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빗물에 잠긴 광주 백운광장 인근 상가 (광주=연합뉴스) 정다움 기자>
장마철 폭우가 전국을 휩쓸던 그날, 대한민국은 두 갈래 물줄기에 휩쓸렸다. 하나는 하늘에서 쏟아진 장맛비. 다른 하나는 특검이 소방청에 들이부은 압수수색이라는 이름의 법적 폭우였다.
6시간 만에 끝난 지난 12월의 계엄 소동을 수개월째 파헤치느라, 정작 진행형 재난 앞에서는 눈이 멀어버린 셈이다. 비상대책회의실에서 재난 상황을 모니터링하던 소방청 직원들이 갑자기 들이닥친 수사관들 때문에 어리둥절하며 멀뚱히 지켜보고 있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든 생각은 하나였다.
'도대체 이 나라에서는 우선순위라는 게 없는 건가?'
작년 12월 3일 계엄 상황에서 벌어진 단전·단수 협조 요청 건을 조사하는 것 자체는 틀리지 않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왜 하필 전국이 이재민 속출과 산사태 위험에 떨고 있던 바로 그 순간이어야 했나.
마치 불길이 치솟는 현장에서 소방관에게 "잠깐, 헬멧 각도가 규정에 맞지 않는 것 같은데요"라며 줄자를 들이미는 검사관의 모습이었다. 법적 정당성에는 흠이 없을지 몰라도, 상황 판단력은 0점이다.
특검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욕망이 국민의 안전보다 우선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 시민들은 묻게 된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
법 집행의 엄정성과 상황 판단력 사이에서 균형을 잃은 채 기계적으로 수사를 진행하는 모습은 '연출용 쇼'라는 의혹을 피하기 어렵다.
대통령실이 세월호, 이태원, 오송 등 각종 참사 유족 200여 명을 초청해 만남을 가졌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든 생각은 솔직히 이거였다. '아, 또 시작이구나.'
의미 있는 일이다. 분명히. 하지만 이런 장면을 반복해서 보다 보면 피로감이 든다. 언제까지 이런 식일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똑같은 의례가 반복된다. 진짜 변화를 위해서일까, 아니면 그냥 보여주기 위해서일까?
세월호 사건만 봐도 그렇다. 문재인 정부 때 엄청난 인력과 비용을 쏟아부어 진상규명을 추진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미해결 과제"가 남아있다는 게 현실이다. 이게 뭘 의미하는가?
진상규명이 목적이 아니라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는 뜻이다. 유족들의 아픔은 그대로인데, 정치권은 그 아픔을 연료 삼아 권력 게임을 계속한다.
문재인 정부 때 만들어진 각종 위원회들이 "진영의 인사들이 자리 나눠먹기를 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신랄하지만 부정하기 어려운 지적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다를까? 진상규명이라는 이름하에 또 다른 권력 재분배가 이뤄지는 건 아닐까? 그렇게 재난과 참사를 막는 게 중요한 정권이 폭우 속에 소방청을 압수수색하는 걸 보며 또 말뿐이라 느껴지는 건 나뿐인가?
폭우는 그친다. 하지만 정치적 물난리는 계속된다. 진짜 우산이 필요한 건 시민들인데, 정작 그들의 머리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특검은 압수수색으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정치권은 진상규명 회의로 면죄부를 얻으려 한다. 그 사이에서 시민들은 여전히 비를 맞고 있다.
언제쯤 이들이 시민을 위한 정치를 할까? 아니면 영원히 자신들만의 게임에 빠져 있을까?
빗물은 땅에 스며들어 사라지지만, 이런 의문은 계속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