순간에도, 민주당은 이미 ‘노란봉투법’과 ‘법인세 인상’이라는 칼을 갈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손으로는 등을 두드려 사지로 내몰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등 뒤에 꽂을 비수를 준비하는 격이다. 이것은 배신조차 아니다. 애초에 동지였던 적이 없었음을 증명하는, 계획된 기만이다.
물론 “참호 속에는 무신론자가 없다.” 포탄이 빗발치는 절체절명의 순간, 생존의 공포 앞에서 이념과 철학은 한낱 사치품으로 전락한다는, 전쟁터의 오래된 격언이다. 평온한 시절, 얼마든지 신의 부재를 논하며 지성의 우월을 과시할 수 있다. ‘반기업’이라는 신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트럼프가 쏘아 올린 ‘관세 폭탄’이라는 포탄 몇 발에, 대한민국이라는 참호는 속수무책으로 흔들렸다. ‘죽창가’의 시대가 가고 ‘청구서’의 시대가 오자, 대통령은 황급히 새로운 신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신은, 자신이 그토록 저주하고 파괴하려 했던 바로 그 ‘재벌’이다. ‘기업, 공직자 과잉수사 자제하라’는 정성호 법무장관의 메시지는, 참호 속 무신론자가 뒤늦게 읊조리는 처절한 기도문과 다름없다.
이것은 변절이 아니라, 신념 따위는 애초에 없었음을 고백하는 자기 파산 선언이다. 대통령은 이제 와서 자신들의 무능을 가려줄 ‘인간 방패’이자 트럼프의 분노를 잠재울 ‘제물’로, 어제의 적을 제단에 바치고 있다. 이 추악한 촌극 앞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당신들이 말하던 ‘공정’이고 ‘정의’인가.
왜 당신들의 그 같잖은 친중국행보 이른 바"셰셰"정신과 반미행적의 책임을 기업이 져야 하는가?
결국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이 투자 보따리는 미래를 위한 씨앗이 아니라, 과거의 죄를 덮기 위한 관 속에 못질하는 소리다. 대통령은 더 이상 기업인의 등 뒤에 숨어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본인이 초래한 위기라면, 본인이 직접 워싱턴으로 가 담판을 짓는 것이 국가 지도자의 최소한의 책무다. 그럴 배짱도, 능력도 없다면 스스로 ‘무능한 진보’였음을 인정하고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는 것이 옳다. 참호 속에 숨어서 기업을 총알받이로 내세우는 것은 지도자가 아니라, 겁쟁이일 뿐이다.
이 기사에 9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남의 고혈 위에 기생하는 꿘충들
완전 공감합니다
박주현님 기사 매번 잘 읽고 있습니다. 덕분에 새로운 인사이트도 생기고 위로도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나마 박주현 님 칼럼 읽으며 답답한 마음을 달랩니가. 감사합니다.
기사 좋아요~
기업들 참 힘들겠습니다. 나라 경제 발목 잡는 정치를 언제까지 참고 봐야 하는지 한숨만 나오네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해체하는 대신 국외로 쫓아내려는 모양입니다. 일자리 감소, 기술 유출 리스크 등, 우리 경제 정말 큰일입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