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내, 스스로 무대에 오르다
무대는 한 인간의 세계를 압축한다. 조명 아래서 웃음을 파는 자의 무대와, 글러브를 끼고 힘을 겨루는 자의 무대는 다르다. 한쪽이 잘 짜인 각본과 계산된 허구로 관객의 허파를 간질인다면, 다른 한쪽은 거친 숨소리와 땀방울이라는 날것의 언어로 말한다. 희극 배우의 무대가 웃음이라는 가면 뒤에 고독을 숨기는 공간이라면, 링이라는 무대는 인간의 육체가 낼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소리를 증폭시키는 곳이다. 윤형빈이라는 사내는 그 두 개의 무대를 겁 없이 오갔다.
그가 프로레슬링 단체 PWS의 링에 오르기로 했을 때, 많은 이들은 그것을 그저 이름난 자의 외유나 이벤트쯤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PWS라는 작지만 단단한 성채에 그는 구경꾼이 아니라 기꺼이 성벽을 함께 쌓는 동료로 들어왔다. 그의 합류는 그야말로 천군만마였다. 대중의 시선을 끄는 이름값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척박한 땅에 물길을 내듯 기사를 실어 날랐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가장 낮은 곳에 두었다.
2014년 데뷔번 떄의 윤형빈 선수 (사진=연합뉴스)
PWS의 명운이 걸렸던 5월 10일 ‘레슬네이션’ 대회를 앞둔 어느 리허설 날의 풍경은 그의 진심을 증명하는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그는 약속된 시간보다 한참이나 먼저 도착해 텅 빈 관객석 한구석을 묵묵히 지켰다. 아직 자신의 차례가 오지 않았음에도, 그는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며 무대의 공기를 온몸으로 호흡하고 있었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공연 전 각 악기의 소리를 조율하듯, 그는 대회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의 모든 흐름을 자신의 감각 속에 새겨 넣으려는 듯 보였다. 그의 순서가 끝나고 모두가 짐을 챙겨 떠난 뒤에도 그는 마지막까지 남아 그 공간을 지켰다. 그것은 쇼맨십이 아니었다. 장인의 작업실에서 풍기는 톱밥 냄새처럼, 그것은 한 분야에 대한 순수한 경의와 진지함의 냄새였다.
그에게 프로레슬링이 ‘약속된 대결’ 속에서 합을 맞추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다면, 로드 FC의 케이지는 예측 불가능한 ‘날것의 진실’과 마주하는 장소였다. 그 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 그는 먼저 자신의 몸을 재료 삼아 깎아내는 혹독한 과정을 거쳤다. 10kg이 넘는 체중을 덜어내는 감량은 단순히 저울의 숫자를 줄이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난 세월 동안 몸에 익은 편안하고 익숙한 자신을 벗어 던지고, 케이지 위에 오를 자격을 제 손으로 획득하는 고통스러운 의식과도 같았다. 뼈를 깎는다는 상투적인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일 테다.
그렇게 제 몸의 일부를 떼어낸 뒤에야, 그는 코미디언이라는 페르소나마저 벗어 던질 수 있었다. 땀과 피로 얼룩진 글러브를 끼는 것은 스스로를 가장 연약하고 무방비한 상태로 내던지는 행위이며, 세상이 자신에게 덧씌운 이미지를 제 손으로 찢어버리는 용기다. 다시 케이지에 올랐을 때, 그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상대를 초반에 쓰러뜨린 KO승은 그저 운 좋은 한 방이 아니었다. 그것은 PWS 리허설 현장에서 말없이 자리를 지키던 모습에서 볼 수 있었던 성실함과,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흘렸을 땀과, 수분마저 말려버린 극심한 감량의 고통, 그 모든 투지의 총합이 터져 나온 순간이었다. 한 편의 긴 서사에 찍히는 명징한 마침표와도 같았다. 관객의 환호는 단순히 승패에 대한 반응이 아니었다. 안전한 길을 버리고 기꺼이 자신을 시험대 위에 올린 한 사내의 여정에 보내는 갈채이자 존경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삶이 내미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본받고 싶은 사람의 목록을 가슴속에 하나씩 늘려가는 일이기도 하다. 어린 날의 롤모델이 대개 위인전 속에 박제된 영웅이나 범접할 수 없는 재능을 가진 천재였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을 끄는 것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다.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걷는 성실함,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넓혀가는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려는 태도를 지닌 이들.
윤형빈이라는 이름은 이제 내 롤모델의 목록에 추가되었다. 나는 그처럼 격투기 선수가 될 수도 없고, 될 생각도 없다. 하지만 삶이라는 저마다의 링 위에서, 도망치고 싶거나 안주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텅 빈 리허설 현장을 말없이 지키던 그의 뒷모습을, 제 몸을 깎아내며 케이지에 오를 자격을 스스로 증명하던 그의 결기를,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과정을 응축시켜 터뜨려낸 환희의 순간을 말이다. 그는 자신의 육체로 보여주었다. 한 인간의 무대는 타인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걸어 들어갈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원고료 납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