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이재명이 버린 '분노'를 주워든 정청래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5-07-29 20:45:51
  • 수정 2025-08-05 04:02:36

기사수정
  • 당대표 선거는 어쩌면 개딸 대이동의 전조.

     ▲ 그래픽 : 박주현


정치판에도 ‘덕질’의 법칙은 존재한다. 앨범을 수백 장씩 사주던 아이돌 팬덤이 어느 날 탈덕을 선언하고 옆 그룹으로 갈아타는 것처럼, 정치 팬덤 역시 ‘최애’를 향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더 짜릿하고, 더 화끈하며, 더 ‘날 것’의 매력을 가진 새로운 스타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와 같다. 이 간단한 시장 원리를 민주당의 '아티스트' 이재명 대통령과 그의 기획사 성남라인은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애초에 ‘개딸’이라는 팬덤의 탄생은, 하나의 거대한 광신도 서사였다. 숱한 고난과 역경, 사법 리스크라는 의혹만이 무성한 신화를 등에 업고, 온갖 안티들의 공격 속에서도 우리 오빠를 지켜내겠다는 순정. 그들은 ‘이재명’이라는 아이돌을 대통령이라는 ‘빌보드 1위’ 무대에 세우기 위해 문자 폭탄으로 음반 판매량을 조작하고, 좌표 찍기로 스트리밍 순위를 올리는 헌신을 마다하지 않았다. 성공 가도를 달리던 이재명은 팬들의 열렬한 사랑에 취해 잠시 잊었을 것이다. 팬덤은 사랑만 먹고사는 순수한 존재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콘셉트’를 끊임없이 공급받아야만 유지되는 까다로운 고객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데뷔 초, 이재명의 콘셉트는 확실했다. 기득권이라는 거대한 적과 맞서 싸우는 ‘반항아 아이돌’이었다. 욕설과 막말은 그의 거친 매력을 더했고, 많은 의혹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며 무시했고, 그 언제 구멍이 뚫릴지 모르는 살얼음판 같던 아슬아슬한 법정 다툼은 팬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했다. 그런데 빌보드 1위, 즉 대통령이 된 순간 그는 돌변했다. 우리가 열광한 건 무대를 찢어놓는 록스타였는데, 갑자기 고뇌에 찬 발라드 가수가 되어 '통합'과 '협치'라는 생전 안 부르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팬들은 당황했다. 우리가 좋아한 건 헤비메탈 밴드의 보컬이었는데, 웬 프랭크 시나트라가 무대에 서 있나.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그의 탓도 아니다. 지존의 위치에서 언제까지 과거의 망령들과 쌈박질만 할 수도 없는 거 아닌가? 


바로 그때, '개딸' 팬덤의 텅 빈 마음에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바로 '정청래'라는 언더그라운드 래퍼다. 그는 이재명이 버린 '반항아' 콘셉트를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팬들과 시장이 원하면 기꺼이 더 강한 비트와 더 자극적인 라임을 뱉을 준비가 되어있는 인물. 모두가 '이제 그만'을 외칠 때 혼자 ‘한 번 더’를 외치며 무대에 뛰어드는 그의 모습에, '개딸' 팬덤은 새로운 최애의 탄생을 예감했다. 강선우 장관 후보자 사태는 사실상 팬클럽 이전 기념 ‘입덕 조공’ 행사나 다름없었다. 박찬대라는 ‘공식 팬클럽 회장’이 눈치 없이 소속사 방침을 읊어댈 때, 정청래는 “우리 언니는 우리가 지킨다!”며 팬들의 마음을 대신 외쳐주지 않았던가.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다. 팬덤은 열광했고, 그의 앨범 판매량은 수직 상승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제 단순한 딜레마를 넘어,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처지가 되었다. 권력이라는 안락한 침대에서 뒤척일 때마다, 자신이 직접 빚어낸 피조물, ‘개딸’이라는 괴물이 어둠 속에서 다가와 서늘하게 묻는 것이다. "절 왜 만드셨나요? 우리의 양식이 분노와 혐오인 것을 뻔히 알면서, 어째서 당신 혼자 고고한 성인의 가면을 쓰려 하십니까?"


그 괴물은 더 이상 낡은 실험실의 어둠에 머무르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은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더 맛있는 먹이 -더 짜릿한 증오- 를 주는 새로운 주인에게로 기꺼이 충성을 갈아타려는 순간일지 모른다. K-정치판의 흔한 아이러니라기엔 너무 음산한 호러다. 평범한 팬들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버림받은 괴물은 반드시 창조주를 파멸시키러 돌아온다. 실험실의 비극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원고료 납부하기
관련기사
TAG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이 기사에 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01 12:24:19

    공감!

  • 프로필이미지
    honeycat2025-07-30 09:23:08

    캬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7-30 07:48:49

    무지성 아이돌 사냥꾼들은 참 속도 편하네요  나라야 망하던 말던 내 알바임? 정신으로
      날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7-29 21:01:08

    공감합니다

아페리레
웰컴퓨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협상 하루도 안돼 알려진 30분의 치욕 치욕의 청구서가 도착하고 하루가 지났다. 이제 양국 언론을 통해 그 ‘협상’의 후일담이 흘러나오고 있다. 가장 압축적인 묘사는 “펜도 필요 없었던 30분”이라는 트럼프의 만족감 섞인 회고일 것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경제 주권 일부가 대서양 너머로 이전되었다. 시장의 평가는 즉각적이었고, 계산은 정확했...
  2. 버닝썬 비서관이 괜찮다면 페미니즘도 말하지 마라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한 용산 대통령실 비서관 중에 과거 버닝썬 사건의 성범죄 가해자를 변호했던 변호사 출신 인물이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그것도 공직자의 규율과 기강을 바로잡고 비리를 감찰하는 ‘공직기강비서관’이라는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2018년에 드러난 ‘버닝썬 게이트’는 우리 사회의 여성...
  3. [사설]어떤 간신이 광복절에 취임식을 '또'하라고 속삭였을까? '국민임명식' 이름 한번 기가 막히게 지었다. 이미 취임 선서를 하고 업무를 시작한 대통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두 달 만에 또 취임식을 한단다. 그것도 나라를 되찾은 광복절에, 광화문 광장에서, 1만 명을 모아놓고 말이다. 대통령실은 "국민이 대통령을 '나의 대통령으로 임명한다'고 선언하는 자리"라고 포장한다.하지만 이 .
  4. 이재명에 환호했던 어떤 변호사의 일기 : 이재명에게 실망이다. 보도블록시장 시절 보도블록 한 장까지도 챙긴다던 그 호기로운 이미지는 허상이었나? 아니면 고작 보도블록이나 챙기는 정도의 그릇이었나?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이라 자화자찬 했던 일은 갑자기 자기 밑에 직원이 자기 몰래 추진한거란다. 보도블록 챙기느라 바빴나? 도지사가 되어서도 자기가 손수 자리까지 만들어 ‘통일’부...
  5. 전병헌, 관세협상 두고 “자화자찬 아닌 자해, 조공 외교의 자화상” 이재명 정부가 최근 한·미 관세협상을 두고 “역대급 성과”라며 자화자찬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전병헌 새미래민주당 대표가 “오히려 자해에 가까운 셀프 풍자”라고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과연 이재명 정부”라는 여권 내 찬양성 멘트를 거론하며, “이 정부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내는 한마디”라...
  6. 이재명 측근 김진욱, 국제마피아파와 연루 의혹 속 총리실 임명 철회 이재명 정부 '보은 인사' 논란 가속... 김진욱 임명 철회에 '버닝썬 변호사' 임명까지 겹쳐이재명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진욱 씨가 국무총리실 정무협력비서관으로 임명된다 7일 국무총리실은 밝혔었다. 정무협력비서관은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고위공무원 ‘나’급(2급) 직위다. '일신상의 이유'로 하루 만에 자진 철..
  7. 김건희특검의 ‘윤석열 속옷 브리핑’ 유감 두 번째 수감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은 특검 수사와 내란 재판에 비협조로 일관하고 있다. 결국 김건희특검이 어제 오전 서울구치소를 찾아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강제구인을 시도했으나 윤 전 대통령의 불응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특검은 기자들 앞에서 윤 전 대통령이 "속옷 바람으로 누워 있었다"는 내용의 브리핑..
  8. 유능하다는 망상, 4천억 달러가 증명하는 친중의 대가 때로는 숫자가 가장 정직한 폭로다. 변명도, 수사도, 감성도 거세된 채, 냉혹한 진실의 뼈대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앞에 던져진 숫자들을 보라.일본의 경제규모는 대략 우리의 2.15 배다. 그들이 5,500억 달러를 낸 것을 우리 체급에 맞춰 단순 환산하면 약 2,000억에서 2500억 달러면 충분할 것이다. 유럽연합 30개국이 그나마 자신들...
  9. 이재명 '광복절 야간 임명식'에 전병헌, '대관식 하냐' 직격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8월 15일 광복절 저녁, '대통령 국민 임명식'을 열겠다고 밝히면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이미 두 달 전 국회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상황에서, 전례 없는 야간 행사를 강행하는 배경을 두고 야권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총공세를 폈다.새미래민주당 전병헌 대표는 ...
  10. [속보] 관세 25%→15%. 미국제품 무관세. 美농산물 트럭 완전개방 한국이 미국에 3천500억달러를 투자하는 등의 조건으로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했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미국이 한국과 무역 합의를 체결하기로 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2주 내로 .
후원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