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박주현>
어느 겨울밤, 복권방에서 1등을 긁어낸 부부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벌써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누가 이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월세 걱정으로 함께 끙끙댔던 그들이었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정권의 검찰 인사를 두고 조국혁신당이 발끈한 모습을 보니, 정치적 우정이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새삼 깨닫는다. 마치 당첨번호가 발표된 후 복권을 나눠 갖자고 외치는 데 영 못들은 체 한다.
김학의 출국금지를 처리했던 차규근, 이광철, 이규원. 이들은 지금 모두 조국당 깃발 아래 있다. 당시 법무차관이었던 봉욱이 한마디만 해줬다면 이들이 검찰복을 벗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봉욱이 민정수석 자리에 앉았다.
세상에는 참으로 잔혹한 농담들이 있다.
이들을 법정에 세운 검사들은 지금 승진 가도를 질주하고 있다. 운명이 이런 식으로 장난을 치기에는 너무 노골적이다. 마치 이혼한 남편이 새 애인과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걸 전 부인이 창문 너머로 지켜보는 심정일까.
황현 사무총장은 "세상이 바로 잡힐 것이라고 믿었는데"라고 탄식했다. 순진했다. 대통령이 된 이재명에게 옛 동지애를 바란 것 자체가 정치적 순진함이었다. 양육비를 제때 보내주는 이혼남을 기대하는 것과 비슷한 착각이었다.
이재명의 셈법은 명확하다. 검찰은 대통령이 휘두를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칼이고, 칼날에는 우정 따위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그는 위기 때마다 상대방의 급소를 정확히 찔러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 궁지에 몰렸을 때 갑자기 아들 취업 특혜 의혹을 꺼낸 솜씨를 기억하라. 그 타이밍도 절묘했다.
조국당이 30명짜리 '블랙리스트'를 청와대에 건넸지만 무시당한 건 당연하다. 권력은 조언을 구하지 않는다. 필요에 따라 도구를 고를 뿐이다. 도구에게는 감정이 없다.
여기서 진짜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검찰개혁을 외치던 이들이 검찰 출신을 대거 기용하는 모순. 동지라는 믿음은 대통령실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증발한다. 마치 공항 보안검색대를 지나면서 액체류를 버리는 것처럼.
조국당의 배신감도 이해하지만, 그들 역시 같은 자리에 앉았다면 아마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판에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있는 건 순간의 이해관계뿐이다.
체스판 위에서 말들은 게임이 끝나면 같은 상자에 들어가지만, 경기 중에는 각자 맡은 역할만 있을 뿐이다. 조국당은 자신들이 여전히 게임의 주요 말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이재명에게 그들은 이미 쓸모를 다한 졸병이다.
체스에서 졸은 처음에는 느리게 움직인다. 하지만 끝까지 살아남으면 퀸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졸이 그 전에 희생당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년 6월 지방선거 전까지는 조국당을 아쉬워할 일이 없을 것 같다. 새로운 게임이 시작되면 또 다른 말들이 필요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