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읽씹 당한 조국당 블랙리스트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5-07-02 13:49:42
  • 수정 2025-08-05 04:14:13

기사수정
  • 조국당의 분노와 배신감.
  • 이해는 되나 너무 순진하다.

<그래픽 : 박주현>


어느 겨울밤, 복권방에서 1등을 긁어낸 부부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벌써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누가 이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월세 걱정으로 함께 끙끙댔던 그들이었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정권의 검찰 인사를 두고 조국혁신당이 발끈한 모습을 보니, 정치적 우정이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새삼 깨닫는다. 마치 당첨번호가 발표된 후 복권을 나눠 갖자고 외치는 데 영 못들은 체 한다.


김학의 출국금지를 처리했던 차규근, 이광철, 이규원. 이들은 지금 모두 조국당 깃발 아래 있다. 당시 법무차관이었던 봉욱이 한마디만 해줬다면 이들이 검찰복을 벗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봉욱이 민정수석 자리에 앉았다.


세상에는 참으로 잔혹한 농담들이 있다.


이들을 법정에 세운 검사들은 지금 승진 가도를 질주하고 있다. 운명이 이런 식으로 장난을 치기에는 너무 노골적이다. 마치 이혼한 남편이 새 애인과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걸 전 부인이 창문 너머로 지켜보는 심정일까.


황현 사무총장은 "세상이 바로 잡힐 것이라고 믿었는데"라고 탄식했다. 순진했다. 대통령이 된 이재명에게 옛 동지애를 바란 것 자체가 정치적 순진함이었다. 양육비를 제때 보내주는 이혼남을 기대하는 것과 비슷한 착각이었다.


이재명의 셈법은 명확하다. 검찰은 대통령이 휘두를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칼이고, 칼날에는 우정 따위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그는 위기 때마다 상대방의 급소를 정확히 찔러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 궁지에 몰렸을 때 갑자기 아들 취업 특혜 의혹을 꺼낸 솜씨를 기억하라. 그 타이밍도 절묘했다.


조국당이 30명짜리 '블랙리스트'를 청와대에 건넸지만 무시당한 건 당연하다. 권력은 조언을 구하지 않는다. 필요에 따라 도구를 고를 뿐이다. 도구에게는 감정이 없다.


여기서 진짜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검찰개혁을 외치던 이들이 검찰 출신을 대거 기용하는 모순. 동지라는 믿음은 대통령실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증발한다. 마치 공항 보안검색대를 지나면서 액체류를 버리는 것처럼.


조국당의 배신감도 이해하지만, 그들 역시 같은 자리에 앉았다면 아마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판에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있는 건 순간의 이해관계뿐이다.


체스판 위에서 말들은 게임이 끝나면 같은 상자에 들어가지만, 경기 중에는 각자 맡은 역할만 있을 뿐이다. 조국당은 자신들이 여전히 게임의 주요 말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이재명에게 그들은 이미 쓸모를 다한 졸병이다.


체스에서 졸은 처음에는 느리게 움직인다. 하지만 끝까지 살아남으면 퀸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졸이 그 전에 희생당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년 6월 지방선거 전까지는 조국당을 아쉬워할 일이 없을 것 같다. 새로운 게임이 시작되면 또 다른 말들이 필요하겠지만.


원고료 납부하기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이 기사에 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toto91052025-07-02 15:38:29

    "조국당은 자신들이 여전히 게임의 주요 말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이재명에게 그들은 이미 쓸모를 다한 졸병이다." 현실을 정확히 찔러주시네요 과연 조국당은 이걸 알아들을까요 ㅎㅎ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7-02 15:16:13

    날카로운 글입니다.주현님 팬입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7-02 14:38:26

    딱 맞는 표현입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7-02 14:20:56

    재밌게 읽었습니다. 최곱니다 ^^

아페리레
웰컴퓨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협상 하루도 안돼 알려진 30분의 치욕 치욕의 청구서가 도착하고 하루가 지났다. 이제 양국 언론을 통해 그 ‘협상’의 후일담이 흘러나오고 있다. 가장 압축적인 묘사는 “펜도 필요 없었던 30분”이라는 트럼프의 만족감 섞인 회고일 것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경제 주권 일부가 대서양 너머로 이전되었다. 시장의 평가는 즉각적이었고, 계산은 정확했...
  2. 버닝썬 비서관이 괜찮다면 페미니즘도 말하지 마라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한 용산 대통령실 비서관 중에 과거 버닝썬 사건의 성범죄 가해자를 변호했던 변호사 출신 인물이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그것도 공직자의 규율과 기강을 바로잡고 비리를 감찰하는 ‘공직기강비서관’이라는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2018년에 드러난 ‘버닝썬 게이트’는 우리 사회의 여성...
  3. [사설]어떤 간신이 광복절에 취임식을 '또'하라고 속삭였을까? '국민임명식' 이름 한번 기가 막히게 지었다. 이미 취임 선서를 하고 업무를 시작한 대통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두 달 만에 또 취임식을 한단다. 그것도 나라를 되찾은 광복절에, 광화문 광장에서, 1만 명을 모아놓고 말이다. 대통령실은 "국민이 대통령을 '나의 대통령으로 임명한다'고 선언하는 자리"라고 포장한다.하지만 이 .
  4. 이재명에 환호했던 어떤 변호사의 일기 : 이재명에게 실망이다. 보도블록시장 시절 보도블록 한 장까지도 챙긴다던 그 호기로운 이미지는 허상이었나? 아니면 고작 보도블록이나 챙기는 정도의 그릇이었나?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이라 자화자찬 했던 일은 갑자기 자기 밑에 직원이 자기 몰래 추진한거란다. 보도블록 챙기느라 바빴나? 도지사가 되어서도 자기가 손수 자리까지 만들어 ‘통일’부...
  5. 전병헌, 관세협상 두고 “자화자찬 아닌 자해, 조공 외교의 자화상” 이재명 정부가 최근 한·미 관세협상을 두고 “역대급 성과”라며 자화자찬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전병헌 새미래민주당 대표가 “오히려 자해에 가까운 셀프 풍자”라고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과연 이재명 정부”라는 여권 내 찬양성 멘트를 거론하며, “이 정부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내는 한마디”라...
  6. 김건희특검의 ‘윤석열 속옷 브리핑’ 유감 두 번째 수감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은 특검 수사와 내란 재판에 비협조로 일관하고 있다. 결국 김건희특검이 어제 오전 서울구치소를 찾아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강제구인을 시도했으나 윤 전 대통령의 불응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특검은 기자들 앞에서 윤 전 대통령이 "속옷 바람으로 누워 있었다"는 내용의 브리핑..
  7. 이재명 측근 김진욱, 국제마피아파와 연루 의혹 속 총리실 임명 철회 이재명 정부 '보은 인사' 논란 가속... 김진욱 임명 철회에 '버닝썬 변호사' 임명까지 겹쳐이재명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진욱 씨가 국무총리실 정무협력비서관으로 임명된다 7일 국무총리실은 밝혔었다. 정무협력비서관은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고위공무원 ‘나’급(2급) 직위다. '일신상의 이유'로 하루 만에 자진 철..
  8. 유능하다는 망상, 4천억 달러가 증명하는 친중의 대가 때로는 숫자가 가장 정직한 폭로다. 변명도, 수사도, 감성도 거세된 채, 냉혹한 진실의 뼈대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앞에 던져진 숫자들을 보라.일본의 경제규모는 대략 우리의 2.15 배다. 그들이 5,500억 달러를 낸 것을 우리 체급에 맞춰 단순 환산하면 약 2,000억에서 2500억 달러면 충분할 것이다. 유럽연합 30개국이 그나마 자신들...
  9. 이재명 '광복절 야간 임명식'에 전병헌, '대관식 하냐' 직격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8월 15일 광복절 저녁, '대통령 국민 임명식'을 열겠다고 밝히면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이미 두 달 전 국회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상황에서, 전례 없는 야간 행사를 강행하는 배경을 두고 야권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총공세를 폈다.새미래민주당 전병헌 대표는 ...
  10. [속보] 관세 25%→15%. 미국제품 무관세. 美농산물 트럭 완전개방 한국이 미국에 3천500억달러를 투자하는 등의 조건으로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했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미국이 한국과 무역 합의를 체결하기로 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2주 내로 .
후원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