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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현칼럼] '먹사니즘'으로 국민 모욕하는 이재명
  • 윤갑희 기자
  • 등록 2025-04-24 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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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조갑제와 정규재 같은 보수 논객들을 만나 "먹고살기 바쁜데 이념 타령"이라는 말로 탈이념 행보를 보였다.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가진 국가의 대통령 후보가 마치 끼니 걱정을 하는, 생존이 최우선인 나라의 정치인처럼 말하는 모습이 어색하다. 더구나 그의 발언은 상황에 따라 바뀌어 진정성을 의심케 하며, 철학 없는 리더십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이념을 버리자는 이념적 발언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것을 닮아간다. 이재명은 조갑제와 정규재 같은 보수 논객들을 만나 이념과 진영을 가리지 않는 소통 의지를 밝혔다. 그는 "먹고살기 바쁜데 이념 문제로 더 이상 분열하면 안 된다"며 익히 너무도 쉽게 꺼내쓰던 친일파, 과거사 문제 등을 덮으려 한다는 해석까지 나왔다.


"천성이 쾌활해 그간의 사법리스크를 견딘 것이 아닌가"라는 조갑제의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어떤 암시를 담고 있는 듯하다. 이재명의 '쾌활함'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변화무쌍한 정책 방향성? 순간적 위기를 모면하는 정치적 유연함? 아니면 진정한 소통 능력?
이념을 버리자는 주장은 그 자체로 매우 이념적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곧 이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기와집의 이밥' 타령이나 이재명의 '먹사니즘'이 본질적으로 뭐가 다른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둘 다 경제적 복지를 통한 이념적 설득이라는 점에서 놀랍도록 닮아있다.


맥락 없는, 혹은 너무 많은 맥락의 정치
이재명은 어제 저 발언에 대한 해명에도 늘 쓰던 레퍼토리를 사용했다. 민주당 경선토론에서 김동연 후보의 질문에 "발언이 중간 생략된 것"이라며 해명했다. 언제나 그렇듯 맥락과 진의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의 정치 인생에서 맥락과 진의는 때로 너무 많아서 오히려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매번 다른 맥락, 매번 다른 진의. 그 수많은 맥락들 사이에서 그의 진짜 정치적 신념은 어디에 있는 걸까.
세계 10위권 경제력과 6~8위권으로 평가되는 영향력을 가진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발상이다. 50년대 해방 한국도 아니고, 2025년 대한민국에서 '먹고살기 바쁘다'는 말은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라기보다는 그냥 대선 후보에게 마땅히 물어야할 가치관이나 의구심에 대해서 마치 '살려는 드릴께' 입 다물라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철학 없는 유연함은 우연에 맡긴 항해
유연함과 철학 부재는 다른 얘기다. 급변하는 세계 정세 앞에서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지만, 그 유연함은 확고한 가치관과 비전에 기반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유연함은 결국 표류일 뿐이다.
이재명의 언행에서는 그가 이루고 싶은 국가의 모습, 청사진을 찾기 어렵다. 그저 단기적 위기 대응, 그때그때 다른 입장, 누더기처럼 기워진 정책들만 보인다.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정책은 바뀔 수 있어도 그 기반이 되는 철학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단순화의 위험성
'먹고살기 바쁘다'는 말은 복잡한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2025년 대한민국은 절망적인 출산율의 생존 문제를 넘어 삶의 질, 사회 정의, A.I. 혁명, 국제 질서의 재편 등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런 시기에 '먹고사는 문제'만을 강조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재명이 말하는 '먹고사는 문제'의 해법이라는 '먹사니즘'이라는게 별로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전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이게 과연 정치인의 발언으로 적합한 건가싶은 기이한 느낌마저 들게 만드는 '고통 없는 삶'이라는 추상적 슬로건만 있을 뿐, 어떻게 그것을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않는다. 마치 사이비 종교 교리처럼 들리는 이유다.
누구나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문제는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에 있다. 그 '어떻게'에 이념이 개입하고, 가치관이 작용한다. 


이재명의 탈이념 주장은 이념 논쟁을 피하기 위한 또 다른 임시방편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치는 결국 이념의 경연장이며, 국가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두고 벌이는 가치 논쟁의 장이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구실로 이념 논쟁을 회피하는 것은 정치의 본질을 외면하는 행위다.
부디 대한민국의 위상을 부끄럽게 만들지 말자. 우리의 아젠다는 이젠 단순히 생존을 넘어 번영과 정의,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실현할 단계에 와 있다. 이런 시기에 필요한 것은 명확한 철학과 비전을 가진 리더십이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발언과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는 복잡한 국제 정세와 사회 문제를 헤쳐나갈 수 없다.


오늘날에도 명작으로 꼽히는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는 왜 감금되었는지도 모른 채 15년을 보낸다. 그의 별명에서 이재명이 보인다. 오늘도 대충 수습이 안되는 오대수. 대충 수습하려는 지도자 밑에선 수습되지 않는 현실만 남을 것이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국가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다.경제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겠다 했던 자칭 경제대통령 이명박이 얼마나 이념에 몰입했는지 정치적 복수에 매몰되 있었는지 아직도 국민들은 생생히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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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5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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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4-25 18:03:09

    우와 멋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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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nahghim2025-04-25 16:43:09

    두번째로 글 날렸음. 이제 안 쓰겠음. 나 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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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nahghim2025-04-25 16:31:15

    실수로 뒤로가기 누른 바람에 장문의 댓글이 지워진 것이 아깝다고 안 했음. 다만 혼자 버럭 중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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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4-25 08:44:05

    맥락도 없고 앞뒤가 전혀 맞지 않은 정치꾼이 있던데 그사람이 떠오르는 논평 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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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4-25 06:28:22

    좋은글…막산이에겐 너무 아까운…심도있는 분석 …ㅎㅎㅎ

아페리레
웰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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