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박주현>
어제저녁, 장관 후보자에 대한 칼럼을 쓰다 또다시 "모든 것은 청문회장에서 소상히 밝히겠다"라고 답변했다는 글을 쓰다 키보드에서 손을 떼었다. 이 수없이 반복되는 개미지옥 같은 상황을 또 어떻게 글로 써야 할까.
화면에는 커서만 깜빡이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넘쳐났다. 그런데 그 모든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충분히 지쳐 있을 사람들을, 내가 한 번 더 절망의 구덩이로 밀어 넣는 건 아닐까.
아무리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어도 결국 같은 패턴이다. 적당히 뭉개고 버티다가, 야당이 제대로 힘을 못 쓰는 틈을 타서 무난하게 통과시킨다. 자료 제출 거부하고, 증인 출석도 거부하고, 나중에는 "내란세력 청산"이라는 단어 하나면 모든 게 정당화된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우리는 점점 학습된 무력감에 빠져간다. 애초 대통령부터가 그랬다. 어떤 문제든, 어떤 의혹이든 적당히 뭉개고 버티면 그만이었다. 수사하는 검사를 탄핵하고, 신상을 유포하고, 불리한 판결을 한 판사를 저격하고, 법원 앞엔 근조화환이 쌓여갔다. 법까지 바꿔가며 본인에 대한 수사와 재판은 죄다 중단시키고. 그렇게 기어이 대통령 자리에 앉은 걸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절망감.
'그럼 우리는 뭘 할 수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글쓰기를 머뭇거리게 된다. 이미 충분히 지친 사람들에게 또 다른 절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다. 차라리 고양이 동영상이나 음식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나을까.
하지만 침묵이 답은 아니다. 병든 환자가 "아프다는 소리만 들으면 우울해진다"고 해서 병을 외면할 수는 없다. 우리가 느끼는 무력감의 정체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심리학자 셀리그만의 실험을 보자. 개들에게 반복적으로 피할 수 없는 전기 충격을 가하면, 나중에 충격을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개들은 그냥 누워서 당한다. 학습된 무력감이다. 이재명의 등장부터 대통령 취임까지, 우리는 수많은 좌절을 경험했다. 권력은 언제나 시간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기다리면 사람들이 지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그 개들과 같은 취급을 당해도 되는 걸까? 이게 바로 무력감에 빠져서 허우적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아니 이왕 개취급 당할 거라면 끝까지 물고 뜯어 '어휴 잘못 건드렸네'라는 후회하게 만드는 들개가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 한계를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다. 홍콩에서 한 소년이 한 말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십 년 후 초등학생들이 홍콩의 민주화를 위해 시위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이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오늘 우리가 행동하지 않으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다음 세대에게 넘어간다. 우리의 아이들이 또 다른 장관후보에서 "모든 것은 청문회장에서 소상히 밝히겠다"는 답변을 들어야 할까?
물론 쉬운 길이 될 거라 거짓말하진 않겠다. 그래서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지지하는 것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도 함께하면 가능해진다. 절망에 빠진 사람을 위로하고, 지친 사람을 격려하며,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도 절망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냉정한 분석과 끈질긴 행동이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다. 우리는 생각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고,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민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로에게 빛이 되어주는 것이다. 절망하는 사람에게는 희망을, 지친 사람에게는 위로를, 혼자인 사람에게는 연대를 건네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둠 속에서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걸어가고 있다. 이 길이 언제 끝날지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이 길에도 반드시 출구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출구를 향해 함께 걸어가는 것. 우리가 버텨야 하는 건 이 시기를 두 눈 부릅뜨고 보고, 기록하여 다시는 이런 진흙탕에 들어가지 않도록 알려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끝으로 정치에 분노는 하시되, 현생에선 마치 영화처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그리고 없으면 찾아서라도 "웃으시라."
이 기사에 19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위로가 되는 글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요즘 같은 때에 너무나 위로가 되는 글이네요
그 인간이 대통령호소인이 된 이후 끝이 없는 분노감,절망감이 일상을 지치게 만드는 요즘 기자님 글에 깊은 공감을 합니다..우리 다음 세대가 지금과 같은 상황에 다다르지 않게 말해줄 수 있도록 포기하지 말고 버텨야겠어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지치는 날 시원한 소나기로 더위가 잠시나마 식는듯한 글이네요. 고맙습니다.
큰 위로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힘든 나날이지만 기자님 같은 분이 계셔서 또 힘을 내봅니다!!언제까지 국민들의 귀와 눈을 막을수 있을지...
그들이 죗값 받을날을 기다리며 기사 정독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ㅠㅠ
선과 정의로운 마음이 모아져 일그러져 가는 한국이 바르게 정립될수 있길 기원합니다. 살인과 악, 잔혹함과 폭력이 뒤엉킨 혼돈의 시국에 어떤 마음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마음의 성찰이 느껴지는 칼럼,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진정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뭉클한 감정과 울림이 느껴지는 글이에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딱 저를 위한 위안과 다시 서게 해 주시는 칼럼입니다. 감사합니다.
지금처럼 뉴스에 짜증이 난 적이 없었는데...우리의 삶은 계속....엔딩은 봐야죠
너무 좋은글이에요 감사합니다 :)
지금 저에게 정말 위로가 되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위로와 힘이되는 글 감사합니다
지금 딱 필요한 위로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