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 나는 미국 땅을 처음 밟았다.
낯선 도로 위를 달리는 현대차의 로고는 낯설고 반가웠다.
세련됐다고 하기엔 조금 부족했지만, 한국차가 미국의 도로를 달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신기했다.
그 시절, 떡은 “Korean rice cake”, 김밥은 “Korean sushi”라고 설명해야 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를 휩쓸었을 때도, 그것은 일종의 희화된 신기함이었다.
“한국인도 이런 걸 하네?”라는 반응 속엔 자부심보다는 약간의 민망함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다르다.
BTS와 블랙핑크는 단순한 외국 아티스트가 아닌, 이곳 젊은 세대들의 우상이다.
헬스장에선 그들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한국어 가사를 흥얼거리는 미국 아저씨를 만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처음 현대차를 봤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감정이다.
이젠 “우리 것”이 세계 속에서 스스로 빛을 내고 있다는 확신.
그 빛은 더 이상 우연도, 일회성도 아니다.
한류는 여전히 유효하고, 지금도 진화 중이다.
K팝 데몬 헌터스_ 넷플릭스 캡쳐
그 상징적인 사례가 바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다.
소니가 만들고, 넷플릭스가 투자했으며, 한국 프로듀서들이 음악을 맡았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어디에나 스며드는 혼종의 K컬처, 그 새로운 얼굴이었다.
내용은 단순하다. 노래로 악귀를 물리친다. 한 문장으로 설명된다.
제목에서 오는 장벽 때문에 보지 않았다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이 작품은 한국적인 정서를 누구보다 또렷하게,
그러나 전혀 촌스럽지 않게 드러낸다.
주인공 헌트릭스가 공연하는 무대 뒤편엔 일월오봉도가 펼쳐지고,
그들은 무속에 기반한 ‘한국 무기’로 악귀를 처치한다.
악역은 검은 갓을 쓴 저승사자들이며, 배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이다.
놀라운 건, 이런 디테일이 전혀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국뽕’의 불편함도 없고, 과장된 연출도 없다.
이물감 없이 녹아든 한국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의 일부였다.
호랑이 ‘더피’와 까치 ‘서씨’는 특히 인상 깊었다.
작호도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한국인조차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전통을 재해석하고 있었다.
그 여파로 국립중앙박물관 굿즈가 날개 돋친 듯 팔렸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문득 생각한다.
이 영화를 한국에서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국뽕이 지나치다”, “왜 또 무속이냐”, “해외 눈치 좀 보라”는 말들이 쏟아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한국 바깥에서 탄생한 K컬처가 오히려 더 ‘한국적’일 수 있다는 역설이 흥미롭다.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그 속에서 ‘정체성’이라는 단어는 비로소 무게를 얻는다.
'사자보이즈' _ 넷플릭스 캡쳐
오늘, 사자보이즈의 ‘Your Idol’이 미국 스포티파이에서 1위를 했다.
한국 남자 아이돌 중 최고 성적이다.
이전까지 최고 기록은 BTS의 ‘Dynamite’가 세운 3위였다.
이쯤 되면, 이 흐름은 더 이상 ‘기이한 한때의 열풍’이 아니다.
한국은 이제 세계 속 문화의 한 중심이다.
‘코리안 스시’를 설명하던 시절은 멀어졌고,
나는 그 변화를 직접 목격한 세대의 일부였다.
이 기사에 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훈훈합니다
너무 재미있게 봤어요
노래는 너무 고퀄이라 겨울왕국처럼 오래도록 인기있을거 같은 느낌
이런기사도 참 좋아요
호랑이랑 까치 충격적 귀여움이더라구요. 도토로가 생각났음. 우리 전통에서 부활한거니 더 좋고요.
음악도 너무 좋더라구요 '한국적인 것 이 세계적인 것이다'가 통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