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박주현>
어린 시절 집 앞 개울에 놓인 징검다리를 기억한다. 물이 불어나면 그 돌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건너던 사람들은 중간에 고립되어 발을 동동 굴렀다. 디딤돌 대출 축소를 보며 그 장면이 떠올랐다. 지금 우리가 그렇다.
정치학자들은 네 가지 조합을 말한다. 똑똑한 지도자와 현명한 국민, 우둔한 지도자와 성실한 국민, 똑똑한 지도자와 어리석은 국민, 그리고 사악한 정치인과 멍청한 국민. 우리가 선택한 것은 최악이다. 탐욕스러운 정치인과 순진한 국민이 만나는 파국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다.
저소득층과 흑수저들이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지금 싹 다 잘라서 없애버렸다는 분노는 과장이 아니다. 예전에는 돈을 열심히 벌어 1억, 2억을 모으면 디딤돌 대출 받아 집을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현금 10억이 없으면 집을 못 산다.
숫자는 냉정하다. 수도권에서 6억 원 이상 대출이 불가능해졌다. 서울 평균 가격대 아파트를 사려면 현금 8억 6천만 원이 필요하다. 강남에서는 25억 원의 현금이 있어야 집을 살 수 있다. 계층 이동? 이제 꿈도 꾸지 마라.
정치인들의 이중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준이 다르다. "부동산과 불로소득으로 돈을 버는건 나뻐"라고 외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큰 돈을 번다. 이재명도 갭투자로, 정은경도 마스크 관련주로, 김남국도 코인으로, 김민석도 배추값 투자로, 정동영은 부인과 아들까지 앞세우고 법 개정까지 추진하며 태양광 한탕을 노리고 있다.
불로소득을 척결하겠다며 장검을 뽑아들면서도 자신들은 불로소득으로 배를 불린다. 민주주의 절차로 뽑힌 특권을 휘두르면서 노동자와 서민의 상승 통로를 박살낸다. 내로남불의 완성형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것이다. 정치인들은 자국민 대출은 옥죄면서 외국인 투자에는 관대하다. 중국인들이 서울 집을 풀 대출로 사고, 한국인들은 현금 없으면 집 사지 말라는 상황이 벌어졌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금융 개방의 필연적 결과다. 외국 자본에게는 문을 열어주면서 자국민에게는 문을 닫는 기형적 구조가 30년 만에 완성됐다.
국민들은 어떤가. 25만 원이라는 동전 몇 개에 혼을 팔아넘기면서 자식들이 열심히 일해도 집 한 채 못 사는 세상이 되는 것은 외면한다. 사탕 하나에 팔려가는 아이들 같다.
불로소득이 나쁜 게 아니다. 사람이 돈을 버는 여러 방식 중 하나일 뿐. 문제는 기회의 독점이다. 노동소득, 사업소득, 투자소득. 평생 노동만 하면서 사는 시스템으로는 죽을 때까지 가난하다. 언젠가는 노동력을 잃기 때문이다. 불로소득 자체를 악마화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념이다. 정당한 세금을 부과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정치인들 스스로 엄청난 불로소득의 수혜자이니 스스로의 주머니가 가벼워지는 건 용납 못한다. 진정한 부는 투자와 사업으로 생기고 그것으로 사회가 움직인다. 그런데 노동소득만 인정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그건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대출도 능력이다. 은행은 채무상환 능력, 가계소득, 세금 납부 내역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감당 가능한 액수만 대출을 내준다. 그런데 이제는 능력이 있어도 대출을 못 받게 막아놨다. 능력 있는 사람은 못하고, 원래 돈 있던 사람만 집을 살 수 있는 구조가 됐다.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이것이다. 정책의 명분은 부동산 시장 안정이지만, 실제로는 현금 부자들만의 전유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서민들한테 중요한 건 대출을 많이 해주는게 아니라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는 거라는 논리는 표면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집값이 내려갈 것 같은가? 당신의 자녀는 어떻게 집을 살 것인가? 현금 10억이 없다면 평생 월세로 살라고 할 것인가? 대단한 직업적 소명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지방으로 발령받을 바에 그냥 일 관둡니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태반인 시대에 정말로 지방으로 갈 것 같은가?
순진한 국민과 사악한 정치세력이 만난 파국의 조합. 정치인들은 내로남불로 일관한다. 국민들은 25만 원 50만 원 받게 됐다고 좋아한다. 그 사이에서 열심히 사는 흑수저들이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희망의 문은 산산조각 났다.
이것이 우리가 만든 완벽한 파국이다. 이름표만 보고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살피지 않는 사회. 바쁘다는 핑계로 어리석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회. 계층 이동의 희망은 사라지고, 노력의 가치는 부정당하는 사회. 문제는 일을 잘할 생각도, 욕을 안 들을 생각도 없는 사람들이 권력을 쥐고 있다.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우리도 여전히 개울 한가운데 서 있다. 징검다리가 언제 다시 놓일지, 아니면 영영 사라질지 알 수 없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