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이재명은 국민 임명식이라는 형태로 대통령 취임식을 재차 행할 모양이다.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는 기괴한 퍼포먼스다.
먼저, 날짜가 문제다. 8월 15일은 광복절이자, 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이다.
이 날 우리가 기념해야 할 것은 이 두 가지다.
대통령은 두 의미를 기리며 국민의 뜻을 통합할 사람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끼어들어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결혼식 주례가 이러는 거다.
"신랑신부는 검은 머리 파뿌리될 때까지 잘 사시고,
이 참에 저도 결혼을 하겠습니다. 신부 나와주세요."
주례가 자신의 의무를 망각한 거 아닌가.
한 부부의 출발을 축복해주러 온 자리에서 자기 광을 파는 거다.
신부 친구가 축가를 부르러 나왔는데, 주례가 끝까지 안 나가고 자기 신부 끌어안고 무대 위에서 버틴다.
결혼을 하려거든 따로 식장을 잡고, 자기 하객을 초대해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남의 결혼식을 망치려드나.
8월 15일의 주인공은 대통령이 아니다.
광복이 되기까지 투쟁하고 희생되었던 수많은 독립지사들과 고난을 겪었던 우리 국민이 주인공이다.
그 희생을 기리고, 다시는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각오를 다져야 한다.
8월 15일 대통령 취임 행사를 치르는 건 광복절의 취지를 더럽히는 것이다.
취임식의 내용을 바꾸는 건 오만이다.
대통령 취임식은 초대 때부터 이미 형식이 정해져 있었다.
대통령제라는 것이 미국의 선례를 따른 것인 만큼, 대통령 선서도 유사하다.
선서할 내용도 헌법에서 정해놓았다.
조금씩 수정은 되었어도 그 취지는 마찬가지다.
"나는 미합중국 대통령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며 나의 능력이 허용하는 한 최선을 다하여 미합중국 헌법을 보존, 보호, 수호할 것을 엄숙히 선서한다." (미 헌법 제2조 1항)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69조)
취임식의 본질이 이것이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겠노라' 국민 앞에서 약속하는 것이다.
평화통일, 민족문화 창달에 관한 내용이 더해졌을 뿐 이승만, 박정희의 선서내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재명은 여기에 국민에게서 임명을 받는다는 새로운 형식을 추가한다.
히틀러도 그랬다
히틀러는 정권을 잡은 후 전당대회의 형식을 바꾸었다.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가 전당대회장을 설계했다.
거대한 광장에 수십만 명이 정렬되었고, 밤에는 수백 개의 탐조등이 하늘을 향해 빛을 쏘았다.
빛기둥 중앙에서 연설하는 히틀러의 모습은 선출된 권력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예언자처럼 연출되었다.
뉘른베르크는 신성 로마 제국 시기 선제후들의 모임, 제국 의회가 열리던 개최지였기에 신성 로마 제국을 계승한 '제 3제국'을 자처하던 나치 독일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역사적 정통성을 강조하는 효과를 누릴 수가 있었다.
예언자처럼 연출하기 위해 로우앵글과 빛을 극적으로 활용한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나폴레옹도 그랬다
130년 전 나폴레옹도 대관식의 형식을 바꾸었다.
프랑스 왕의 대관식이 아니라 로마 황제의 대관식을 재구성했다.
이를 위해 교황이 파리에 불려왔다.
그러나 교황이 황금 월계관을 씌워주진 않았다.
권력은 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프랑스 국민의 뜻에서 나왔다.
나폴레옹은 월계관을 자기 손으로 직접 썼다.
이재명도 그러네
이재명은 초대 때부터 이어져온 전통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형식의 취임식을 만드려한다.
국민 앞에서 헌법을 따를 것을 엄숙히 약속하는 취임식이 아니라, 국민이 자신에게 권력을 주었다는 국민 임명식을 하려고 한다.
민주국가의 대통령 취임식이 아니라 나폴레옹의 황제 대관식을 하고 싶은 것일까.
그런 사람이 이재명만은 아니다.
보카사도 그랬는데
1976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보카사 대통령은 공화국을 제국으로 바꾸고 황제로 즉위했다.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레퍼런스로 해서 국가 예산의 3분의 1을 때려넣었다.
나폴레옹 대관식을 똑같이 따라해도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될 수 밖에 없다.
형식은 아무 의미도 없다. 보카사는 3년도 채우지 못하고 쫓겨났다.
이재명은 광복절의 의미도, 대통령 취임식의 의미도 망각한 채 새로운 형식의 취임식을 꾸미고 있다. 국민 임명식을 한다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이 더위에 무슨 짓인가 어리둥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