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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도 내 탓, 안 와도 내 탓.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5-05-24 09:46:25
  • 수정 2025-08-05 04: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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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임지는 사람과 회피하는 사람
  • 노무현의 대척점에 서있는
  • 노무현을 모욕하는 민주당후보

어제는 노무현의 서거일이었다. 그날이 올 때마다 떠오르는 문장이 있다.


"비가 와도 내 탓, 안 와도 내 탓."


▲< </sub>그래픽 : 박주현 >


그가 남긴 말 중에서도 유독 이 한 문장이 가슴에 박혀 있다. 시간이 흘러 정치인들의 도덕성에 대한 기대는 바닥을 쳤고, 정치 자체에 대한 환멸은 하늘을 찌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책임감만큼은 정치인의 최후 보루가 아닐까.


어제 토론회에서 이재명이 법카 질문에 던진 대답을 들었다. "내가 유죄받았어요?" 국민들은 너무도 잘 안다. 김혜경이 누구 덕에 그 법카를 손에 쥐게 된 것인지를 하지만 아내조차 선을 긋는다. 그 순간, 나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분노도 실망도 아닌, 어떤 서늘한 감탄이었다.


돌아보면, 자신이 치적이라 자랑하던 일들을 하위 직원 탓으로 돌리고, 대북송금마저 남의 일로 치부하고, 마치 경선 시절의 노무현을 흉내 내듯 짐짓 아내를 아끼는 남편인 양, '미안하다 혜경아.'를 외치다가도 약간의 곤경 앞에선 이내 아내의 법카 사용에도 "내가 유죄냐"라고 되묻는다. 급기야 자식까지 사실상 남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들이 그저 우연이 아니었다. 권력욕이라는 것이 천륜마저 내팽개칠 수 있는 그런 비정한 것인가 싶어 오히려 대단함을 느꼈다.


그는 한때 "행정은 소방 재난 대응만 잘하면 된다"고 했었다. 그러나 쿠팡 물류센터가 불탈 때 그가 '잘'한 일은 떡볶이 먹방이었다. 자신의 말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람. 말 바꾸기와 발 빼기가 패시브 스킬인 사람.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외교 문제에는 "내가 외무부 장관인가요?"라고 할 것이다. 

무력 충돌이라도 생기면 "내가 현역 군인인가요?"라고 할 것이다. 

경제 위기가 닥치면 "내가 경제부총리인가요?"라고 할 것이다.

강력 사건에는 물론 "내가 경찰인가요?"할 테다.


신기하지 않은가? 그가 고개를 삐딱하게 쳐든 모습은 자주 본 탓인지 뇌리에 박혀 그림으로라도 그릴 수 있을 듯 선명한데, 어떤 사안에 대하여든 말이나 글로서 하는게 아닌 -물론 그마저 항상 단서를 달아 회피했었지만- 화면앞에 나와 정중히 고개 숙여 사과하는 장면을 본 기억은 지난 10년을 돌아봐도 적어도 내 기억엔 떠오르지 않는다.


문득, 그를 우연히라도 만나게 된다면 묻고 싶다. "당신은 책임을 지기 위해 권력을 얻으려는 건가요, 아니면 책임과 혐의들을 회피하기 위해 권력을 얻으려는 건가요?"


노무현이 떠난 지 16년이 지났다. 그가 남긴 그 문장은 여전히 선명하다. 비가 와도 내 탓, 안 와도 내 탓.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이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흘러간다. 책임을 회피하는 데 능숙한 사람일수록 더 높은 자리에 오른다. 그것이 우리 시대 정치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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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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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24 14:25:31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더니 딱 그꼴이네요

아페리레
웰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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