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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후보자들에게만 벌어진 기막힌 우연들.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5-07-10 02:50:54
  • 수정 2025-08-05 04: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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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 파견 중 부동산 매입, 법안 발의 전 토지 구매...
  • 권력자는 우연조차 클라스가 다르다.

<그래픽 :박주현>


우연의 독점권 


내가 생각하는 최상의 우연은 이런 거다. 버스를 놓쳤는데 그 덕분에 옛 친구를 만나는 일. 비를 피하려 들어간 서점에서 마주친 인생 책. 이런 행운 같은 우연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치인에게만큼은 우연에도 '급'이 있고, 사이즈가 다르다는 걸 미처 몰랐다. 적어도 이 정권의 장관후보자들을 보기 전까지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시세 이하로 땅을 살 수 있는 우연이 찾아오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법안 발의 6일 전에 해당 지역 땅을 사게 되는 우연이 찾아온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아마 만원 지하철에서 앞자리가 비는 게 기대할만한 행운의 전부일 것이다. 


정성호 후보가 2013년 3월 26일 법안을 발의했다. '미군 기지 주변 개발부담금 50% 감면' 법안. 그런데 이상하다. 불과 6일 전에 그는 연천군 민통선 땅을 더 샀다. 2011년부터 사 모은 땅이 총 3,080평. 3.3㎡당 17,480원에 샀는데 같은 해 공시지가가 24,090원이었다. 30% 할인이다. 


조선시대 관리들이 과거 출제 정보로 토지를 사들인 것처럼, 권력은 언제나 정보를 독점하고 그 정보는 부동산으로 현금화된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방식은 똑같다. 다만 관복 대신 양복을 입었을 뿐. 


조현 후보는 더 섬세하다. 2003년 청와대 파견 한 달 만에 배우자가 한남동에 도로 부지 90㎡를 샀다. 주위에 누군가가 집도 아닌 도로를 바라보며 '아 너무 아름다운 도로네. 어머나 갖고 싶어라.'하고 그 도로를 사버렸다면 나 같으면 그런 사람을 멀리할 거 같다.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도로는 일반인에게 쓸모없는 땅이다. 차가 지나가는 곳에 집을 지을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5개월 뒤 한남뉴타운 3 구역이 지정됐다. 도로가 입주권으로 변신하는 건 신데렐라가 왕비가 되는 것과 같다. 다만 자정이 되어도 마법이 풀리지 않는다는 점만 다르다. 


"도로 쪼개기 매입은 투기꾼 단골 메뉴"라는 지적에 조 후보는 이렇게 답했다. "청와대에선 지역 정보를 얻기 힘들다." 그러면 묻고 싶다. 정보를 얻기 힘든 곳에 있던 사람이 어떻게 그런 정보가 필요한 투자를 하게 됐을까. 국민들을 정말 바보로 아는 걸까? 


강선우 후보는 실용주의자다. 2018년 고양 삼송동 대지를 6억 6천만 원에 사서 변호사인 남편이 직접 4층 건물을 지었다. 건축주 겸 시공자로 나선 것이다. 3년 뒤 16억 5천만 원에 팔았다. "건축주 직영은 합법입니다." 카메라 앞에서 그들은 똑같은 표정을 짓는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이런 말을 하는 그 표정. 물론 합법이다. 하지만 변호사가 왜 갑자기 건축 일을 하고 싶어 졌을까. 법무법인이 시원찮아 부업이 필요했나. 


나는 통계를 좋아하지 않는다. 숫자로 세상을 재단하는 게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만은 계산해보고 싶어졌다. 공직 진입 직전이나 직후에 부동산을 사고, 그 지역에 호재를 가져오는 정책 결정선에 서는 일이 한 사람에게 일어날 확률. 10의 8 제곱분의 1 정도. 


세 명이 동시에 복권에 당첨됐다. 복권이 아니라 부동산 복권에. 이쯤 되면 저들에게 장관후보 말고 복권 사업을 맡겨야 하는 것 아닌가. 


정보는 권력 주변에서 자란다. 마치 습한 곳에서만 자라는 버섯처럼. 그 버섯을 따먹을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나머지는 이해 못 할 구입에 갸우뚱하며 구경만 하다 깨닫는다. 저들에게는 독버섯도 식용버섯으로 바꿀 권력이 있다는 것을. 


법적 책임과 도덕적 책임 사이에는 넓은 회색지대가 있다. 그들은 그 회색지대를 슬로 모션으로 걸어가고 있다. 충분히 천천히,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마치 CCTV 사각지대를 아는 사람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 집 한 채는 인생의 전부다. 그걸 사려고 평생 저축하고 대출받고 이자를 갚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부동산이 그냥 게임이다. 정보를 알면 이기는 게임. 권력에 가까우면 더 쉽게 이기는 게임. 같은 카지노에서 서로 다른 게임을 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 된다. 정보를 찾고 공부하면 된다." 맞다. 하지만 정보의 종류가 다르다. 내가 부동산 카페에서 얻는 정보는 "이 동네 괜찮대요"다. 청와대에서 얻는 정보는 "이 동네 5개월 뒤에 재개발 구역 지정됩니다"다. 


권력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자기 행동을 합리화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남들은 의심하지만 자신은 확신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특권이다. 의심의 화살은 모두 밖으로 향한다. 안으로는 절대 향하지 않는다. 


결국 우연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적절한 위치에 있으면 우연이 자주 찾아온다. 그 위치에 없으면 우연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우연의 독점권을 가진 사람들이 "그냥 운이 좋았다"라고 말하는 순간, 나머지 사람들은 "운이 나쁘다"라고 체념하게 된다. 


이것이 가장 교묘한 지배 방식이다. 구조적 불평등을 개인의 운으로 포장하는 것. 시스템의 문제를 확률의 문제로 둔갑시키는 것. 그러면 분노할 대상이 사라진다. 하늘을 원망할 수는 없으니까. 


앞으로도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다른 후보들, 다른 정권에서도. 우연은 권력 주변에서만 자란다. 마치 특정 기후에서만 자라는 희귀한 난초처럼. 우리는 그 난초를 구경만 할 수 있다. 씨앗조차 얻을 수 없다. 아마 대다수 서민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향하는 지하철에서 빈자리가 나는 우연을 기다릴 때, 권력자들도 새로운 우연을 기다릴 것이다. 우연으로 둔갑한 특권인 그 우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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