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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우주를 헤매는 민주당 정치인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5-06-15 04:09:27
  • 수정 2025-08-05 04: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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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것이 공개된 '비공개' 행사의 아이러니
  • 2억 3천만 원으로 사라진 상식과 언어
  • 같은 시공간, 다른 현실을 사는 사람들

<그래픽 : 박주현>


평행우주의 정치학: 비공개라는 이름의 공개적 스펙터클


삼청각의 6월은 늘 그렇듯 고즈넉했다. 한옥의 처마 아래로 여름 햇살이 부서지고, 마당에는 하객들의 웃음소리가 번져나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비공개 결혼식"이라던 이 자리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을까. 더 이상한 건 애초에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을 제외한 모든 국민이 이 결혼식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언제부터 우리는 이렇게 투명한 비밀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을까.


유리집의 얇은 커튼


6월 14일, 이재명 대통령의 장남 이동호 씨가 결혼했다. 언론은 하나같이 "비공개"라고 썼지만, 사실 공개되지 않은 것은 거의 없었다. 날짜도, 장소도, 신랑의 계좌번호와 신부의 이름과 대학, 전공과목까지 모든 것이 알려져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모두 초청받았다. 전원이다. 가족 행사에 정당 의원 전체를 초대하고 "비공개"라고 부르는 것. 이것은 새로운 언어의 발명이었다. 마치 전두환이 12.12 성공 만찬을 열어놓고 "사석 모임"이라고 우기는 것과 겹쳐 보였다.


나름 글쟁이로 언어에 민감하다 자부하는데 내가 알던 비공개와는 그 결이 많이 다르다. 말 그대로, 진정한 의미의 비공개라면 가족과 몇몇 지인만 참석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서는 다른 규칙이 적용되는 것 같았다. 권력의 중심에 있는 자들에게는 공개하지만 시민에게는 비공개인, 그런 이중 구조 말이다.


<사진 = 박홍근의원 페이스북 캡쳐>


707번의 기록


박홍근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읽으며 나는 잠시 현실감을 잃었다. "모진 고통을 이겨내왔다"는 표현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가족이 겪은 "모진 고통"의 실체를 살펴보자. 이재명 대통령은 각종 재판을 받았지만, 대통령 특권으로 재판이 중단된 상태다. 재판이 멈췄다고 혐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부인 김혜경씨는 2심에서 유죄가 확정되었다. 그리고 아들 이동호씨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707번 도박사이트에 접속해 2억 3천만 원을 잃었다.


707번. 이 숫자를 곱씹어보라. 하루 평균 한 번꼴로 도박을 한 셈이다. 할머니 발인 당일에도 11시간 동안 도박을 했고, 아버지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역사적인 날에도 멈추지 않았다.


이것이 "모진 고통"인가. 이들이 노동운동을 하다 잡혔나. 독립운동을 하다 고문을 당했나. 아니다. 각자의 선택과 행동으로 인한 결과를 마주하고 있을 뿐이다.


의료진들은 이런 패턴을 중증 도박중독이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박홍근 의원의 눈에는 "고통을 이겨낸" 감동적인 스토리로 보였던 모양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뀐 이상한 세계. 방화범을 소방관으로 부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충성의 출석부


박홍근 의원은 왜 이 결혼식 참석을 페이스북에 자랑스럽게 올렸을까. 4선 의원이자 전 원내대표였던 그에게 이 자리는 단순한 축하가 아니었을 것이다. 일종의 출석체크였다. '나는 여전히 당신 편입니다'라는 메시지.


하지만 정치인이 사적 행사 참석을 공개적으로 어필하는 순간, 그 행사는 더 이상 사적이지 않다. 공과 사의 경계가 무너진다. 과거 이장우 대전시장 자녀 결혼식에 천 명이 몰렸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축의금이 상상을 초월했다는 그 소문처럼.


결혼식이 권력 네트워크의 결속 도구가 되는 순간, 그것은 개인의 축하가 아니라 정치적 의례가 된다.


언어의 연금술


가장 흥미로운 것은 언어의 변화였다. 도박중독자가 "고통을 이겨낸 사람"이 되고, 사법절차가 "모진 고통"이 되고, 공개적 행사가 "비공개"가 되는 마술. 조지 오웰이 『1984』에서 경고했던 "이중사고"가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노예"라던 그 슬로건처럼. 하지만 현실은 언어의 포장술로 바뀌지 않는다. 707번의 도박은 여전히 707번의 도박이고, 공개적 행사는 여전히 공개적 행사다.


진짜 고통의 거리


박홍근 의원의 지역구 중랑구을은 서울에서도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이다. 그곳에는 정말로 "모진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최저임금으로도 부족한 월세를 걱정하는 청년들, 전세사기로 평생 모은 돈을 잃은 가족들, 의료비가 부담되어 병원 가기를 미루는 어르신들.


그들이 스스로 707번의 도박이라는 상상할 수도 없는 범죄와 그 엄청난 금액을 두고 "고통을 이겨냈다."고 표현하는 정치인을 선출했다는 게 비극적이기도, 또 괴기스럽기도 하다. 하루 벌이로 버티는 사람들에게 2억 3천만 원은 평생의 꿈이다.


정치인이 권력자의 결혼식에서 눈도장을 찍을 시간에, 이런 사람들은 또 고통스러운 하루에 또 외줄 타기를 하고 있을 텐데 말이다.


평행선의 종료


결국 우리가 목격한 것은 하나의 현상에 대한 두 개의 완전히 다른 해석이었다. 같은 사건을 두고 누군가는 "감동적인 극복 스토리"를 보고, 누군가는 "책임 회피와 현실 왜곡"을 본다.


하지만 민주주의에서는 사실이 먼저다. 권력자든 일반인이든 같은 기준으로 판단받아야 한다. 707번의 도박을 미화할 이유도, 공개적 행사를 비공개라고 우길 이유도 없다.


언어의 마술은 일시적으로 눈을 흐릴 수 있지만 진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평행우주는 물리학의 가설로만 남겨두자. 정치는 현실에서 해야 한다. 투명한 유리집에서는 커튼이 소용없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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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6-15 11:58:15

    진짜 목소리를 내어주는 곳은 이 곳 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진짜 참기자들 오랫동안 남아주세요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6-15 07:45:11

    오늘도 그놈 거시기에 커다란 종기라도 나서 아파 뒈지기를! 간절히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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