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 브리핑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속보로 대통령실이 느닷없이 '직권남용 수사 신중론'을 꺼내 들었다. 대체 무슨 생각일까? 잠시후 대통령실 브리핑을 듣자니 문득 범죄 영화의 단골 대사가 떠올랐다. '비밀을 숨기려면 상대방을 공범을 만들라.'.
공직사회 활성화를 위한다는 그럴싸한 명분 뒤에는 대체 뭐가 숨어 있을까. 비서실장은 정권이 바뀌면 늘 전 정부 정책에 대한 과도한 감사가 이뤄지고, 그 때문에 공직사회가 경직되는 악순환을 끊겠다고 했다. 듣기에는 그럴듯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권력의 자기 보존 본능이 공직사회 전반으로 확장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취임 2달도 안 된 대통령이 "전 정부 정책 감사 자제"를 외치는 모습은, 영락없이 미래에 닥쳐올 퇴임 후 자신에게 향하는 모든 칼날을 무디게 하려는 강력한 '자기 보호 본능'으로 보인다. 과하게 표현하자면 마치 오답을 마음껏 쓰려고 마음먹고 시험장에 들어가는 수험생 같다. 아니 그냥 시험자체를 피하려 답안지를 찢어버리려는 듯한 안간힘이 읽힌다. 줄곧 그를 따라다니는 의혹의 꼬리표가 이제는 '수사 신중론'이라는 번지르르한 비단옷을 걸치고 나타났다. 그 옷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건 그냥 공직자들에게 너희도 직권남용과 감사를 피하게 해줄테니 나를 위한 특별한 규칙도 받아들이라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검찰 수사를 향해 "정치 탄압"이니 "조작 수사"니 하며 핏대를 세우던 게 누구던가. 자신에게 겨눠진 칼날을 피하려 이젠 법의 날카로운 칼끝마저 무디게 하려는 시도가 너무나 명백하다. "직권남용죄가 남용되지 않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말을 뒤집어 보면, "나에게는 직권남용의 잣대를 들이대지 마라"는 노골적인 외침이다. '내로남불'이라는 단어조차 이젠 시시해질 지경이지만, 법의 경계선마저 제 입맛대로 옮기겠다는 속셈이 훤히 보인다.
대통령실은 '적극 행정 활성화'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런데 정말 공직사회를 얼어붙게 만드는 게 과도한 감사 때문일까? 아니면 '윗선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전전긍긍하는 두려움 때문일까? 그리고 그 '윗선'의 꼭대기에 누가 앉아 있는지는 국민 모두가 안다. 이건 마치 '내가 왕이 될 상인가'를 외치던 드라마 속 인물처럼, 법 위에 군림하려는 오만으로밖에 안 읽힌다.
공직사회 개편 5대 과제 중 민원·재난·군 현장 처우 개선이나 밤샘 당직제 개편, 일하는 공무원 포상 확대 같은 건 분명 박수 쳐줄 만한 변화다. 하지만 그 모든 좋은 취지가 '과도한 감사 차단'과 '직권남용 수사 신중론'이라는 두 가지 불순한 의도 앞에서 빛을 잃는다면, 이거 비단 나만 삐딱하게 보는 걸까?
보통 정상적인 정부는 국정 동력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집권 초에는 투명하고 과하다 싶을 만큼의 청렴을 요구하는 게 상식인데 어떻게 된 게 이 정부는 시작 두 달 만에 감사 차단과 직권남용 수사를 거의 무력화하겠다는 의지, 결국 감사도 안 받고 직권남용의 경계를 넘나들며 마음대로 국정운영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건가?
이재명 대통령은 입만 열면 '공정'과 '상식'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공정은 '내 편에게만 공정한 공정'이고, 그가 말하는 상식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상식'으로 보인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과연 권력자의 잣대로 재단된 '공정'이 보편적 가치로 통용될 수 있을까?
이번 발표는 자신의 의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이다. 공직사회의 숭고한 생산성마저도 권력의 방패가 되어버린 이 현실은 지독한 농담처럼 느껴진다. 공직사회의 독립성마저 권력의 방패막이로 전락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방탄'의 그림자가 이제 대통령실을 넘어 공직사회,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를 뒤덮으려 하는가.
그 흔한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라는 입에 발린 레토릭이 아닌 '나를 위해'라는 지난 대선 슬로건이 허튼소리가 아니었다는 깨달음이 솟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