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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뜻’에 따른다는 말이 위험한 이유
  • 조광태
  • 등록 2025-05-02 09:26:37
  • 수정 2025-05-02 10: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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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의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하며, 사실상 ‘허위사실 공표’의 고의성을 인정했다.

 

이재명 대표의 반응은 귀를 의심케 한다.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 말은 그럴듯 하지만,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이상스러운 레토릭이 또 다시 등장했다. 법의 판단을 대중의 인식 뒤에 감추고 정치적 책임을 회피할 때, 정치인들이 써 왔던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바로 그 표현이다.

 

지금 이재명 당대표나 민주당이 국민앞에 내놓아야 할 문장은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가 아니라 “법의 판단을 수용하겠다”이다. 국민의 뜻과 법의 판단은 다른 잣대이다. 법은 ‘정량적’ 잣대이고 국민의 뜻은 ‘정성적’ 잣대이다.


국민의 뜻도 헌법과 법률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픽=가피우스)

 

법의 판단이 아닌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는 말은 길이가 부족하여 불합격 판정이 난 불량제품을 외관이 좋아 보이므로 합격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동의어이다. 국민의 뜻이 어떠하든, 법의 판단은 법의 판단대로이다. 이것이 곧 법치주의의 근본원리이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공직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공당의 대표가 법원의 판단에 대해 정치적 해석을 덧씌우고, 국민 여론으로 이를 무마하려 한다면 그것은 곧 법치주의의 근본을 파괴하는 행위다. 대중의 환호 속에서 위법을 정당화할 수 있다면, 법은 더 이상 사회를 지탱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국민의 뜻’은 민주 정치의 핵심 원리이지만, 헌법과 법률 위에 존재하지는 않는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인은 국민의 의사를 대의하지만, 여기에는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만’이라는 엄격한 조건이 붙는다. 법의 판단을 정치적 지지로 대체하려는 시도는, 결국 법을 ‘여론조사 수준’으로 격하시킨다. 민주당이 바로 그 함정에 빠지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대선 기간 중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을 반박하며 국정감사에서 “(국토부가) 강제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를 허위 사실로 판단했고, 피고인의 고의성도 인정했다.

 

공직선거법 위반은 단순한 ‘말실수’의 문제가 아니다. 법원은 이를 유권자를 속여 권력을 취하려 한 중대한 범죄로 간주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전히 이재명 대표를 대선후보로 유지하려는 듯하다. 이 정도면 우리의 법 시스템이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민주당이 이를 조직적 차원에서 정당화하려 한다는 점이다. ‘대법원이 정치에 개입했다’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를 내세우며 법의 판단에까지 의심을 던진다. 이는 더 이상 야당의 방어적 논리가 아니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 사법 체계에 대한 정면 부정이다. 정당이 법적인 판결에 불복하고 정치적 여론전을 통해 판결의 효력을 약화시키려 한다면, 국가 시스템은 무너진다.

 

지금 민주당은 결단해야 한다. 공당으로서 법의 결정에 책임 있게 응답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는 즉각 대표직과 대통령 후보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래야 이치에 맞다. 범죄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판결된 인물이 정당을 이끌고 국가 수반이 되겠다는 발상 자체가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다. 사법부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고, 법치주의를 수용하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국민의 뜻’은 법을 뛰어넘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만약 지금 이재명 대표의 유죄 취지 판결조차 ‘국민의 뜻’이라는 명분 아래 무시된다면, 앞으로 어떤 정치인도 법의 판단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은 법의 판단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대중적 선동에 더 열을 올릴 것이다. 정치적 영향력, 대중적 지지, 정당 권력만으로 처벌을 피해갈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법치 국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 곧 법이 되는 신권정치의 복귀이며, 민주주의의 자해적 붕괴다.

 

정치인은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 법은 비정치적이며, 선악의 문제와도 무관하다. 때로는 대중의 정서와 충돌하는 한이 있더라도 오직 공정한 절차를 통해 진실을 가려내는 것만이 법의 역할이다. 그것이 법치주의의 근간이고,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다.

 

민주당이 진정 국민을 위한다면, 지금 따라야 할 것은 국민의 감정이 아니라 법의 판단이다. 지금 민주당의 태도는, 공인된 수학자들이 풀어낸 고난도의 수학문제 정답을, 대중들의 인기투표로 다시 정하자고 주장하는 것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지금 필요한 건 민심이 아니라, 법의 수용이다. 여론이 아니라, 옳음과 그름에 대한 판단이다. 민주당은 대중의 박수에 기대지 말고, 겸허한 자세로 법의 준엄한 질타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사즉생, 곧 민주당이 사는 길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한민국 정치의 근본을 바로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조광태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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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6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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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05 00:09:39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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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02 12:45:08

    도대체 저들이 밀하는 국민은
    어디에 있는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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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02 12:23:42

    어떻게 저런 철면피 빌런이 민주당을 장악하고 나라를 파탄에 빠트리고 있는지 기가 막히지만 악의 끝은 반드시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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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02 11:18:44

    국민의뜻이라고 하면 이재명 감옥가는건데? ㅎㅎㅎ 칼럼 잘 읽고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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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02 11:02:34

    국민의 뜻이 먼저라는 민주당후보말이 국민들속에 숨는 거라는 건 알지만 딱부러지게 반박하기 힘들었는데 이 칼럼으로 설멍해주면 아무소리 못 할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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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02 09:58:16

    민주당은 공당이 아님 이재명 사조직임... 나라에서 지원해주면 안되는 테러조직같음... 욕도 아까운 쓰레기들임

아페리레
웰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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