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만나요”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는 “안녕하세요” 보다 익숙한 인사말일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 정의의 강이 흘러 모이는 곳, 상식이 역동적으로 파도 치는 곳.
한방울씩 모인 물이 도랑과 계곡을 만들고 들판을 가로 지르며 협곡을 돌아 흐르다 보면 다다르는 곳. 언젠가 그곳에 이를 것이라는 소망을 공유하며 우리는 오래도록 달려 왔다.
그러나 매번 제자리를 도는듯, 그 바다란 것이 신기루처럼 느껴져 좌절 하기를 반복한다. 그 바다라는 것이 있는지 의심마저 든다. 지쳐서 그냥 좀 넓고 잔잔한 강을 만나 그곳을 바다 삼아 정착한 동지들도 있다.
그러다 보니 나와 같이 하던 사람들, 심지어 바다로 우리를 안내 하던 선각자들도 정말 우리와 같은 바다를 말하는 것이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실컷 달려 왔다 싶은데 아직 내륙의 절반도 못 왔다는 좌절감, 아니 이제 겨우 계곡을 지나 산자락 아래 정도 왔나 싶은 허탈감이 몰려올 때도 있다.
과연 우리의 바다는 어디인가?
과연 우리의 바다는 어디인가?
바다는 육지의 물이 모이는 곳이다. 육지의 물은 땅을 정화 하기도 하지만 대신 오염되기도 한다. 혼자 흐르기도 하지만 흙탕물과 오물을 품기도 한다. 모여 합쳐지는 물은 그 시작된 고향도 다르고 지나온 동네도 다르다. 비옥한 땅의 향기를 품은 물도 있지만, 척박한 땅을 거치며 고된 인간의 삶을 경험한 물도 있다. 그렇게 각자의 여정을 품은 물이 모여 푸르고 깊은 바다가 된다. 물은 그 시작과 과정이 무엇이 되었든 바다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바다에는 식물도 있고 고기도 있고 심지어 산짐승도 있다. 각 생명체의 분뇨와 사체도 그곳에서 정화되고 순환하며 하나의 바다를 이룬다. 바다는 1급수, 2급수 등으로 등급을 나누지 않는다. 그런 구별이 무색할 정도로 바다는 넓고 깊고 크다. 사람의 지식과 인식이 미치지 못할 규모다. 바다를 ‘무엇’으로 규정 짓는 시도는 사람의 오만함만 드러낼 뿐이다. 바다를 담기에는 사람의 머리가 너무 작고 좁다. 바다는 정체성이 아니라 플랫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온갖 생물과 무기물이 각자의 모습으로 활보하고 공조와 협력하는 공간이 바다인 것이다.
바다에 사는 커다란 산짐승, 그 누구도 고래에게 땅으로 돌아가라 핀잔 주지 않는다. 육지 동물의 이름을 가진 생명체에게 정체가 뭐냐고 묻지 않는다. 생김새가 다르다고 출신이 어딘지,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바다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플랫폼이며 각자의 모습으로 누리는 공간이다. 누가 누구를 배척할 권한도 없다. 누구도 자기가 떠나온 계곡의 질서를 고집하며 다른 생명체에게 가르치지 않는다. 바다는 1급수 계곡물을 양만 늘려 옮겨 놓은 곳이 아니다. 다른 공간이다. 플랫폼은 가치의 무대이지 가치의 객체가 아니다. 플랫폼을 누린다고 하여 개별 생명체의 정체성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고래는 바다에 살지만 포유류라는 본질은 변함 없다. 그래서 더 주목을 받는 것이다. 땅에서 팔다리를 버리고 온 고래는 바다의 인기스타가 되었다. 바다라는 무대에서는 다르다는 것이 흠이 아니라 다양성에 기여하는 자산이 된다. ‘배척’이 아니라 ‘포용’이 생산성을 높이는 곳이다. 가치를 품고 키우는 곳이 바다다.
이번 대선에서 바다를 보았다.
1급수 계곡물에서는 상상 못할 일이 벌어졌다. 민트와 붉은색이 어우러질 수 있는 곳, 바다니까 가능하다.
각자 떠나온 강은 다르지만 바다라는 플랫폼이기에 가능 했던 일, 이런저런 이유로 과거에는 감히 시도되지 못했던 업적을 이낙연 전 총리와 전병헌 대표가 이끈 새민주당이 이뤄 냈다. 좁은 우물 같던 우리 방송들 채팅창도 바다가 되었다. 여러 강에서 온 생명체가 어우러져 자기 의견을 내는데 큰 이물감이 없다. 안방에 불청객이 들어온 불편함을 잠시 숨길 수 없었지만, 안방이 아니라 바다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만나지 못할 사람이 없고, 대화하지 못할 대상도 없다. 공통된 가치는 그 범위에서 공유하면 되는 것이다. 바다라는 플랫폼을 누린다고 해서 내 정체성이 훼손되는 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바다의 다양성에 우리의 철학과 본질은 도움이 된다. 오히려 다르다는 것이 존재감으로 발휘되어 우물안에서는 검증할 수 없었던 효능성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이 ‘바다’다.
2일 저녁 서울시청광장 유세에서 넘쳐난 레드와 민트의 물결 (사진=연합뉴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는 혼란이 있을 수 있다.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곧 바다의 거대함과 시간의 장구함이 이를 품어 낼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우리는 막 그곳에 도착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1급수 계곡이 그립기도 하지만 그곳에 머물지 않고 바다로 향한 이상 생각과 생태를 유연하게 하고, 바다를 어떻게 누리고 이용할 지 고민해 보자.
정의로운 싸움을 하는데는 계곡보다 바다가 유리하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충분히 바다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지혜와 다양한 경험이 있다. 수많은 눈물과 좌절의 시간은 우리에게 바다를 누릴 수 있는 유전자를 선물로 주었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는 바다를 누릴 자격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는 조금씩 누려보자. 계곡에 대한 그리움은 바다와 강을 오가는 물고기에게 가끔 안부를 묻는 것으로 위로를 삼고, 이제 바다에서의 존재감을 높이는데 집중해 보면 어떨까? 바다를 소유할 필요도 없다. 어디에든 얽매이지 않고 그 넓은 곳을 자유롭게 헤엄치며 누리는 고래가 되면 그만이다. 우리의 유연성과 능력이면 얼마든지 바다의 인기스타가 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먼저 바다에 이른 존재로 우리가 기억되는 날이 머지 않아 올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바다의 모습이다.
이 기사에 19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김변님 멋진글 감사합니다. 이렇게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바다애 꼭 도착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넓은 바다에서 헤엄치는 고래를 연상하며 글을 읽었습니다. 멋진 글 감사합니다!
멋진글 고맙습니다^^
진짜 바다 있긴한가, 진짜 바다로 가고 있긴 한건가 하는 물음에 대한 위로의 답변. 감사합니다.
위로가 되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두렵고 외로운 날들
김변 님의 내일을 향한
희망과 위로에
다시 힘을 얻습니다
김변님 존경합니다
끝내 승리하리라
멋진 생각에 공감합니다
원하든 원하지않든 우리는 바다에서 결국 만나게 될것입니다. 건강하게 다들 만나요!
함께 해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김변님 항상 감사합니다.
오랜맛에 위로가 되네요.지치지 않고 바다로 걸어 가겠습니다. 함께 할께요
찢이 엔딩이면...재미없지
바다로 함께 가요
바다에서 만나요
빨리 얼른 만나고 싶어요, 그 바다에서
정의로운 싸움이 고단할지라도 무척 값진 것일 테지요?
"역사상 가장 먼저 바다에 이른 존재로 우리가 기억되는 날이 머지 않아 올 것이다."
꼭 이렇게 될 거라 믿고 싶습니다.
‘바다에서 만나요’ 대선때 우리당 기사 나올때마다 댓글에 남겼었는데..첫문장 읽자마자 울컥하네요 결국 그날이 오겠지요
공감합니다
김변님~ 글 넘 감사합니다~ 힘과 위로가 되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