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KBS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 공식 로고>
대통령 표창을 받은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보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12년간 '국민 육아 교과서'로 군림하며 '저출산 해결 노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소방관대신 불 구경꾼들에게 상을 주는 셈이다.
친하게 지내는 지인 부부는 말했었다. "슈돌 보면 우울해져요. 저 정도로 여유롭지 않으면 아이 키우기 힘들 것 같아서." 그들은 TV 속 인기 스포츠 스타의 다섯 아이들이 승마장에서 말을 타고, 해외여행을 다니며, 온갖 체험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한숨을 쉬며 TV를 껐다. "우리도 저렇게 키워야 하나?"
이런 반응이 낯설지 않다. 육아는 무한한 시간과 돈이 있어야 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TV가 만들어낸 착각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채널을 돌리면 '금쪽같은 내 새끼'가 나온다. 오은영 박사가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벽에 머리를 박고, 물건을 던지며, 부모를 때리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물론 '금쪽이'는 대통령 표창을 받지 않았지만, 두 프로그램이 만들어내는 이분법적 세계관은 동일하다.
한국의 TV는 육아를 양극단으로만 보여준다. 천국과 지옥. 그 사이의 일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도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지 않나? 금요일 저녁,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 TV를 틀었을 때. 화면 속 아이들은 늘 특별한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부모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이 스친다.
압축 성장 시대의 '교육 열풍'이 이제는 '육아 완벽주의'로 변모했다. 1960년대 한국 사회가 '잘살아보세'를 외치며 달려온 결과, 이제는 '잘 키워보세'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완벽주의가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가 되고 있다.
실제로 어떨까? 단국대 변상호 교수팀이 조사해봤다. 육아예능 프로그램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의 고급 승용차, 유아용품 등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60% 이상이 이런 프로그램이 결혼과 출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저출산 해결 기여? 정반대다.
한국의 저출산 원인 1위는 '경제적 부담'이다. 54.1%가 그렇게 답했다. 그런데 미디어는 두 가지 극단만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저런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면 안 되는 건가?" 혹은 "아이가 저런 문제를 일으키면 어떡하지?"
육아는 이제 경기가 되었다. 점수가 매겨지고, 순위가 매겨지는.
서천석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는 이렇게 말했다. "'금쪽이 류' 프로그램들은 해결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 가능한 것처럼 포장한다." 의사가 한 번의 진료로 암을 완치시키는 듯한 착각을 준다는 것이다.
가임기 여성 61.6%가 자녀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이유? '아이 양육 및 교육 부담'(24.4%)과 '경제적 불안정'(22.3%).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인정했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킨다고.
그렇다면 '슈돌'이 대통령 표창을 받은 것은 과연 적절한가?
물론 순기능도 있다. 아빠 육아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양한 가족 형태를 조명했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 효과가 상대적 박탈감을 상쇄할 수 있을까? 독을 푼 우물에 설탕 한 숟가락 넣는 정도다.
한국 사회가 진짜 필요한 것은 '완벽한 육아'가 아니라 '불완전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다. 금수저가 아니어도, 전문가가 아니어도 아이를 행복하게 키울 수 있다는 현실적 조언이다.
하지만 TV에서는 여전히 양극단만 보여준다. 호화로운 체험활동 아니면 심각한 문제 상황.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우리의 일상은 화면에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슈돌'이 받은 대통령 표창은 한국 사회의 자기기만을 보여주는 상징일지도 모른다. 근본적 해결책을 찾는 대신, 겉으로 보기 좋은 프로그램에 상을 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
진심으로 정치권과 미디어관련자들은 저출산에 관심이나 있는 걸까?
이 기사에 6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정치가 마비되니 저런 비현실적 동화가 전파를 타고 젊은 부부들을 좌절시키고 상품권 뿌려대는 대신 저출산에 선재 투자하면 어땠을까
평범한 사람 아닌 부유하고 여유 있으니 저렇게 할 수 있지...저렇게 못 할 거면 낳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프로였어요. 그래서 한 번 보고 안 봤어요.
제일 불편한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였어요
방영초기부터 우려했던 일. 특히 아빠가 없는 모자가정 아이들은 더 큰 박탈감 느낌. 처음부터 아예 안봤음. 남의 집 애들 행복한게 나랑 무슨 상관
공감합니다
슈돌이 아직도 방영하나봐요. 금쪽이는 커뮤니티에서 화재가 돼서 알죠. 아무튼 한국은 모든 게 양극단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