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생성형 A.I>
중국 최고권력자의 운명을 둘러싼 추측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이 소동을 지켜보는 한국 언론의 반응이 묘하게 갈린다. 마치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완전히 다른 줄거리를 읽어내는 관객들처럼.
미국 싱크탱크 전문지 《Jamestown》은 최근 시진핑이 군부 장악력을 잃었으며 '집단지도체제' 복귀 움직임이 감지된다고 분석했다. 일본 매체들은 내부 누출설과 후계자 명단을 근거로 "4중전회에서의 퇴진 시나리오"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파이낸셜타임스와 닛케이아시아는 "시진핑 영향력 둔화의 징후들"을 세밀하게 포착해 비중 있게 다뤘다.
이들이 주목하는 신호는 생각보다 구체적이다. 고위 군부 인사들의 연쇄 낙마, 국영 매체의 미묘한 보도 톤 변화, 해외 순방 중 공개활동 축소 등. 개별적으로는 사소해 보이지만, 조합하면 권력 구조의 균열을 시사하는 단서들이다.
중국 정치에서 이런 '징후 읽기'는 전통적인 분석 방법이다. 1976년 마오쩌둥 사후 '4인방' 숙청이나 2012년 보시라이 실각 때도 최초 루머가 사실 확인보다 먼저 여론을 주도했다. 베이징의 정치는 늘 그림자 속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일부 언론은 이 모든 분석을 "근거 없는 괴소문"으로 치부한다. "서방 정보기관조차 관련 보도를 내지 않는다"며 외신들의 보도를 일괄 무시하는 칼럼이 등장하고, 주요 포털과 신문들이 "엉터리 가짜뉴스"라는 낙인을 찍기 바쁘다.
이런 반응은 언뜻 신중해 보이지만, 실은 게으른 저널리즘의 전형이다. 복잡한 정보를 분석하는 대신 "확실하지 않으니까 무시하자"는 식의 접근법. 마치 일기예보에서 "내일 날씨는 모르겠다"고 발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 문제적인 건 이런 태도가 드러내는 근본적 인식의 차이다. 서방 언론들이 "변화의 가능성"에 주목한다면, 한국 언론 일부는 "안정성 유지"에 더 무게를 둔다. 전자가 위험을 감지하려는 레이더라면, 후자는 소음을 차단하려는 방음벽에 가깝다.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가. 확실한 팩트만 전달하는 것인가, 아니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준비를 돕는 것인가. 만약 전자라면 언론은 사후 정리나 하는 부고 작성자 정도의 의미밖에 갖지 못한다.
진짜 저널리즘은 안개 속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완전히 선명하지 않은 그림 속에서도 패턴을 읽어내고, 가능성들을 제시하며, 독자들이 각자의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재료를 제공하는 것. 그런 면에서 시진핑 실각설을 둘러싼 각국 언론의 반응은 흥미로운 시험지가 된다.
해외 전문가들은 이미 "후계자 명단"까지 분석하며 시나리오 플래닝에 나섰다. 만약 권력 교체가 현실화된다면 한중 관계, 무역 정책, 안보 환경에 어떤 변화가 올지 미리 그려보는 작업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아예 대비책 논의 자체를 생략한다.
물론 루머와 추측이 난무하는 정보 환경에서 신중함은 미덕이다. 하지만 신중함과 무관심은 다르다. 전자는 정보를 걸러내는 여과기이고, 후자는 정보를 아예 차단하는 벽이다.
중국의 권력 변화 가능성을 다루는 것은 단순히 가십이나 추측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이자 안보 환경의 핵심 변수인 중국의 정치적 안정성은 그 자체로 중요한 공공 의제다. 이를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외면하면 안 된다.
결국 시진핑 실각설을 바라보는 한국 언론의 시각은 우리 저널리즘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안전한 거리에서 확실한 것만 다루려는 관성, 복잡한 분석보다는 단순한 결론을 선호하는 경향, 그리고 불확실성 앞에서 보이는 소극적 태도까지.
언론이 칼끝을 세워야 할 때가 있다. 권력의 변화든, 위기의 징후든, 미래의 가능성이든 - 불편하고 불확실하더라도 직시해야 할 현실들이 있다. 그것이 언론의 본분이고, 독자들이 언론에 기대하는 바다.
시진핑이 권좌를 지킬지, 물러날지는 아무도 확실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불확실성 자체가 우리가 주목해야 할 현실이다. 그리고 그 현실을 외면하는 순간, 언론은 존재 이유를 잃는다. 거울 앞에 선 한국 언론이 마주해야 할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