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태평소국밥의 국물은 언제나처럼 진하고 구수했다. 회인면에서 열리는 '휠러스 페스티벌'로 향하는 길, 여정 중간에 맛집과 볼거리를 끼워 넣는 건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확실한 즐거움이다. 찰진 수육과 뜨끈한 국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며 여행의 피로를 밀어내는 그 순간, 나는 거의 완벽한 행복에 가까웠다. 테이블 간격이 채 10cm도 되지 않았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옆자리의 남자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170cm 남짓한 키에 스킨헤드, 팔과 목덜미에는 빈틈을 찾기 어려운 문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맞은편의 여성은 그보다 조금 어려 보였다. 듣기 싫었지만, 그들의 대화는 좁은 공간의 공기를 타고 내 귓속으로 정직하게 배달되었다. ‘팀장’, ‘배당’, ‘기술’ 같은 단어들이 오갔다.
그래픽-가피우스
순간 젓가락이 멈칫했다. 과거 어쩌다 이른바 ‘하우스’라 불리는 곳 앞에서 잠시 문지기 일을 했던 경험이 멋대로 소환됐다. 어두운 세계의 일은 그 특유의 분위기와 용어가 있다. 나는 섣불리 결론을 내렸다. 저 문신과 단어들의 조합은 영락없이 그쪽이다. 아마도 불법 채권추심이나 불법 스포츠 토토 같은 것이 아닐까. 여자는 남자가 팀장 밑에서 착취당하고 있다며 독립을 재촉했고, 남자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했다. 뻔한 이야기. 나는 속으로 ‘말세로군’ 읊조리며 밥맛을 잃었다. 결국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술이 몇 순배 돌았을까. 알코올 기운이 아니라 모자란 나의 어림짐작 때문에 얼굴이 붉어졌다. 계속 들려오는 대화의 조각들이 맞춰지자 전혀 다른 그림이 나타났다. 남자의 직업은 타일공, 즉 조적공이었다. 그는 어떤 팀에 소속되어 현장을 뛰고 있었다. 팀장이 수당 배분(배당)을 불투명하게 처리하는 건 맞지만, 자신의 기술이 아직 독립할 만큼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 직접 영업을 뛸 자신도 없으니, 지금은 그에게 더 배워야 한다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었다.
이 무슨 일본 만화인 사카우에 아키히토 선생의 ‘에도의 장인들’ 같은 이야기란 말인가. 나는 풀스파링에서 뒷손훅을 맞은 듯 멍해졌다. 스킨헤드, 문신, 거친 단어. 내가 가진 몇 개의 조각으로 상대를 함부로 재단하고, 어두운 세계의 인물로 낙인찍었다. 정작 어둡고 편협했던 것은 내 시선이었다. 그는 자신의 기술에 대한 신념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이어가는 청년이었고, 나는 고작 외양만으로 한 사람의 삶을 멋대로 폄하한 속물에 불과했다.
국밥의 구수함도, 소주의 쓴맛도 모두 부끄러움이 되었다. 계산을 하며 저들의 술값까지 몰래 내버릴까, 수십 번을 고민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오만과 편견을 사과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음을 자백하는 또 다른 무례일 뿐이었다. 결국 나는 조용히 식당을 나와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그날 밤, 오랜만에 꿈자리가 유난히 사나웠다. 이틑 날 일정보다 서둘러 바이크의 시동을 켰다. 엔진 배기음을 들어오면 부끄러움이 사라질 것 같았다.
김남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