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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하이힐
  • 카타리나타 기자
  • 등록 2025-06-19 12:17:32
  • 수정 2025-06-19 13: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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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7 정상회의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한 이재명 대통령, 그리고 그의 하이힐
  • 음지의 패션아이템을 국제외교의 장으로 끌어올린 이 대통령
  •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는 깔창 걸리면 정치적으로 낙마

캐나다에서 개최된 제 50차 G7 정상회의가 끝났다. 글로벌 관세전쟁, 테러지원국에 대한 제재 강화가 구체적으로 논의되었으며, 인도, 브라질, 멕시코, 남아공 등으로 G7의 ‘확장된 동반자주의’가 실질화 되었다. 중동전쟁의 그림자 속에서도 세계 선진국 정상들이 모여 국제무역, 세계평화, 다원주의 외교 확대 면에서 나름대로의 성과를 이룬 회의였다는 평가다. 


이번 회의는 세계 패션 산업 차원에서도 큰 의미를 남기고 있다. 그동안 ‘음지의 패션아이템’ 정도로 취급 받았던 ‘남성용 하이힐’이 공적인 장소, 그것도 정상 외교 무대에 공식적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이재명 대통령이 선보인 남성용 드레스 슈즈로서의 ‘블랙 하이힐’이 그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블랙 레더 레이스업 하이힐 슈즈(사진: 대통령실) 

이 대통령은 과거 당대표, 도지사 시절부터 하이힐을 즐겨 신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대통령의 반대파들은 ‘생긴대로 살 것이지 폼 안 나게 깔창을 까냐’, ‘저 나이에 깔창 까는 건 열등감의 결과’, ‘팔 길이는 어떡할래’ 라며 비판했지만 ‘사이다’, ‘전투형 노무현’ 등이 별명이 있을 정도로 강직한 ‘마이웨이’ 성향을 가진 이 대통령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그의 하이힐은 그가 경쟁자로서 의식하는 대상을 만나는 자리에서 더 높아져 그의 자존심과 정치적 위상을 더욱 높여주곤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172cm), 이낙연 전 총리(177cm)와 나란히 선 이재명 대통령의 모습. 만나는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키가 이 대통령의 유연함을 반영한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은 양자회담과 주지사 리셉션, 포토세션 내내 검정색 남성용 하이힐을 착용해 대한민국의 당당한 위상을 뽐냈다. 일본 이시바 총리와의 회의장소에서 이 대통령은 약 5cm의 통굽을 신어 주목을 받았다. 성수동에서 35년간 수제화 공장을 운영해 온 장인 정모씨(55세) 에 따르면 “남성 키높이 구두는 겉으로는 일반 구두와 같아 보이게 만들고 깔창으로 티 안 나게 보완하는게 기술.” 이라며 “겉으로 저 정도 굽이 보인다면 내부 깔창의 높이도 보통 키높이보다 훨씬 높아 적어도 10cm 정도의 상승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고 진단했다.


이시바 총리와의 회담에서 돋보인 이 대통령의 통굽.(사진: 연합뉴스)

남성에게 키높이나 깔창은 원래는 다소 부끄러운 아이템이었다. 어쩌다가 깔창을 깐 것이 지적당하면 부인하고 화를 내던 것이 키높이 구두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이었다. 큰 키를 선호하면서도 키를 키우기 위해 깔창을 까는 것 행동은 '남자답지 못하다' 고 보는 편견 때문이다. 


그렇게 쉬쉬하며 몰래 신던 남성용 하이힐을 대통령같은 공인들이 당당하게 착용하고 그것이 용인되는 것은 한국사회와 한국 정치의 개방성, 다양성, 포용성을 반영한다. 최근 미국의 사례를 보자. 2023년, 공화당 내 트럼프 대항마로 불렸던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키높이 부츠를 신은 것이 들통나 지지율이 하락하고 결국 대선 출마가 좌절된 일이 있었다.  드산티스 주지사는 180cm의 키에도 3cm의 속굽이 있는 부츠를 신어 미디어의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방송 진행자들은 그에게 “운동할 땐 뭘 신느냐.”, “맞춤형 부츠를 신는 것 아니냐.” 며 질문했고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구두제작자들을 인터뷰 해 키높이 부츠에 대해 심층 취재하면서 드산티스는 정치적 유망주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이다. 여의도에서 민주당을 취재하는 한 기자는 “미국에선 겨우 3cm의 깔창만 깔아도 이미지가 날라가는데 한국에선 대통령이 대놓고 하이힐 신어도 용인되는 분위기.” 라며 “한국이 패션에 있어서는 포용성 높은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공화당 유망주였던 드산티스 주지사. 그의 키높이 부츠를 조롱하는 영상이 2023년에 대거 확산되었다. (사진: 틱톡)

하이힐은 역사적으로는 상류층의 패션이었고 발달된 궁정문명의 상징이었다. 높은 굽의 신발은 특히 남성권력자들이 자신의 지위를 상징하기 위해 신던 아이템이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왕족이나 귀족의 높은 신분을 나타내는 수단이었고 중세의 귀족 남성들도 말을 탈 때 복잡한 디자인의 하이힐 부츠를 신었다. 


하이힐을 좋아했던 역사적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이는 ‘태양왕’ 으로 불린 프랑스의 절대군주 ‘루이 14세’다. 163cm로 남성으로서는 작은 키였던 그는 작은 신장을 커버하기 위해 외모 치장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루이14세는 높은 가발과 백콤(머리를 부풀리는 빗질) 로 헤어스타일을 높게 만들었으며 하이힐을 신어 키를 커 보이게 했다. 귀족들은 그의 앞에서 항상 허리를 숙여 왕보다 커 보일 수 없게 했다. 루이 14세의 하이힐은 곧 ‘루이 스타일 구두’ 로 불리며 전 유럽에 남성하이힐 유행을 몰고 왔다. 정치적 권위와 권력의 상징, 패션을 통한 작은 키의 커버 등 복식사적으로나 실용적으로 볼 때 이재명 대통령의 하이힐 선호는 매우 이유있는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루이14세의 실크 하이힐. 빨간 굽으로 오히려 높은 굽을 강조하고 리본과 보석 버클로 화려함을 더했다.(사진: 게티뮤지엄) 

그러나 이렇게 좋은 하이힐에도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높은 구두를 오래 신는 것은 자세와 건강에는 치명적인 악영향을 준다. 

깔창이 높으면 발바닥의 압력 분포가 비정상적으로 앞으로 쏠려 발이 쉽게 붓고 통증을 느낄 수 있다. 만성적인 발 통증은 일상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들고 짜증을 유발한다. 그러나 깔창때문에 아프다는 것은 남 앞에서 티도 낼 수 없기 때문에 그 불편함을 해소할 길도 없다. 자칫하면 하이힐을 오래 신는 여성들처럼 족저근막염이나 무지외반증, 허리통증 등에 시달릴 수 있다. 키높이 구두를 신었을 때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 일이다. 발목이 꺾여 보통 신발을 착용 했을 때 보다 더 큰 부상을 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건강상의 부작용과 세계적인 패션의 미니멀리즘 경향 때문에 2000년대 중반 들어 하이힐의 인기는 크게 시들해졌다. 요즘 여성신발 브랜드에서도 궆낮은 로퍼나 운동화가 메인 아이템이며 거리에서 하이힐을 신은 여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한 엑스 이용자가 분석한 이재명 대통령의 하이힐 착용시 발모양. 과도하게 꺾어진 발등으로 통증이 우려된다. (사진: 엑스)

패션 전문가들 역시 과도한 깔창이 오히려 전체적 스타일링을 망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스타일리스트는 “신체비율을 무시하고 깔창만 높이 깔면 팔이 짧은 것이 더 티가 나거나 바지 주름이 과하게 잡힌다. 걸을 때도 신발을 질질 끌게 되어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 있다.” 고 지적했다. 최근 소개팅을 했다는 한 20대 여성은 “신은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고 믿지만 깔창은 무조건 티가 난다. 과한 깔창 때문에 신발 모양이 두툼해진 건 첫 만남에서 좋은 인상을 주진 않는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결론은 ‘과유불급’이다. 구두 속의 깔창도 외모에 대한 집착도 열등감도 과유불급. 신장과 비율에 맞게 적당할 때 멋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외모에 대한 불만 하나 둘 씩은 갖고 있지 않다. 머리숱, 키, 몸무게, 피부색이나 체형. 스스로의 겉모습에 만족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부족함을 그것대로 받아들이고 당당한 모습, 타인의 장점을 인정하는 넉넉한 마음, 물론 어떨 때는 누구라도 약간의 깔창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하이패션 남성복에서는 여전히 하이힐이 애용된다. 영화 <검은사제들> 시사회에서 생로랑의 가죽팬츠와 하이힐 부츠를 신은 배우 강동원의 모습. 강동원의 키는 프로필상 186cm 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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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5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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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bbum112025-06-19 16:00:57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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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urquoimoi2025-06-19 15:40:39

    SunnyEffect! 놀라운 통찰에 기반한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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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6-19 12:55:37

    재밌게 정독한 정덕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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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squf242025-06-19 12:37:56

    분바르고, 눈썹문신하고 루이 14세 구두 신는다고 열등감이 해소될까.
    오리걸음을 볼 때마다, 머리 텅텅 빈 말을 뱉어낼 때마다 우스꽝스럽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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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6-19 12:30:35

    강추기사**

아페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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