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두려움에 떠는 승리자는 없다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5-05-09 22:45:20
  • 수정 2025-08-05 04:30:42

기사수정
  • 승리자의 두려움과 침묵하는 다수의 역설
  • 패배할까 두려워 패배를 만드는 사람들

▲< 그래픽 : 박주현 >


외형적으로 민주당은 승리의 마지막 계단을 오르고 있다. 대법원의 유죄 판결이라는 철퇴를 맞았지만, 고등법원이 판결을 미루면서 그들은 숨 쉴 공간을 얻었다. 지지율 조사에서는 항상 1위, 당내 경선에서는 90%가 넘는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어느 정치인이 이런 상황에서 초조해할 수 있을까.


그런데 거울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행동은 패배의 그림자를 진하게 드러낸다.


사법부를 향한 손가락질은 날카롭다. 아군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규정하고, 법관들을 탄핵 명단에 올리거나 청문회라는 이름의 공개 처형대에 세우려한다. 선거법을 밤새 뜯어고치고, 재판중지법이라는 이름의 방탄조끼를 서둘러 입는다. 온라인 뒤편에서는 '개딸'이라 불리는 열성 지지자들이 상대 진영의 가장 약한 후보를 내세우기 위한 작전을 펼친다는 소문이 돈다.


승리를 코앞에 둔 선두주자라면 숨을 고르고 발을 맞추며 실수 없이 결승선을 바라봐야 한다. 그게 정석이다. 그런데 그들은 내란 특검 100명이라는 기이한 숫자를 꺼내들고, 내란 재판부라는 헌법 교과서 어디에도 없는 개념을 만들어낸다. 국가의 틀을 뒤흔드는 발언들이 일상처럼 쏟아진다. 윤석열이 내란 수괴라 열을 올리면서도, 자신들은 그에 못지 않은 상황을 끊임없이 연출한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과 이재명을 계엄의 원인 제공자로 여기는 국민들이 과연 소수일까? 침묵하는 다수가 품은 생각은 여론조사 통계치 속에 드러나지 않는다.


차가운 거실에 앉아 뉴스를 보다가 문득 예전에 스타워즈 속 요다가 했던 말이 귓가를 스친다. "두려움은 어둠으로 가는 길이다. 두려움은 화를 불러오고, 화는 미움을 불러오며, 미움은 고통을 불러온다." 말의 주인공은 허구지만 진실은 아프게 박힌다.


민주당과 이재명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유령이 어른거리는 듯하다. 역대 대선에서 워낙 지지율의 격차가 컸던 이명박정도를 제외하고는 대세론이 제대로 작동한 적이 거의 없다는 역사의 유령이. 한 번 이상 패배를 맛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그 특유의 두려움이다. 선거일 전날까지 앞서 있다가 뒤집힌 기억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찾아와 속삭인다. 그들의 거친 호흡과 급한 행보는 이 유령을 쫓아내기 위한 의식 같아 보인다.


하지만 더 크고 조용한 무언가가 그들을 두렵게 한다. 침묵하는 다수의 집단지성이다. 카메라 앞에서 열광하는 지지자들 너머에 있는, 말없이 자신의 판단을 숙성시키는 그 무리들. 그들은 SNS에 정치적 견해를 남기지 않고, 여론조사 전화가 오면 고개를 저으며 끊고, 길거리 마이크가 다가오면 살짝 방향을 틀어 피한다. 그저 선거일 아침에 조용히 나타나 종이 한 장에 자신의 판단을 새길 뿐이다. 소리의 크기와 인구수는 정비례하지 않는다.


역설이 여기에 있다. 패배를 두려워한 나머지 취한 행동들이 또 다른 패배의 씨앗을 뿌린다. 칼을 휘두르는 사람 주변은 항상 텅 비게 마련이다. 극단적 대응은 중도층의 발걸음을 돌려세우고, 침묵하는 다수를 서서히 적으로 만든다. 그들이 투표소의 파란 천막 뒤에서 내리는 판단은 지금 SNS 타임라인을 가득 채운 격렬한 응원전과는 결이 다를 수 있다. 온라인에서의 함성은 때로 현실의 침묵을 가리는 장막이 된다.


두려움은 항상 두 갈래 길을 만든다. 도망치거나, 맞서거나. 민주당은 두려움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쪽을 택했다. 문제는 그 싸움이 실체 없는 적과의 전쟁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전쟁의 소음에 피로해진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 명씩 극장을 빠져나간다. 그들은 다른 극장을 찾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선거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한 가지 패턴이 보인다. 결국 두려움보다는 희망에 투표하는 사람들이 이긴다. 두려움은 다리를 옭아매지만, 희망은 날개를 달아준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오늘의 환호가 내일의 침묵으로 바뀌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역사의 페이지를 몇 장 넘겨보자. 1948년 미국 대선에서 해리 트루먼은 모든 여론조사에서 패배가 확실시됐다. 시카고 트리뷴은 '듀이, 트루먼 꺾다'라는 헤드라인을 미리 인쇄했다가 역사의 오점을 남겼다. 1980년 레이건과 카터의 대결에서도 막판까지 박빙이었지만, 투표일에 침묵하던 다수가 레이건에게 압도적 표를 몰아주었다. 2016년 트럼프의 승리도 마찬가지다. 여론조사는 힐러리의 우세를 점쳤지만, 러스트 벨트의 침묵하던 노동자들이 판을 뒤집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은 당내 경선 이후 지지율이 급락했지만, 투표일에 20대와 30대가 침묵을 깨고 투표장으로 몰려왔다.


침묵하는 다수는 늘 존재해왔다. 그들은 지지 후보가 없거나, 자신의 선택을 드러내길 꺼리거나, 혹은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소음이 아닌 진정한 희망이 있는 쪽이다. 그리고 그 어떤 역사속에도 두려움에 떠는 자가 승리하는 일은 없었다.


원고료 납부하기
TAG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이 기사에 13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10 05:52:52

    침뮥하는 다수가 옳은 선택을 해서 이낙연 상임고문님이 승리하깅 바랍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10 04:52:20

    공감이 많이 되네요..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10 01:17:24

    옳습니다. 제풀에 지치고,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벼랑 끝에 내몰린 대한민국을 살릴 수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10 00:45:58

    소중한 글 감사합니다.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꿈꾸는 분들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9 23:31:24

    이낙연이 현재 우리나라의 희망입니다

  • 프로필이미지
    storyfarm2025-05-09 23:22:55

    제발 그렇게 되기를, 침묵하던 국민이 투표장에 나와 말없이 정의에 한 표 찍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랍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9 23:18:19

    와 엄청난 글이네요, 짝짝, 괴물국가 막을 수 있어요.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9 23:11:45

    이낙연총리가 희망입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9 23:10:23

    민주당과 이재명때문에 무섭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숨죽이고 있지만..
    용기내주시면 가능하리라 봅니다만
    힘든길이란걸 알기에..ㅠ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9 23:09:05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좋은 칼럼 감사합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9 23:08:09

    통찰이 느껴지는 글에 위안을 받습니다. 저들의 웃음이 진실이 아닌 두려움이니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보겠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9 23:04:12

    옛적 서프라이즈를 읽는 느낌입니다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09 22:56:45

    부디 우라의 희망을 꺽지 말아주시길 이낙연총라깨 머라숙여 부탁드립니디

아페리레
웰컴퓨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협상 하루도 안돼 알려진 30분의 치욕 치욕의 청구서가 도착하고 하루가 지났다. 이제 양국 언론을 통해 그 ‘협상’의 후일담이 흘러나오고 있다. 가장 압축적인 묘사는 “펜도 필요 없었던 30분”이라는 트럼프의 만족감 섞인 회고일 것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경제 주권 일부가 대서양 너머로 이전되었다. 시장의 평가는 즉각적이었고, 계산은 정확했...
  2. 버닝썬 비서관이 괜찮다면 페미니즘도 말하지 마라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한 용산 대통령실 비서관 중에 과거 버닝썬 사건의 성범죄 가해자를 변호했던 변호사 출신 인물이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그것도 공직자의 규율과 기강을 바로잡고 비리를 감찰하는 ‘공직기강비서관’이라는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2018년에 드러난 ‘버닝썬 게이트’는 우리 사회의 여성...
  3. 이재명에 환호했던 어떤 변호사의 일기 : 이재명에게 실망이다. 보도블록시장 시절 보도블록 한 장까지도 챙긴다던 그 호기로운 이미지는 허상이었나? 아니면 고작 보도블록이나 챙기는 정도의 그릇이었나?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이라 자화자찬 했던 일은 갑자기 자기 밑에 직원이 자기 몰래 추진한거란다. 보도블록 챙기느라 바빴나? 도지사가 되어서도 자기가 손수 자리까지 만들어 ‘통일’부...
  4. 전병헌, 관세협상 두고 “자화자찬 아닌 자해, 조공 외교의 자화상” 이재명 정부가 최근 한·미 관세협상을 두고 “역대급 성과”라며 자화자찬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전병헌 새미래민주당 대표가 “오히려 자해에 가까운 셀프 풍자”라고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과연 이재명 정부”라는 여권 내 찬양성 멘트를 거론하며, “이 정부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내는 한마디”라...
  5. 이재명 측근 김진욱, 국제마피아파와 연루 의혹 속 총리실 임명 철회 이재명 정부 '보은 인사' 논란 가속... 김진욱 임명 철회에 '버닝썬 변호사' 임명까지 겹쳐이재명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진욱 씨가 국무총리실 정무협력비서관으로 임명된다 7일 국무총리실은 밝혔었다. 정무협력비서관은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고위공무원 ‘나’급(2급) 직위다. '일신상의 이유'로 하루 만에 자진 철..
  6. 김건희특검의 ‘윤석열 속옷 브리핑’ 유감 두 번째 수감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은 특검 수사와 내란 재판에 비협조로 일관하고 있다. 결국 김건희특검이 어제 오전 서울구치소를 찾아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강제구인을 시도했으나 윤 전 대통령의 불응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특검은 기자들 앞에서 윤 전 대통령이 "속옷 바람으로 누워 있었다"는 내용의 브리핑..
  7. 유능하다는 망상, 4천억 달러가 증명하는 친중의 대가 때로는 숫자가 가장 정직한 폭로다. 변명도, 수사도, 감성도 거세된 채, 냉혹한 진실의 뼈대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앞에 던져진 숫자들을 보라.일본의 경제규모는 대략 우리의 2.15 배다. 그들이 5,500억 달러를 낸 것을 우리 체급에 맞춰 단순 환산하면 약 2,000억에서 2500억 달러면 충분할 것이다. 유럽연합 30개국이 그나마 자신들...
  8. 이재명 '광복절 야간 임명식'에 전병헌, '대관식 하냐' 직격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8월 15일 광복절 저녁, '대통령 국민 임명식'을 열겠다고 밝히면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이미 두 달 전 국회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상황에서, 전례 없는 야간 행사를 강행하는 배경을 두고 야권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총공세를 폈다.새미래민주당 전병헌 대표는 ...
  9. [속보] 관세 25%→15%. 미국제품 무관세. 美농산물 트럭 완전개방 한국이 미국에 3천500억달러를 투자하는 등의 조건으로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했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미국이 한국과 무역 합의를 체결하기로 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2주 내로 .
  10. 대미 관세 협상 한일전은 '일본의 압도적 완승' 2025년 7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예고한 '관세 폭탄'의 마감 시한을 앞두고 한국과 일본은 각각 치열한 협상 끝에 합의를 이끌어냈다. 양국 모두 25%의 징벌적 관세는 피하며 15%라는 동일한 관세율을 적용받게 됐다. 표면적으로는 무승부처럼 보이지만, 합의의 세부 내용을 숫자로 분석하면 일본의 압승이다.  같은 15% 관세,...
후원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