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무안공항 참사, 둔덕은 어디가고 조종사 과실이라니
2025년 7월 1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179명의 희생자를 낸 제주항공 2216편 참사의 원인에 대한 국가의 첫 공식 답변이 나올 예정이었던 기자회견장은 유가족들의 울분과 항의로 가득 찼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이하 항철위)의 잠정 조사 결과 발표는 "조종사 과실로 몰아가는 일방적 통보"라는 유족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끝내 무산되었다. 이 파행은 단순한 감정적 반발이 아니다. 이는 국가의 사고조사 시스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과, 진실을 향한 처절한 질문의 시작이다.
제주항공 사고 여객기 엔진 (사진=연합뉴스)
의혹의 조사, 서둘러진 결론인가?
항철위가 내놓은 잠정 결론의 핵심은 '조종사 과실'이다. 양쪽 엔진이 모두 조류 충돌로 손상된 상황에서, 조종사가 더 심각하게 손상된 우측 엔진이 아닌, 상대적으로 손상이 덜했던 좌측 엔진을 실수로 정지시켰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항공기의 주 전원과 유압 계통이 상실되어 랜딩기어가 작동하지 않았으며, 엔진 자체의 기계적 결함은 없었다고 항철위는 설명했다.
그러나 이 결론은 즉각 유가족과 조종사 사회의 거대한 저항에 직면했다.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K)는 성명을 통해 "책임을 조종사에게 전가하려는 시도"이자 "악의적인 프레임 씌우기"라고 규정했다. 이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항철위의 조사가 참사의 가장 결정적인 질문에 대해 침묵하기 때문이다. 바로 179명의 목숨을 직접 앗아간 '콘크리트 로컬라이저 둔덕'의 존재다.
항철위는 활주로 이탈 이전의 사건, 즉 '조종사의 엔진 차단 실수'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참사의 치명적 결과를 초래한 핵심 요인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이는 사고의 시작점(조종사 과실 주장)을 부각시켜, 국가가 승인하고 관리하는 공항 시설의 치명적인 결함이라는 살상점(둔덕 충돌)에 대한 논의를 원천 차단하려는 의도로 비친다. 만약 사고의 원인이 둔덕이라면 한국공항공사와 규제 당국인 국토교통부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항철위의 이러한 조사 방향은 어쩌면 예견된 결과일지 모른다. 대한민국의 항공사고 조사 시스템은 그 구조 자체에 근본적인 모순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조사 대상이 조사자를 통제하는 모순
항철위는 법적으로 독립적인 조사를 수행해야 할 대상인 국토교통부 산하에 소속된 기관이다. 위원장은 전직 국토부 고위 관료이며, 상임위원은 현직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이 맡고 있다. 이는 사실상 국토부 관료들이 자신들의 전·현직 동료와 자신들이 만들고 집행한 정책 및 시설을 스스로 조사하는 '셀프 조사'의 형태다. 예산과 인사에 대한 통제권이 국토부 장관에게 귀속되어 있어 실질적인 독립성은 법적 허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독립성을 강조하는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
이러한 한국의 시스템은 세계적인 표준으로 인정받는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모델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NTSB는 조사의 주 대상이 되는 교통부(DOT)나 연방항공청(FAA)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독립적인 연방 기관이다.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의 인준을 거쳐 임명되는 초당파적 위원회로 구성되며, 의회로부터 직접 예산을 배정받아 재정적 독립성까지 확보한다. NTSB의 핵심은 '투명성'이다. 방대한 양의 사실 정보를 대중에게 공개하고 공청회를 통해 신뢰를 쌓는다. 반면 항철위는 규정과 조사 공정성을 이유로 핵심 증거인 블랙박스 데이터(CVR/FDR) 공개조차 거부하고 있다.
특징 | 대한민국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ARAIB) |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 (NTSB) |
조직적 지위 | 조사 대상인 국토교통부(MOLIT)의 산하 기관 | 교통부(DOT)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독립 연방 기관 |
지도부 임명 | 위원장은 전직 국토부 관료, 주요 위원은 현직 국토부 관료 |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이 인준하는 초당파적 5인 위원회 |
예산 권한 | 국토교통부에 예산이 종속됨 | 의회로부터 직접 독립 예산을 배정받음 |
투명성 | 핵심 증거(CVR/FDR 전문) 비공개 원칙 | 방대한 사실 정보 자료집(Public Docket) 공개, 공개 회의 |
결국 항철위의 '조종사 과실' 잠정 결론은, 조직 구조상 예측 가능하고 제도적으로 가장 편리한 결론이다. 이 결론은 치명적인 로컬라이저 둔덕 문제에 대한 국토부의 책임을 면제하고, 알려진 위험을 방치한 시스템의 실패로부터 대중의 시선을 돌리는 효과를 낳는다.
무안공항은 민주당이 만든 정치공항
조사가 '조종사 과실'에만 집착하는 배경에는 더욱 불편한 진실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무안공항의 태생과 운영에 깊이 개입된 정치적 문제다.
무안공항은 건설 초기부터 '정치공항'으로 불리며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경제성 부족과 4개 주요 철새도래지 한가운데라는 입지적 위험에 대한 명백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정치적 역학관계 속에서 건설이 강행되었다. 공항 건설은 오랜 기간 해당 지역에서 압도적인 정치적 지배력을 유지해 온 민주당과 그 전신 정당 소속 유력 정치인들의 핵심 공약이었다.
정치적 상징물로 태어난 공항은 필연적으로 운영 및 안전에 대한 방치로 이어졌다. 대형 항공기의 안전 마진을 확보해 줄 활주로 연장 사업 예산이 3년 연속 삭감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특히 이 예산 삭감은 민주당이 주도한 '감액예산안' 통과의 여파라는 언론 보도는, 지역 표심을 위해 공항 건설을 주도했던 정치 세력이 정작 그 공항의 안전 담보에는 소홀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 통제 하의 조사가 '조종사 과실'에만 집착하는 것은, 지역의 지배적인 정치 세력에게까지 번질 수 있는 장기적인 방치와 재정 관리 실패라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냐는 의심을 낳는다.
비난의 대상을 찾는 데 급급한 조사는 또 다른 비극을 낳을 뿐이다. 진정한 애도는 오직 철저한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실질적인 시스템 개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유가족들의 절규는 바로 그 길을 가리키고 있다.
이 기사에 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기사 감사합니다
이런 일에 그냥 사실만 밝히면 안 되나. 사고는 날 수 있지 하지만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하는게 더 중요하잖아. 진영논리로 맨날 아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게 너무 피곤하다
탐사보도급의 고품격 기사, 잘 읽었습니다
무안공항 참사의 진실도 세월호의 진실처럼 어딘가로 떠내려 가겠네요. 한숨이 절로 납니다. 참사의 진실을 밝혀 내는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