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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할 사람이 필요한 시대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5-05-17 12:13:52
  • 수정 2025-08-05 04:2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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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에게 떳떳이 소개하고 싶은 대통령
  • 김문수라는 인간에 관하여

▲< 그래픽 : 박주현 >


정치 칼럼을 쓰는 사람으로서 늘 어떤 정치인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호의적이지도, 적대적이지도 않은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요즘 SNS를 보면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새미래 민주당 당원들이 김문수 후보를 지지한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해킹인 줄 알았다. 아니면 누군가의 장난. 그러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이낙연 지지자를 감동시킨 김문수", "온 마음에 지지합니다. 진짜는 김문수", "울산 새미래 민주당 당원들이 김문수 후보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글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가?. 비록 아직은 세력이 크지 않은 당이지만 한 정당의 당원들이 진영이 갈리는 경쟁 정당의 후보를 지지한다니. 이건 마치 붉은색과 파란색이 섞여 보라색이 되는 것 같은 현상이었다. 내가 알던 한국 정치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었다.


김문수. 하긴 그는 내게도 그저 보수 정당의 대표적 인물로만 존재했다. 여느 정치인처럼 자신의 진영을 대변하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좌파 운동권 출신이었다는 사실은 그를 비난할 때나 주로 언급되던 일이었을 뿐 그 내막이나 이유는 고민조차 해 본일이 없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김문수의 과거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는 젊은 시절 노동자 권리를 위해 싸우다 감옥에 갔다던가, 경기도지사 시절에는 119 대응 매뉴얼을 바꿔 책임소재를 명확히 했고, 1세대 노동 운동가의 응급수송을 문의하려다 '갑질'이라는 오명을 썼다던가. 내가 알고있다 믿던 것들과는 많은 거리감이 있었다.


이국종 교수의 책에서는 그가 경기도 외상센터를 위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도의원들을 설득했다고도 하고. 지방의회 다수당이였던 민주당 의원들을 모두 설득해 200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단다. 그 외상센터는 지금 닥터 헬기 출동 천 회를 돌파하고 10년 연속 최고 평가를 받은 병원이 되었다는 얘기까지.


삼성 반도체 공장 유치를 위해 700번 넘게 찾아갔다는 이야기는 거의 신화적이다. 숫자로만 보면 700번. 하루에 한 번씩 간다고 해도 2년이 넘는 시간이다. 어떤 시간, 어떤 마음이 필요할까.


북한 인권법을 최초로 발의한 것도 그였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낸 것이다. 앞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웠던 그의 삶과 일관된 모습이다. 인권이라는 가치 앞에서 이념의 경계를 허문 것이다.


한센인 마을에 가서 봉사하며 한글을 가르쳤단다. 딸을 사회복지사로 키웠다. 아버지의 영향이었을까. 어린이날에는 요양원에 가서 90세 할아버지를 케어했다. 평범한 시민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직접 택시 운전을 하기도 했다.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수화 공연을 찾아다녔다는 이야기도 있다. 수화 공연이라니. 정치인들이 보통 찾는 자리가 아니다. 표도 안 되는 곳에, 방송 카메라도 없는 곳에 왜 갔을까.


고덕 삼성 반도체, GTX, 판교 신도시, 광교 신도시, 수도권 대중교통 요금 통합... 경기도를 발전시킨 업적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그의 이런 업적들보다 오해로 범벅이 된 '119 갑질' 사건이 더 크게 보도됐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가장 놀라운 건, 이 모든 이야기가 대선 후보가 되기 전까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문득 자괴감이 들었다. 정치를 오래 지켜봐 왔다 자부하던 내가, 그의 이런 면을 몰랐다니.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니. 왜일까? 그가 속한 정당이 내가 지지하는 정당과 달랐기 때문인가? 그것만으로 한 인간의 모든 면을 무시했단 말인가?


이것이 바로 진영논리의 폐해다. 나름 진영논리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 자부하는 나조차, 우리는 서로 다른 진영의 사람들을 악마화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취급한다. 그들의 생각, 그들의 업적, 그들의 인간적인 면을 보려 하지 않는다. 그저 '저쪽 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런면에서 새미래 민주당 당원들이 김문수 후보에 호감을 표하는 현상은 어쩌면 우리 정치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진영을 넘어 인간을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일지도.


인간 김문수. 그는 완벽하지 않다.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않듯이. 그러나 그의 삶은 일관성이 있다. 노동자의 권리, 북한 주민의 인권, 경기도민의 안전과 복지.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어찌보면 진보의 핵심 가치인 '사람'이 있다.


대선 후보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김문수라는 인간을 제대로 알아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저 '저쪽 편'의 정치인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이 사실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진영논리는 우리의 시야를 좁힌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세상의 반쪽만 보게 한다. 그러나 세상은 훨씬 더 복잡하고, 사람은 훨씬 더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가 아니라는 이유로, 한 인간의 모든 면을 무시했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진영논리를 타파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 모두가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볼 때, 비로소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대통령을 선택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느냐이다. 내가 속한 진영이라서? 아니면 그 사람이 어떤 인간이고, 어떤 업적을 남겼고, 어떤 가치를 지켜왔는지를 보고서?


하지만 이번 선거의 나는 조금 단순해 지기로 했다. 아이들이 존경할 수 있는 대통령. 힘들지만 저렇게 살아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게 맞다고 알려줄 수 있는 사람. 오욕의 자리였던 대통령의 자리를 다시 존경받는 자리로 바꾸는 게 우리의 숙제고, 그 자리에 누가 앉을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진영을 넘어, 인간을 보는 선택을 하자. 그것이 우리 정치가 한 단계 성숙해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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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5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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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18 00:11:40

    처음엔 이죄명이를 막기 위해서 였지만 지금은 김문수대통령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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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17 18:37:41

    그쪽이 짜놓은 프레임에 빠져 객관적으로 바라보지않았던 예전이 부끄러워지는 요즘입니다. 정말 중요한 대선이니만큼 바른사람을 대표로 만들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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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17 18:18:41

    좋은 칼럼 잘 읽었습니다 이번 선거는 진영을 타파하고 사람보고 뽑는 선거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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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17 18:05:35

    진짜 공감되는 글이네요
    저도 김문수라는 사람을 오해하고 알려고도 하지않았어요
    아직도 이런 인물이 국힘에서 나왔다는게 얼떨떨하지만 지지하고 있습니다
    중도층들도 이 사실 알고 지지해줬으면 좋겠어요
    이런 후보가 대통령이 돼야 당연한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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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17 17:50:43

    제 기대 예상보다는 존경할 만한 정치인이 제 인생에 빨리 나타나긴 했어요. 다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게 슬프네요. 박주현님 글 정말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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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17 17:40:26

    공감합니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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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17 17:24:45

    매우 공감... 좋은 칼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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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17 17:16:47

    제 마음 그대로입니다. 진영에 갇혀 세상을 반쪽으로만 봤다는 거 요즘 새삼 느끼고 반성 중입니다. 쉽게 바뀌지 않을지 몰라도 이걸 인지하고 바뀌려고 노력하는 것과 전혀 모르고 사는 건 천지차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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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17 17:00:47

    진영 상관없이 업적이 맘에 듭니다 김문수 그동안 오해한거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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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squf242025-05-17 17:00:30

    박주현 칼럼니스트님이 쓰신 글 그대로가 제 마음입니다.
    진영을 넘어 인간을 선택하는 투표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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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17 16:31:06

    와 좋은글이네요
    저도 이번에 김문수님을 다시 알게되고
    또 몰랐던 그의 삶을 알게되서 참 기분이 좋습니다
    기사 정말 좋네요
    존경할만한 정치인 나아가 대통령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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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17 16:28:53

    저희는 모두 김문수와 설난영의 청춘이 빚진게 많아요 찬란하고 아름다운 그들의 청춘을 바쳐서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헌신하셨잖아요 왜 저는 이제서야 이 진실을 알았을까요 그냥 모른척 국힘이잖아 꼰대같아 하고 비난하고 욕했던 지난날을 반성합니다 이제 사람을 보고 뽑을래요 김문수 후보님 당신의 아름답고 찬란한 인생에 박수를 보냅니다 저는 김문수 후보님의 청춘에 투표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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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17 14:51:52

    좋은 글, 감사해요~ 김문수 삶이 존경 받아 마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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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17 14:49:16

    대선후보가 된 후로 알게된 김문수후보의 이력을 보면서
    한때 진영주의에 매몰됐던 나 자신부터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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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17 14:04:58

    진영논리에 갇힌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좋을듯합니다
    링크 퍼가서 알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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